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정 가습기 살균제 환경 노출 확인 피해자연합 대표
박혜정 가습기 살균제 환경 노출 확인 피해자연합 대표

[일요서울 ㅣ이지훈 기자]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항소심 법원이 일부 무죄로 판단한 가운데 피해자들의 성토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그 어떤 보상으로도 피해자들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며 비판했다.

또한 이번 선고와 관련해 “(해당 기업에 대한) 사실상의 면죄부나 다름없다”며 관계자 고소를 검토 중이다. 

-  지원 대상 피해자 5691명, 사망자 1262명으로 집계
- '가습기 살균제' 뒤집힌 2심... 보상은 오리무중

본지와 전화 통화를 나눈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A 씨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수 많은 생명을 앗아간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피해자 입장으로 바꿔서 생각했을 때 자기 가족이고 내 자식이었었더라도 이렇게 행동했을지 의문이 든다. 처벌이 어떻게 나오든 피해자들의 상처 난 마음은 어떤 보상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보상조차도 하지 않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무죄 판례를 남기려는 꼼수로 보인다”

박혜정 가습기 살균제 환경 노출 확인 피해자연합 대표는 “ SK와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물려서 참사 책임 부분이 SK와 정부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관계로 지난 30년간 SK는 정부의 비호를 받아 왔다는 사실이 SK가 가습기 살균제용 특허를 내고 정부가 승인하는 과정, 제품 판매를 하기 전 1992·3년경 SK가 사내 임직원들을 통한 사실상의 임상실험이 자행됐다”며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대규모 피해가 일어난 경위에 대해 설명한다.

이어  “▲흡입독성을 인지하고도 흡입독성 결과를 입증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세정제로 사기 신고했고 이러한 사실을 은폐한 점 ▲산업통상자원부는 성분명이 미생물번식억제성분 1%로 표기돼 있었음에도 의심 없이 묵인한 점 ▲닦고 헹구고 말려서 사용하는 세정제의 사용 방법이 아닌 물에 희석해서 초음파 가습기를 통해 흡입하도록 살인적인 사용법을 안내했고 공무원들은 이를 묵인했기 때문에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대한민국에서만 발생한 점 등 때문에 대규모 참사가 발생했다”라고 덧붙였다.

당시 문제가 된 '가습기 메이트' 제품 실물 사진
당시 문제가 된 '가습기 메이트' 제품 실물 사진

이번 판결에 대해서도 박 대표는 “화학 성분별로 희석한 쥐 실험 결과를 가지고 유해성을 논한 것 자체가 의도하고 형량이 가장 약한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이라는 부실기소와 부실한 심리로 그조차도 마지못한 유죄를 판결하고 피고의 방어권을 보장한다며 법정 구속을 시키지 않은 것도 상고심을 통해 시간을 끌며 대법에서 무죄 판례를 남기려는 꼼수로 보인다”며 “검찰도 맞상고 하여 파기 환송해서 공소장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변경하여 중형에 처할 수 있는 판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열변을 토로했다.

앞서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하고 유통해 대규모 인명피해를 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었다.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관계자 13명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당시 피해자들과 여론에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지난 11일 서울고등법원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를 받는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한순종,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원심판결을 깨고 금고 4년 실형을 각각 선고했다. 다만 방어권 보장 취지로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이들은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등 유해 화학물질을 이용한 가습기 살균제 제품 '가습기 메이트'를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고 제조, 판매해 98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를 받고 있다.

-1심 뒤집는 판결... 무늬만 처벌?

앞서 1심은 지금까지 이뤄진 연구를 종합해 볼 때 '가습기 메이트' 원료가 폐질환이나 천식을 일으키거나 악화시켰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이에 검찰은 기업 책임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판결이라며 항소했고, 3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이 흐른 뒤에 항소심 결과가 나왔다.

2심 재판부는 "어떠한 안전성 검사도 하지 않은 채 판매를 결정해 공소사실 기재 업무상 과실이 모두 인정된다"며 1심 무죄 판결을 뒤집었다. 이어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그 책임에 따른 처벌이 불가피하다"라고 판단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 결과에 대해 1심을 뒤집고 유죄 판결이 나왔지만 10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만든 이들에게 이번 형량은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지적했으며 가해 기업의 배보상 규모를 줄여주기 위한 수작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SK케미칼은 입장문을 통해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다”며 “법적 절차와 별개로 피해자들의 고충을 덜어드릴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집계된 사망자 1000명 넘어... 결과는 빙산의 일각?

한편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지난 1994년부터 시중에 유통된 가습기 살균제 이용자들이 폐 손상 등의 피해를 본 사태로, 2011년 처음 수면 위로 올라왔다. 당시 영유아·임산부 등이 원인 불명의 폐 손상을 앓는 사례가 늘어났고 보건당국 조사 결과 1994년부터 시중에 유통된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으로 밝혀졌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지원 종합 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지원 대상 피해자는 5691명에 달하며 사망자는 1262명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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