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차기 대권플랜 가동? ‘이재명 못 잡아도 남는 장사’

원희룡 전 국토장관(앞),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뒤) [뉴시스]
원희룡 전 국토장관(앞),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뒤)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이 차기 대권플랜에 시동을 거는 모습이다. 원 전 장관은 지난 16일 국민의힘 인천시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돌덩이 하나가 길을 가로막는데, 제가 온몸으로 치우겠다”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 출마를 시사했다. 이는 야권 유력 대권주자인 이 대표를 정조준하며 정치인들의 자아실현 궁극점이라고 일컬어지는 차기 대통령을 바라보는 원 전 장관의 ‘넥스트 스텝’으로 해석된다. 이 대표 역시 원 전 장관의 이같은 선전포고에 계양을에 출마하겠다며 정면돌파를 택했다. 이로써 4.10 총선의 메인이벤트는 ‘명룡대전’이 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신당이 대거 태동하고 있는 제3지대에서 중량급 인사가 인천 계양을로 출마한다면 여야 표심 일부가 분산되며 혼전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어, 이 또한 계양을 선거의 잠정 변수로 지목된다. 

이달 여의도 정가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던 ‘명룡(明龍)대전’ 빅매치가 4.10 총선에서 성사될 전망이다. 사실상 ‘미니 대선급’ 총선 대진표다.

이 대표는 지난 18일 국회 출입기자단과 가진 비공개 차담회에서 계양을 출마와 관련해 “지역구 의원이 지역구에 그대로 나가지 어디를 가느냐”라며 “통상적 기준과 절차에 따라 생각해 달라”고 계양을 출마 의사를 표했다. 또 이 대표는 원 전 장관이 다가오는 총선에서 ‘이재명 저격수’로 나섰다는 취재진 질문에는 “저를 왜 따라오느냐. 이해가 안 된다”고 답했다. 원 전 장관이 자신과 체급이 다름을 강조하며 대결구도 프레임이 굳어지는 것을 경계한 말로도 읽힌다.    

그간 지역구 출마와 관련해 입장 표명을 자제했던 이 대표의 입을 열게 만든 것은 원 전 장관의 계양을 출마선언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지역구 우회, 비례대표 출마 등 이 대표의 총선 선택지가 좁아진 것도 사실이다. 이로써 사실상 이 대표가 총선 전 국면전환용 내지는 출구전략으로 쓸 수 있는 카드는 ‘총선 불출마’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다. 

이 대표는 국회 첫 입성 발판이 된 계양을에서 4년 임기의 절반가량만 채우고 다른 지역구로 눈을 돌렸다는 비판과, 원 전 장관의 도전에 침묵하거나 불응할 경우 인천 등 수도권 총선에 미칠 악영향 등을 두루 고려해 계양을 출마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이 대표가 원 전 장관과) 승부를 피할 이유가 없다”며 “계양을로 원희룡이 온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다만 이 대표가 이 시점에 침묵하게 되면 피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에 예정대로 계양을 출마를 못 박은 것일 뿐”이라고 했다. 

또 계양을이 민주당 텃밭이라는 점도 이 대표가 원 전 장관과의 정면승부 결심을 굳힌 배경으로 꼽힌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계양을에서 무려 4선을 지냈고, 지난 대선에서도 민주당이 강세를 보인 만큼 22대 총선에서도 이변이 없다면 압도적 당선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인천 계양구 장기동 아파트 단지에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선거 차량에 올라 주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22.05.25. [뉴시스]
인천 계양구 장기동 아파트 단지에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선거 차량에 올라 주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22.05.25. [뉴시스]

그러나 계양을이 4월 총선에서도 민주당에 압도적 표심을 몰아줄지는 미지수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송영길 민주당 후보는 윤형선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후보와 38%포인트 이상 득표율 격차를 벌리며 압승했다. 반면 이 대표가 출정한 2022년 6.1 계양을 재보궐선거 양상은 이와 달랐다. 선거 전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 윤형선 국민의힘 후보는 줄곧 지지율에서 박빙지세를 이뤘고, 당시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러다 사고 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왔다.

결국 이재명 후보가 약 11%포인트의 득표율 차로 윤형선 국민의힘 후보를 제치며 국회 입성에 성공했지만, 민주 대권주자라는 이름값에 비해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는 점에서 계양을도 더 이상 민주당의 안전자산이 아니라는 기류가 싹트기 시작했다. 여기에 이 대표에게 지역구 바통을 넘긴 송 전 대표가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되며 재판에 넘겨진 것도 이 대표에게 총선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재명 저격수’ 자처한 원희룡의 총선 기댓값은

원 전 장관으로선 이 대표를 정조준한 계양을 출마가 ‘손해볼 것 없는 장사’라는 게 정치권 중평이다.

원 전 장관이 보수정당 험지인 계양을에서 낙선하더라도 이 대표와 정면승부를 자처하며 여당의 수도권 총선 흥행을 주도한 만큼, 그 기여도를 인정받으며 보수진영에서 몸값이 수직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원 전 장관이 총선 격전지에서 이 대표를 꺾고 4선 의원이 될 경우 현 여권 원톱 대권주자로 지명되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뛰어넘는 존재감을 갖추며 차기 대권으로 직행할 수 있게 된다. 

원 전 장관의 계양을 출마 명분도 탄탄하다는 평가다. 3선 의원, 민선 6‧7기 제주지사, 윤석열 정부 초대 국토장관 등 굵직한 커리어를 보유한 원 전 장관으로선 지역구 선별 출마 또는 차기 국무총리 도전이 가능한 상황임에도 ‘돌덩이를 치우겠다’며 험로를 택했다. 이는 당내 중진들의 수도권 험지 출마 소식이 전무한 가운데 이뤄진 결단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는 평가다. 

국민의힘 수도권 의원은 “원희룡 전 장관의 용단에 경의를 보낸다”며 “원희룡의 인천 출격은 우리당 수도권 총선에 여러모로 파급을 가져다 줄 수밖에 없다. 원 전 장관은 선거 당락을 떠나 이번 총선을 계기로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쥐게 될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이 밖에 원 전 장관의 계양을 출마는 여야 간 역대급 샅바싸움이 예상되는 4월 총선에서 야당 사령탑의 발을 묶어두는 특효를 낼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계양을 보궐선거를 앞두고 윤형선 국민의힘 후보의 예상 밖 선전에 고전하며 민주당 지방선거 유세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했다. 여권 거물급 자원으로 성장한 원 전 장관의 존재감과 국민의힘의 전폭적인 백업이 조화를 이룰 경우 이 대표로선 외부 유세지원에 집중하기 힘든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 

그렇다고 원 전 장관에게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낙선 시 현실정치와 멀어지며 커리어 공백기를 맞을 수 있고, 특히 이 대표와 15%포인트 이상 큰 득표율 격차로 패한다면 기댓값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부정여론에 대권 모멘텀이 상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원 전 장관의 계양을 출마와 관련해 “원희룡 개인으로 보나 당 차원으로 보나 여러모로 손해볼 것 없는 장사”라며 “(4.10 총선은) 결국 수도권 판세가 관건인데 원희룡 출마는 인천뿐만 아니라 서울, 경기까지 도미노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승부수다. 하지만 득표율 20% 이상 격차로 이 대표에 참패한다면 원 전 장관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신당 창당을 추진중인 이낙연 전 대표와 이준석 개혁신당(가칭) 정강정책위원장이 16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새로운미래 출범식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신당 창당을 추진중인 이낙연 전 대표와 이준석 개혁신당(가칭) 정강정책위원장이 16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새로운미래 출범식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뉴시스]

한편,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는 제3지대의 움직임도 인천 계양을 선거 판세에 변수가 될 수 있다. 이준석‧이낙연 신당 등이 공천 낙마에 여야를 이탈한 현역들을 흡수하며 몸집을 불린 상태에서 중진급 인사를 계양을로 차출한다면, 여야로 쏠렸던 표심이 분산되며 선거 판세에 적잖은 균열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지난 19일 이준석 개혁신당 정강정책위원장은 최근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낙연 새로운미래 인재위원장을 향해 “저라면 계양(을) 간다. 굉장히 상징성 있는 움직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의미심장하게 운을 띄우기도 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