2004, 변호사로 활동하던 이재명은 18천여명의 서명을 받아 성남시립병원 설립조례안을 시에 발의한다. 하지만 성남시의회는 1분도 안 돼 이를 부결시키는데, 이재명은 이 사건이 성남시장이 돼야겠다고 결심한 계기였다고 말한다. 한 차례 낙선 끝에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된 이재명은 옛 시청 건물을 철거한 뒤 그 자리에 성남시의료원을 짓기로 한다. 이 꿈이 이루어진 건 코로나시국이던 20207, 그로부터 3년 반이 지난 지금, 성남시의료원은 성남시 의료를 책임지며 국민건강에 이바지하고 있을까? 작년 말 기사를 보자. “성남시의료원은 지난해 547억원 손실을 냈고 올해도 600억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된다. 의사 수도 정원 대비 50% 미만으로 만성적 부실에 시달려 현재 대학병원 위탁 운영 등이 추진되고 있다.”

의료공백을 해소하겠다던 성남시의료원이 이 지경까지 몰린 이유가 뭘까? 의사나 비영리법인이 설립하는 민간병원과 달리, 정부나 지자체가 지은 병원을 공공병원이라 한다. OECD 국가에선 대형병원 대부분이 공공병원이지만,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의 잿더미에서 출발한 우리나라에선 민간병원이 의료의 거의 전부를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한 이후엔 공공병원을 지을 여력이 생겼지만, 우리나라의 공공병원의 비율은 여전히 OECD 최하위인 9.7%에 불과하다. 여기엔 국민건강보험이란 마법의 카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국의 예를 잠시 들어보자. NHS라는 의료시스템을 갖춘 영국은 진료비가 무료지만, 급하거나 양질의 진료를 받고 싶을 때는 의료진과 시설이 좋은 민간병원을 갈 수 있는데, 이 경우 비싼 진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모든 병원이 국민건강보험의 통제를 받는지라 공공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의 진료비가 똑같다. 싼 가격이 무기인 OECD 국가들의 공공병원과 달리, 우리나라 공공병원에는 환자를 유혹할 수단이 없다는 얘기다. 근처에 다른 병원이 없다면 또 모르겠지만, 성남에는 분당서울대병원과 차병원 등등 대형병원이 여럿 있으니, 굳이 성남시의료원을 갈 필요가 없다. 환자가 없으니 적자가 나는 건 당연하고, 돈이 벌리지 않으니 시설도 열악해지기 마련, 여기에 강성으로 유명한 노조까지 있다면?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지역 공공의료기관인 경기 성남시의료원이 의사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연봉으로 3억 원을 넘게 지급하는 파격 조건을 제시했지만, 업무 과중 등 이유로 의사들이 지원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재명이 성남시의료원을 지은 이유는 뭘까? 자신이 안 갈지언정, 거주지 근처에 병원이 생기는 건 주민들 입장에선 좋은 일, 이재명으로선 자기 돈 한푼 안 쓰고 생색을 낼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게다가 성남시의료원은 강성노조 등의 원인으로 폐업한 인하병원 근로자들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사안, 이들과 손을 잡음으로써 이재명은 성남시장에 당선될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그 이후다. 국민세금으로 병원을 지어 놨다면 병원이 잘 되도록 노력하는 게 공직자의 도리일진대, 이재명에겐 그런 자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김혜경 씨가 낙상해 얼굴이 찢어진 202111, 이재명이 부인을 데리고 간 곳은 성남시의료원이 아닌, 분당 서울대병원 응급실이었다. 그런가하면 이재명의 아들은 20216, 자기 집에서 50킬로 떨어진, 고양시의 명지병원에 입원했다. 이는 7급 공무원으로 김혜경의 의전을 담당했던 조명현 씨가 이씨 아들의 퇴원수속과 약을 타오는 일을 하는 바람에 드러난 사실이었다. 그리고 202412, 괴한의 칼에 목을 찔린 이재명은 부산대병원에서 수술하는 대신, 응급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간다. 여기에 대해 비판이 일자 강선우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게 본인이랑 가까운 사람, 본인의 가족이라고 생각해도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궁금해진다. 병원 설립자는 물론이고 그 부인과 자식마저 외면하는 성남시의료원엔 대체 누가 가는지? 모든 환자는 다 누군가의 가족인데 말이다. 이 사태를 보니 공공병원 70개 확충을 대선공약으로 내건 이재명이 당선 안 된 건 참 다행스럽다. 끝으로 한 마디. 공공병원 적자는 착한 적자라며 공공병원 짓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좌파분들, 이제 그런 소리 그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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