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출신 국회의원들이 당과 정권에 그토록 일방적으로 충성하고서도 4년마다 물갈이의 최전선에 내몰리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 맹목적 충성에 있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고 타자의 영향력에 편승해 정치하려는 습성을 깨부수지 않고서는, 이 반복적인 역설의 늪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의회주의자의 본당인 국회의 구성원이면서도 행정부 권력에 사실상 예속된 상태로 정치활동을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공고한 당정일치(黨政一致) 문화는 오히려 국회와 정부간 긴장감 있는 감시와 건강한 협력의 틀만 무너뜨릴 뿐이다.

영남출신 국회의원들이 이런 수직적 구조에 순종하는 이유는, 지역민들의 정서가 과거 왕정시대, 군부독재 시대의 상명하복식 문화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지역 출신들이 대통령으로 다수 선출된 것과 무관치 않다. 대통령과 엇박자를 내는 정치인에게 가차 없이 배신자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는 곳 아니던가. 하도 이런 구조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광역단체장에게까지 조롱당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누구 하나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러니 존재감운운하는 비아냥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맹자 마음의 인문학]이란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선비는 가치를 지향하고 도덕성을 기준으로 삼을 때에만 공공성과 정당성을 실현할 수 있다. 선비의 처신이 칼같이 반듯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비란 공공을 위해 투신한 존재인데 권력자의 사적인 용도로 쓰일 바엔 차라리 버려지는 게 낫다.”. 비수 같은 말이다. 공적 존재인 국회의원은 본인의 처신도 반듯해야 하고 권력자의 사적인 용도로 쓰이지도 말아야 한다. 그게 선비이고 바른 정치인의 자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권력자의 눈에 들어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으려는 자세는 구차하고 졸렬하다. 정치인의 옷을 입고서도 선명한 자기 정치를 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無用之物)이란 비난이 결코 지나치지 않다.

410일 총선을 앞두고 출마하려는 행정부 관료, 대통령실 비서진 출신들은 또 어떠한가. 윤석열 대통령 취임이후 현재까지 대통령 지지율은 40%대를 밑돌고 있다. 물론 지지율이 전부는 아니고, 정권의 성패를 가르는 것도 아니지만 이 정도 지지율로는 국정 동력을 얻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당연히 행정부 고위관료나, 대통령실 행정관, 비서관 등을 지낸 사람들은 그 책임을 공유해야 할 집단이다. 그런데 도리어 대통령이라는 존재의 위세에 빌붙어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것 자체가 실상 파렴치한 처신이다. 왜 고위관료, 대통령실 근무할 때는 윤석열 정부를 성공시키지 못했는가. 도리어 책임을 통감하고 뒤로 물러나 자중하고 근신해야 옳다.

더욱 가관인 것은 험지(險地)가 아니라, 꿀 빠는 양지(陽地)로만 몰린다는 점이다. 선거출마 의지를 밝힌 윤석열 정부 내각이나 대통령실 참모 50여 명 중 험지 출마는 10명도 안 된다고 한다. 너도나도 텃밭으로만 몰려간다. 국회 다수 의석을 만들어 정부의 국정운영 동력을 키우려는 것이 진심이라면 이런 행태를 보일 수 없다. 오히려 험지를 택해 한 석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개척자적 정신이 없다면, 소위 물갈이대상으로 거론되는 현역 국회의원들보다 나을 게 뭐가 있는가. 새 물은커녕 썩은 물 더 보태겠다는 것과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애당초 꿀단지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관료나 대통령실 근무경력 자체를 팔지 말라. 그것이 인사권자인 대통령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다. 국민을 우습게 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꿀단지나 찾아다니는 나약한 꿀벌 행세나 하겠는가. 이런 나약한 꿀벌들로는 사나운 말벌, 땅벌들과 결코 맞설 수 없다.

물론 이런 행태는 문재인 정부가 이미 저지른 바 있다. 문재인정부 집권 3년차인 2020년에 치러진 총선에서 장·차관을 비롯한 고위 관료와 청와대 참모진 50여 명이 선거판에 뛰어들었고, 청와대 참모 30명 중 19명이 국회에 입성했다. , 그렇게 해서 들어온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의 수준이 어땠는가. 정권의 거짓을 옹호하고, 통계조작을 거들며, 우리 정치의 수준을 타락시키는 데 일조함으로써 정권을 잃은 데 크게기여한 것 말고 무엇이 있는가. 이런 모습에서 반면교사(反面敎師)하지 못하고 대통령과의 거리, 대통령과의 인연을 팔아 국회에 입성하려 한다면 국민의힘의 괴멸적 패배로 귀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그 책임은 그들이 아니라 국민과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참으로 두렵지 아니한가.

명대(明代)의 학자 구준(丘浚)백성이 쉽게 흩어지는 것은 위에 있는 자가 백성을 모으는 도()를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헐벗고 굶주리면 흩어지고, 부역이 힘겨우면 흩어지고, 세금이 무거우면 흩어진다. 백성이 흩어지면 인정이 사라지고, 인정이 없으면 의리가 흩어진다. 인정과 의리가 없으면 서로를 고발하고 소송을 거는 풍조와 뺏고 빼앗기는 사태가 벌어진다.”고 했다. 먹고 살게 해주는 것, 고된 노역과 세금을 매기지 않는 것, , 괴롭히지 말고 살길을 찾아주는 것이 올바른 치도(治道)란 말이다. 그렇다면 그 일은 솔직히 관료로서 행하기 유리하고, 국정의 컨트롤타워인 대통령실에서 더 신속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민생과 경제를 살리는 방편은 단순하고 쉽다. 다만 공복인 관료들이 공복 역할보다는 남들 위에 서 있고 싶어 하는 욕심에 재미를 붙이기 때문에 문제다. 선거를 앞두고 권력의 비호에 기생해 아첨하는 자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절망스럽다. 대장부란 시대의 권력에 순종하여 그 이익 증진에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세태를 거슬러 정치의 근본을 혁명하고 사람의 본질을 혁신하는 것이다. 대장부의 반대편에 향원(鄕愿)이 있다. 향원은 공자도 가장 혐오했던 부류이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출마를 포기하거나, 험지로 가는 것이 당연하고 옳은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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