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도 최초 취지는 '비례연합신당'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뉴시스]

[일요서울 l 박철호 기자] 불의의 사건이 발생한 뒤 정치권의 총선 시계는 잠시 멈춰섰다. 그사이 100일 안팎으로 남았던 22대 총선은 어느덧 90일대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정치권의 숙제인 선거제 개편은 아직도 방치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은 명분과 실리 사이의 고민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야권 안팎에서는 '비례연합신당'의 창당이 선거제 개편의 해결책으로 부상하는 중이다.  

급부상하는 야권연합론 

현행 선거제도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과 지역구 의석수를 연동(50%)해 비례대표 의석수를 보정하는 방식이다. 지역구 의석수가 적은 소수정당의 경우 더 많은 비례대표 의석수를 확보할 수 있고, 지역구 의석수가 많은 거대정당의 경우 비례대표 의석수의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앞서 지난 21대 총선에서 거대양당은 비례대표 후보자만 추천하는 ‘위성정당’을 창당해 의석수 손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 바 있다.

지난해 선거제 논의의 핵심은 위성정당 창당의 방지였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의 선거제 개편 당론은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의석수 연동이 없는 만큼 위성정당을 창당할 이유가 사라진다. 다만 양당 체제를 강화하는 만큼 퇴행적인 선거제도라는 단점이 존재한다. 국민의힘의 입장이 뚜렷하다 보니 여·야 합의를 통한 선거제 개편은 병립형 비례대표제로의 회귀가 유일하다. 만약 선거제 개편에 대한 합의가 불발될 경우 22대 총선은 현행 선거제도 하에 치러진다. 분명한 위성정당 방지책이 마련되지 않은 양당의 위성정당 창당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민주당은 지난 4년간 수차례에 걸쳐 위성정당 창당에 대한 사과와 함께 선거제도의 개혁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22대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국민의힘과 동일한 입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이는 곧 민주당이 자신과의 약속을 깨고 선거제 퇴행을 추진해야 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것을 뜻한다. 

이와 관련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12월경 ‘민들레’에 기고한 칼럼에서 '자매정당' 전략을 제안했다. 현행 선거제도 하에 가능한 자매정당 전략은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창당하지 않고 지지자들에게 원내에서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당을 지목해 투표를 호소하는 방식이다. 자매정당은 민주당과의 비합당을 전제로 한다. 유 전 이사장의 구상은 소수정당을 지원함으로써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인 다당제의 실현과 야권 결집으로 인한 총선 승리라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하기 위한 구상으로 보인다. 

우원식 민주당 의원도 유 전 이사장의 자매정당 전략과 유사한 '비례연합정당'을 제안했다. 우 의원은 지난해 12월 19일 자신의 SNS에 게시한 글에서 민주당의 선거제 개편과 관련 세 가지의 기준을 제시했다. ①민주당이 이기는 방향 ②정권 심판론을 극대화하는 방향 ③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방향이다. 

우 의원은 세 가지 기준을 토대로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비례연합정당이라는 총선 역할분담론을 제안했다. 지역구 선거의 경우 격전지인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정권 심판론을 극대화하기 위해 여·야 1:1 구도를 형성한다. 아울러 비례대표는 소수정당 후보를 선순위에 배치하고 민주당 후보를 후순위에 배치하는 연합정당을 설립하자는 것이다. 우 의원의 구상은 민주당이 비례대표 의석수를 양보하는 만큼, 지역구 선거에서는 소수정당이 적극적인 후보 단일화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방안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이탄희 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12월경 '한겨레' 인터뷰에서 정권 심판론에 못 미치는 민주당의 지지율을 지적하며 야권 연합 구상을 주장했다. 이 의원도 민주당은 지역구 1등 전략을 취하고, 비례대표는 연합 정당에 맡기자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더불어시민당 전철 밟을까 우려도 

2020년 4월 15일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종합상황판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는 더불어민주당, 더불어시민당 지도부 [뉴시스]

관건은 연합 대상이다. 개혁연합신당은 민주당과의 연합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정치세력으로 거론된다. 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열린민주당 등이 연합한 개혁연합신당은 자신들의 개혁 정치에 동의할 경우 민주당과의 연대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강성희 진보당 의원도 지난 4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정권 심판론 아래 야권연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독자적인 선거연합신당을 추진 중인 정의당은 21대 총선 당시 "어떤 형태의 위성정당이든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비례연합신당 합류는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해 12월 29일 '한겨레21'은 정의당 내부에서는 유 전 이사장의 자매정당과 같은 방식의 비례연합정당일 경우 논의할 수 있다는 분위기라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정의당 한 관계자는 지난 4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개개인의 구상일 수는 있으나 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 다만 정권 심판을 위한 야권 연대를 위해서 일부 지역의 적극적인 후보단일화는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례연합신당은 민주당의 위성정당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유 전 이사장의 자매정당 전략대로 민주당이 신당 추진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면 위성정당 문제는 일단락될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비례연합신당에 후보를 내고 논의를 주도할 경우 위성정당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21대 총선 당시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도 본래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 기회를 보장한다는 취지 아래 비례연합정당의 형태로 출범했다. 시민당은 비례대표 추천을 두고 소수정당 후보자를 선순위에 배치하고 민주당 후보자를 후순위에 배치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에 민주당은 연합정당의 플랫폼으로 '시민을 위하여'를 선택하고 6곳 정도의 소수정당과 연합정당 참여 협상을 진행했다. 

당시 시민당은 플랫폼 선택부터 위성정당 창당의 의심을 받았다. 당초 민주당은 민주화운동의 원로들이 중심이 된 플랫폼인 '정치개혁연합'과의 협상을 이어왔으나, 끝내 시민을 위하여를 선택했다. 시민을 위하여는 친문(친문재인) 계열 인사들이 주축이 된 단체다. 이 과정에서 연합정당 참가 의사를 밝혔던 녹색당과 미래당이 민주당의 독단적 행보를 비판하며 참가를 철회했다. 

그 뒤 시민당은 기본소득당·시대전환·가자 평화인권당·가자 환경당 등 4개의 소수정당과 연합정당을 구성했다. 하지만 시민당의 비례대표 공천 심사 과정에서 가자 평화인권당과 가자 환경당이 추천한 후보는 모두 탈락했다. 

시민당의 공천 결과 소수정당 몫의 비례대표 후보자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과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뿐이었다. 이외 비례대표 후보자는 모두 시민사회 몫의 후보자와 민주당 몫의 후보자로 구성됐다. 21대 총선 직후 논란이 인 당선자를 제외하곤 전원 민주당으로 합류한 것을 감안하면 시민당이 주장한 비례연합정당의 취지는 사라진 셈이다. 

이와 관련 야권 한 관계자는 지난 5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재 비례연합신당 논의와 당시 시민당의 추진은 차이점이 존재한다. 당시에는 민주당이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을 돕는다는 취지가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각 정당들이 먼저 정치 개혁을 추진하며 활동하는 상황이기도 하고, 정권 심판론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서는 과거와 같은 행보를 걷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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