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비명 분가(分家)에 민주 계파간 상호불신 증폭...대규모 탈당 우려도

(왼쪽부터) 민주당을 탈당한 이원욱 의원, 김종민 의원, 조응천 의원 [뉴시스]
(왼쪽부터) 민주당을 탈당한 이원욱 의원, 김종민 의원, 조응천 의원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더불어민주당 의석수가 불과 한 달 만에 169석에서 4석 줄은 165석으로 쪼그라들었다. 줄곧 갈등을 빚었던 비명(비이재명)계 이상민‧조응천‧이원욱‧김종민 의원이 이달 연이어 탈당하면서다. 이상민 의원은 국민의힘으로 입당했고, ‘원칙과상식’ 3인방은 이낙연 전 대표와 함께 신당 창당을 선언하며 제3지대로 향했다. 예견된 사태라지만 비주류의 분가(分家)를 지켜본 민주당과 지지자들 사이에선 적개심과 당혹감이 교차한다. 이재명 당대표가 흉기 피습으로 12일 현재까지 당무에 복귀하지 못한 채 회복 중인 가운데, 비명계의 집단탈당은 당대표가 부재 중인 민주당에 직격탄이 됐다. 이번 사태로 총선 전 비명계 포용에 실패한 이 대표의 리더십에도 커다란 흠집이 생겼다. 설상가상으로 공천 형평성 논란, 공천 컷오프 명단 유출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이대로라면 국회 1당인 민주당이 추가 탈당자 속출에 150석대 의석수로 4월 총선을 치를 수도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이낙연 전 대표 [뉴시스]
이낙연 전 대표 [뉴시스]

민주, 이낙연‧비명 탈당에 격분 “제2안철수의 길 축하”

비명계 탈당 후 민주당의 내부 기류가 심상찮다. 총선 전 단일대오를 강조하며 129명의 의원들이 공동성명을 내며 이낙연 전 대표의 탈당을 만류했지만, 끝내 각자도생으로 귀결되자 허탈함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초선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이 전 대표와 비명계가) 이러한 선택을 한 데 대해 실망감이 깊다”면서 “싫든 좋든 집안 문제는 당 안에서 풀어야 했다. 일치단결해 정권을 심판해도 모자를 시점에 당을 분열로 내몰은 선택을 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격앙된 반응을 내비쳤다.  

심지어 친명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SNS에 “제2안철수의 길을 축하한다”고 이 전 대표의 탈당 행보를 비꼬는 메시지를 방출하기도 했다. 윤 의원은 “2021년 당시 민주당 대표로 재임하던 시절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기존 당헌을 고쳐가며 후보자를 내놓고서 선거에 패했음에도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던 분”이라고도 했다.

이낙연계로 분류됐던 송재호 의원도 “명분 없는 탈당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김대중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는 이 전 대표는 지금 통합이 아닌 분열에 앞장서고 있다. 당을 배신하고 떠난 사람을 구태여 잡지 않겠다”고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 [뉴시스]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 [뉴시스]

양이원영이 지목한 제2, 제3의 원칙과상식, 누구?

이런 가운데 탈당그룹을 향한 민주당의 질타는 그간 친명계와 결을 달리했던 비명계 잔류그룹에 대한 경계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강성 친명계로 손꼽히는 양이원영 의원은 지난 10일 비명 결사체 ‘원칙과상식’ 3인방이 탈당을 선언하자 즉각 입장문을 내고 “민주당에는 숨죽이며 눈치만 보고 있는 제2, 제3의 이원욱·김종민·조응천이 있다. 그 분들이 민주당에 남아 당당히 경쟁해서 더 강한 민주당으로의 길에 동참하고, 당원들의 사랑을 받는 정치인이 되면 좋겠다”고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다. 

정치권은 친명 선봉대 격인 양이 의원의 이같은 발언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원칙과상식’에 이어 후속 탈당 가능성이 있는 비명계 잔류 인사들을 향한 모종의 경고 메시지로 해석되면서다. 양이 의원은 친명 선봉대 격인 ‘처럼회’(강경파 초선그룹) 소속으로 김의겸‧김용민‧황운하 의원 등과 함께 일선에서 이재명 대표와 친명 지도부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해 온 인사다.      

이에 당내 일각에선 원칙과상식 멤버지만 지난 10일 탈당 기자회견 직전 민주당 잔류로 급선회한 윤영찬 의원을 포함해 비명계로 분류되나 최근에는 친명과 대립을 자제하며 정중동 행보를 보이고 있는 홍익표‧전해철‧윤건영 의원 등 구 당권파가 새삼 거론된다. 이 밖에 지난 대선에서 이낙연 캠프에서 각각 상임부위원장‧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이개호‧이병훈 의원, 친이낙연계 설훈 의원 등도 당내 강성 친명계가 탈당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는 인사들로 지명된다. 

무엇보다 김의겸‧양이원영(비례대표) 의원이 총선 출마를 선언해 ‘자객공천’ 논란이 일었던 전북 군산‧경기 광명을 현역인 신영대‧양기대 의원도 최근 부쩍 언급된다. 또 친명 원외 인사인 정봉주 전 의원과 김우영 민주당 강원도당위원장이 총선 출마를 선언해 파장이 일었던 서울 강북을‧은평을의 박용진‧강병원 의원도 낙천 가능성이 점쳐지며 ‘내부 단속’ 대상으로 떠올랐다. 

다만 이들 대부분은 이 전 대표가 지난달 탈당 및 창당 가능성을 시사했을 당시 탈당을 완곡히 만류하거나 침묵하며 선을 그었던 터라, 탈당 후 제3지대로 향한 원칙과상식의 전철을 밟게 될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관계자는 “양이원영 의원이 노골적으로 지명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누구를 저격한 발언인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지 않나”라며 “아무리 이 전 대표가 탈당했다고는 해도 당 단합을 위해 조용히 의정에만 집중하고 있는 인사들을 저격하는 듯한 발언은 무례하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 [뉴시스]
이재명 민주당 대표 [뉴시스]

이재명 부재 속 당내 상호불신 증폭...살생부 유포 논란도

이렇듯 민주당은 최근 연이은 비명계 탈당 여파로 인해 상호불신이 증식하는 등 극심한 내부 진통을 앓고 있다. 12일 현재 이재명 대표의 당무 복귀가 여전히 불투명해 내부 통제가 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심지어 원칙과상식이 탈당한 지난 10일에는 민주당 내부에서 당무평가 하위 20%에 해당하는 이른바 ‘비명 살생부’가 유포됐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오면서 기름을 끼얹은 형국이 됐다. 해당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이 현역 의원 평가에서 하위 20% 낙제점을 받은 컷오프 대상자들을 대상으로 결과를 통보하며 불출마를 권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해당 보도에는 당 권고에도 총선 출마를 강행하는 컷오프 대상자들의 경우 하위 평가 사유를 전격 공개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보도 직후에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출처 불명의 공천 살생부 명단까지 돌았다. 해당 명단에는 비명계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다만 민주당은 즉각 공지를 내고 “당은 하위 평가 20% 해당자에게 통보한 사실이 없으며, 불출마를 권고한 사실도 없다”며 “평가 내용 및 결과는 현재 비공개 상태이며, 추후 공천관리위원회로 이첩될 예정”이라고 반박했다.

가뜩이나 비명 탈당으로 당내 공기가 싸늘한 상황에서 민감한 공천 이슈까지 터지자, 민주당이 술렁이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어떤 (친명‧비명) 의원들은 서로 마주쳐도 모른척 지나가기 일쑤”라며 “요즘 살벌하다”고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비명계 인사들은 이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은 채 당내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다만 당 비주류를 향한 내부 불신과 논란이 중첩되고 있는 만큼, ‘원칙과상식’ 탈당을 뛰어넘는 내분 사태에 이를 수 있다는 당내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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