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농업박물관에서 2011324, 농기(農旗)에 관해 역사상 처음으로 강연했다. 고구려 벽화에서 용을 알게 된 이래, 용을 치열하게 본격적으로 연구해온 지 25년째, 마침내 세계적으로 한 개인 학자가 홀로 세계의 모든 나라의 건축-조각-회화-도자기-금속기-복식 등 일체를 새로이 개척하여 최초로 <세계미술사>를 쓰게 될 줄이야! 2024년 청룡(靑龍) 해를 맞아 용 이야기를 하려니 가슴이 벅차다.

사진1; 용대기 당진 농기,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제공
사진1; 용대기 당진 농기,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제공

- 농촌에서 마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깃발
농업 장려하기 위한 권농(勸農)의 상징

올해는 청룡(靑龍)의 해라고 한다. 용해에는 양()의 기운이 강한 해라고 하는데 청룡의 해는 보통 용의 해보다 양의 기운이 더 강하다고 한다. 그 해 태어난 용띠는 그 사람들만이 소원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그런 해라야 하고, 더 나아가 국가에도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용이란 존재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또한 잘못된 지식이 너무 많고 내가 밝힌 표현원리와 상징구조가 매우 고차원적이라 신문에 쓰기 주저했으나, 대중을 계몽시켜야겠다는 염원에서 주저하지 않았다.

충남 당진 보관해온 농기 용그림 압권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농기(農旗)라는 깃발이 있었다. 농촌에서 한 마을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깃발이다. 농업을 천하의 근본이라 여겨 온 우리민족의 오랜 역사를 반영하는 기념비적인 농기가 사라져 간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고 보니 농기를 실제로 본 사람도 드물다. 처음 농업박물관에서 농기를 보고 폭이 4미터가량 내외에 이르는 깃발의 엄청난 크기에다가 여러 가지 용의 모습에 충격적이었다. 세계에 이렇게 크고 고차원의 사상을 품은 작품이 있었던가.

사진2. 얼굴 부분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제공.
사진2. 얼굴 부분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제공.

그런 가운데 충청남도 당진의 한 마을에서 보관해 온 농기는 다른 농기에 비해 용 그림이 압권이었다.(사진 1) 그 용대기(龍大旗)의 높은 예술성에 매우 놀랐다. 농기 가운데 여러 가지 표현 방법이 있는데 용대기란 용을 그린 큰 깃발을 말한다. 분명히 도화서 화원 출신쯤 되는 화가가 그린 것이지 아마추어가 옛 용을 흉내 내어 그린 것은 아니었다. 흔히 용을 길게 그리는데 이 용은 네 발을 안으로 모아서 몸을 둥글게 만들어 매우 역동적으로 나타내었는데 놀란 것은, 바로 그 용의 과감한 표현 방법이었다. 용의 얼굴은 보면 더욱 경이롭다.(사진 2) 그 용의 얼굴을 내가 개발한 채색분석법(彩色分析法)으로 해독해 보니 더욱 놀랍다.(사진 3) 여러분이 알기 쉽게 채색분석한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세부적인 것을 자세히 설명하면 복잡하므로 생략한다. 차차 아시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용은 상상의 동물이라고만 알고 지나치지만 세계 최고의 창조신이라는 것을 밝혔다.

사진3; 채색분석 한것. ​​일향한국민술사연구원 제공
사진3; 채색분석 한것. ​​일향한국민술사연구원 제공

용은 상상의 동물아닌 최고의 창조신

그런데 용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어서 용을 그려놓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고, 본 적이 없으니 사람들은 용의 형상을 자유롭게 표현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깨달았다. 필자는 용의 모습이 왜 천태만상인지, 세계에서 용을 창조한 중국에 이어 한국의 전통미술에 왜 그리 많이 표현해 오는 지에도 놀랐다. 주변을 보면 맨 용이다. 우리가 산소가 없으면 죽고 말지만, 산소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주변에 용이 그리도 많으나 용이 위대한 창조신임을 까맣게 모르고 있음도 알았다. 오히려 용을 낮게 평가해서 용의 아드님을 용 새끼라 말하며, 용의 치아를 용 이빨이라 말하며, 용의 눈을 용 눈깔, 그리고 용의 입을 용 아가리라 부르고 있다.

지난해 어느 국제학술 심포지엄에서 학지들 모두가 용의 입을 아가리라고 불러서 호통을 친 적이 있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용 연구를 계속하며 국민계몽에 나서고 있다. 그 연구 성과의 일부를 5회 연재로 차차 알아보기로 한다.

용은 어느 특정 종교의 산물이 아니다. 용은 이미 중국의 신석기시대에 성립하여 국가가 성립하면서 용의 다양한 표현은 항상 극치를 이루어 왔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에 본격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데 불교문화 2000년 역사에서도 등장하여 용은 불교의 산물이라 잘못 알고 있어서 최근에는 지극히 혐오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여 슬프다. 남아 있는 우리나라 불교 건축에서는 법당 안팎에 용의 표현이 수없이 있으며, 박물관에 가보면 도자기나 금속기와 회화에 얼마나 많은 용이 표현되어 있는지 모른다.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무관심

사진4; 농기 행사때 깃발 행렬.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제공
사진4; 농기 행사때 깃발 행렬.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제공

농업의 산물인 농기는 조선 시대는 농업이 과거 우리 민족의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여서 농업이 천하의 근본이라 했으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돌연 산업사회가 되어 모든 것이 급변했다. 인구는 농촌에서 산업도시로 몰려오고,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것처럼, 농촌에는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 농업의 산물인 농기는 물론 그에 따른 전통문화가 사라지고 있으며 관심도 없다.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이 무관심이다.(사진 4)

농기의 정체를 알려면 먼저 두레란 낯선 말부터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용을 그린 용대기(龍大旗)를 비롯하여, 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쓴 대본기(大本旗)(사진 5), 중국의 농업의 신인 신농씨(神農氏)를 그린 신농기(神農旗)(사진 6)등 세 가지 농기들은, 바로 두레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과거 전통문화를 알아야 미래를 올바르게 창조할 수 있다. ‘두레는 농촌에서 농사일을 공동으로 봄에 모내기를 서로 돕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만든 마을 단위의 공동노동조직(共同勞動組織)이다. 두레패가 들고 다니는 깃발이라 두레기라고도 한다.

두레라는 모내기 조직은 조선 시대 후기에 탄생하여 농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마을()마다 농기가 있었으니 전국적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마을마다 마을을 대표하는 농기가 있었는데 바로 농업을 장려하기 위한 권농(勸農)의 상징이었다. 마을인 리()는 대개 사방 400미터 넓이의 행정구역의 최소 단위다. 마을마다 조직된 공동노동조직은 두레패라 부르는데 마을마다 두레패를 중심으로 농사를 권장하고 서로 돕고 농기싸움이나 농악대 놀이 등, 마을마다 풍물이 다채로웠다.

사진5; 대본기. 익산 용순 농기.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제공
사진5; 대본기. 익산 용순 농기.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제공

마을 공동노동조직 두레패. 권농의 상징

나 역시 도시 출생이어서 농촌 사정을 모른다. 그러나 용을 연구하다 보니 농기를 만나고 농기를 만나서 농촌의 이런 놀이가 풍부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지금이라도 국가 차원에서 두레라는 마을 공동체의 축제만이라도 부활시켰으면 바랄 것이 없겠다. 언론 신문이 주도하여 큰 역할을 했으면 한다. 이러한 행정구역상 최소 단위가 마을이라면, 국가를 대표하는 태극기(太極旗)가 생각나지만, 두레기는 태극기보다 훨씬 크고 장엄하다! 세계 여러 나라 국기 가운데 태극기처럼 궁극의 진리를 담은 국기도 없으며, 한국의 농기 역시 궁극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으나 아무도 모르고 있구나.

10년 전만 해도 당진 시 농촌 행사 때에 농기가 200개가 등장했었다고 하며 지금은 100여개로 줄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전국적으로 많은 농기 가운데 역시 충청도와 전라도는 예로부터 곡창지대라 특히 용을 그린 용대기가 많았다. 산악지방인 경상도에는 농기가 한 점도 없다고 한다!

용을 크게 그린 충남 당진시의 마을, 당진 시 대호지면 적서리 중촌마을의 용대기(龍大旗). 단기 4233(1900)년이라 쓰여 있으나 낡은 깃발은 없애고, 1940~1950년경에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용 그림은 일제 강점기에 궁궐의 도화서(圖畫署)가 없어진 상태라 과거 화원 출신을 초빙하여 그렸음에 틀림없다. 지금은 개인 소유라고 하는데, 소유자는 우리 민족문화 정수를 하루빨리 그 당진 시 박물관에 되돌려주어 길이 보존토록 해야 할 것이다. ‘당진 지기리 줄가리기라는 큰 풍물놀이에 그 멋진 깃발이 동원되어 양 팀이 겨루는 놀이를 응원했기 때문이다.

두레패는 대개 25명쯤 되었다고 했다. 이제 이 글을 쓰면서 이 농기의 정체와 이야기의 내용을 알아내면서 든 생각은, 우리 정부가 나서서 사라져가는 우리나라 민족문화의 축제(festival)를 되살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는 서양 축제 때 젊은 층이 떼 지어 즐기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우리 전통 축제를 부활시켜 모두 참가하여 마음껏 즐기면 얼마나 좋을까.

사진 5; 신농기. 논산 주곡 농기.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제공
사진 5; 신농기. 논산 주곡 농기.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제공

용과 비,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용과 비의 관계는 차차 설명하기로 한다. 농기에 그려진 용은 엄청난 상징을 띤다. 대우주에 충만한 기운은 가시적으로 대우주에 가득 찬 빗방울을 표현한다. 바로 . 농기에서 용을 가능한 한 크게 표현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흉년이 들고 비가 충분하면 풍년이 든다. 무량보주는 무량한 물을 상징한다. 용은 대우주에 가득 찬 물을 상징한다. 농기의 용 주변의 둥글둥글한 모양은 구름이 아니고 제1영기싹이다. 흔히 알고 있듯이 구름 속의 용이 여의보주를 얻어 승천하는 광경이 결코 아니다. 주변의 것들은 영기문(靈氣文)이어서 용은 그 영기문에서 생겨나서, !하고 홀연 나타나 비를 내리게 하고 말끔히농부의 걱정을 씻어준다.
 

강우방(사상가, 미술사가,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 미국 하버드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 국립경주박물관장
· 이화여대 초빙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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