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가톨릭 성지를 순례하다 보면 성모마리아와 예수의 모습이 새겨진 후미에()’라 불리는 작은 동판을 보게 됩니다. ‘후미에는 언뜻 일본의 가톨릭 신자들이 종교활동을 위해 만든 것처럼 보여 그 아름다움에 취하게 됩니다. 하지만, 후미에는 일본의 고약한 종교박해의 역사를 담은 사상검증과 정신적 고문의 결정체입니다.

일본은 도쿠가와의 에도막부 시대부터 가톨릭을 탄압했습니다. 완전한 쇄국과 가톨릭 금지령을 내리고, 신자를 색출해 강제개종, 거주지 이전, 해외추방하거나 고문하고 처형했습니다. 예수나 마리아의 그림이나 동판(후미에)을 제작해 밟게 했습니다. 밟으면 살고, 차마 밟지 못하고 피하거나, 밟기 전에 기도를 올리면 잡혀가 고문을 당하고 처형당했습니다.

후미에는 인간에 대한 사상적 고문의 결정체이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선 자의 비애를 상징합니다. 자신이 믿는 신을 부정하고 밟고 지나가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한 인간의 목숨과 인간이기에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신앙을 건 일이기에 어떤 선택도 이해될 만합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목숨을 건 일이기에.

에도막부가후미에를 통해 가톨릭 신자를 색출한 것 같은 일이 지금 대한민국 정치판에서는 흔하게 벌어집니다.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 이후 민주당에서 벌어진 소동은 후진성 측면에서 에도막부의 사무라이들이 가톨릭 신자를 색출하던 것과 별다르지 않습니다. 겁먹은 일부 의원은 무기명 비밀투표에 반대표를 던진 것을 인증하기까지 했죠.

이낙연 대표가 민주당을 탈당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욕주기도 에도막부 시대 사무라이들의 행태와 비슷합니다. 일부 의원들이 주도해 이낙연 전 대표의 창당에 반대하는 서명이 이어졌습니다. 이 서명이 텔레그램 방에서 돌자 순식간에 100여 명의 의원이 서명했습니다. 호남의 총선 출마예정자들은 앞다퉈 기자회견을 통해 이 전 대표를 비난했습니다.

그들도 연판장을 돌린다고, 기자회견을 한다고 탈당을 결심한 이낙연 전 대표가 마음을 바꾸리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치적 계산이 먼저였을 겁니다. 주도한 의원들은 공천권을 가진 이재명 대표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마음에 서명운동이라는 방식을 제안했을 것이고, 앞다퉈 서명한 의원들도 찍힐세라 울며 겨자 먹기로 서명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이 전 대표의 탈당에 보내는 민주당 구성원들의 비난과 모욕은 이전엔 없던 일입니다. 정치는 생물과 같아서 언제 어느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만날지 모릅니다. 하물며 한솥밥을 먹었던 사람에게 적대적인 세력에게나 쏟아부을 법한 말 폭탄을 던지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다시 볼 일 없다는 계산, 충성경쟁에서 뒤지면 안 된다는 조급함이 느껴집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치하에서 사상검증과 충성경쟁을 통해 다양성이 거세된 정당으로 망가지고 있습니다. 혹자는 총선이 끝나면 다른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고 하지만, 믿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자기 말과 행동에 구속됩니다. 민주당의 구성원은 서로를 검열하고, 고문하는 과정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이낙연 욕보이기는 그 과정에 불과합니다.

<이무진 보좌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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