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민주진보당(민진당) 총통(대통령) 후보 라이칭더가 국민당 후보 허우유이를 득표율 40.1% 대 33.5%로 누르고 승리했다. 민진당의 라이칭더 당선인은 차이잉원 전 총통처럼 반중•친미 노선을 추구하며 대만이 중국에 예속치 않고 독립객체 라로 주장한다. 그에 반해 국민당의 허우유이는 대만과 중국은 하나이며 관계 증진을 주장해 왔다. 원래 국민당은 장제스 국민당 총통이 중공군과의 내전 끝에 밀려 1949년 대만으로 피난민과 함께 쫓겨와 대만을 통치한 군사독재 후신이다. 대부분 대만 토착인들로 구성된 민진당은 1986년 계엄령하에서 감시받으며 비밀리에 ‘그랜드호텔 타이페이’에서 치과의사 모임이라고 위장해 창당했다.

국민당은 집권 시절인 1992년 중국과 대만 간의 화해•협력 증진을 위해 ‘92 공동인식’에 합의했다. 이 ‘92 공동인식’은 대만과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통일을 추구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 ‘하나의 중국’은 대만이 중국에 예속된다는 것을 명시한 것은 아니었고 중국이 대만에 속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도 아니었다. 양측이 서로 편리하게 해석토록 했다. 그래서 중국은 ‘하나의 중국’에 의거 대만이 중국에 예속된다고 주장하고 대만은 중국이 대만에 속한다고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
그러나 라이칭더 당선인은 유세 중에도 ‘하나의 중국’을 수용하면 대만을 지킬 수 없다고 반대했다. 그는 대만을 ‘제2의 홍콩, 제2의 티베트로 만들 순 없다’며 대만 독립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무력통일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호언한다. 지난 12월엔 대만통일을 ‘역사적인 필연’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만 흡수통일을 ‘역사적 필연’이라는 주장은 역사발전 법칙에 역행한다. ‘19세기 초 독일의 이상주의 철학자였으며 변증법을 정립한 게로르그 헤겔은 저서 ‘역사 철학’에서 역사의 절대 목적은 자유정신 진화에 있다고 했다. 그는 인류의 자유정신은 “자기모순을 거치면서 보다 진하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발전한다”고 했다.

자유정신은 고대로부터 중세 근세 현대에 이르면서 ‘보다 진하고 구제적인 모습’으로 발전했다. 분단 독일의 통일도 자유민주체제인 서독이 독재 권력인 동독을 흡수 통합하였다. 역사발전 법칙에 따른 귀결이었다. 중국과 대만의 통일도 자유정신이 가득한 대만이 독재체제인 중국을 흡수통합하는 게 역사발전 법칙이다. 실상 대만은 중국에 의해 단 1분도 지배된 적 없다, 엄연한 독립 국가이다. 그런데도 시진핑은 대만이 중국에 예속한다고 우긴다. 아돌프 히틀러처럼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게 아닌가 싶다.

대만이 오늘날 직면한 정치 사회 경제 문제점들은 라이칭더 당선인에게도 가볍지 않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라이칭더가 대만 독립을 강조하면 할 수 록 시진핑은 대만에 대한 무력시위를 더욱 강화, 대만해협에 긴장을 조성할 게 분명하다. 동시에 대만과 중국 간의 긴장고조는 미국과 중국 간의 대결 격화로 번지게 된다. 미국은 대만에 대한 군사적 보호 책무가 있다고 중국에 맞선다.

라이칭더는 현실적으로 대만 독립 선언보다는 ‘현상 유지’로 가고자 한다. 그래서 중•대만 관계는 라이칭더 아래서도 급격히 악화될 것 같지는 않다. 대내적으론 주택가격 폭등, 임금 상승 정체, 에너지 결핍, 급격한 노인인구 증대 등이 라이칭더의 지도력을 시험한다. 또한 그는 하버드 대학 공공보건학 석사를 받은 의사로서 정치적으론 시장(市長)을 지내는데 그쳤다는 데서 외교 경험이 부족하다. 거기에 더해 민진당이 국회에서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것도 정책추진에 걸림돌로 작용될 수 있다. 그의 지도력 발휘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