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J대한통운은 하청 택배기사 사용자일까"...판결 결과에 기업들 '초긴장'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CJ대한통운이 수년간 택배노조와 교섭 관련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4일 CJ대한통운이 전국택배노동조합(이하 택배노조)의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라고 본 판결의 항소심 첫 결과가 나왔다.

서울고법 행정 6-3부는 이날 CJ대한통운이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라는 재심 판정을 취소하라"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와 관련해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장을 일요서울이 찾았다.

현장에서 만난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이번 판결은 ‘진짜 사장 나와라.’라며  7년여를 넘게 외쳤던 택배 노동자들을 비롯한 특수고용직 노동자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절규와 외침이 옳았다는 것을 법적으로 확인받은 역사적 판결이다"라며 감격스러워했다.

그는 이어 "택배노조는 합법노조로 인정받은 2017년부터 7년여를 줄기차게 원청택배사와의 교섭을 요구해 왔다"라며 "그럴 때마다 원청택배사는 택배기사들이 자신들과 계약 관계가 아니니 형식적 계약주체인 대리점 소장과 교섭하라고 주장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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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위원장은 "그런데 대리점은 기사들이 집배송한 수수료에서 일부를 관리비 명목으로 걷어서 운영되는 곳이며 자체적인 수익구조가 전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정이 이러니 수백 명의 택배기사들이 일하는 터미널에 화장실이 부족해도, 심지어 화장실이 넘쳐서 터미널이 난리가 나도 대리점은 이를 개선할 책임도 능력도 없다"라며 작업환경에 대한 자그마한 사안도 원청이 나서지 않으면 해결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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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런 현실을 반영해 노동조합은 수년간 실질적 지배력과 권한을 갖고 있는 원청택배사에 작업환경 개선이나 노동시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체협상을 요구해 왔고 지난해 1심에 이어 오늘 항소심에서도 노조의 주장이 옳았다는 판결을 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CJ대한통운은 대법원 상고를 통해 시간을 끌기보다는 상고를 포기하고 오늘 고등법원의 판결을 수용해 즉시 택배노조와의 단체교섭을 진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라고 덧붙였다.

진 위원장은 "CJ대한통운이 대법원에 상고한다면 노동조합은 그 즉시 ‘교섭 응낙 가처분신청’을 통해 단체교섭을 강제할 수 있는 적극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어 국회는 노조법 2·3조 개정에 적극 나설 것을 요구했다.

통상 국내 택배사는 '본사-대리점-기사'의 연결 계약 구조로 운영된다. 본사는 대리점과 계약하고, 대리점은 기사와 계약하는 구조다. 원청인 택배사와 하청업체 노동자인 택배기사 사이에는 명시적인 계약 관계가 없다. 그간 대법원 판례도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있는 경우에만 단체교섭 상대방으로 봐왔다.

CJ대한통운은 배송 기사의 교섭 대상이 직접 계약 관계인 영업점이라는 입장이다. 노조는 원청인 회사와의 직접 교섭을 주장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이에 반발해 소송을 했지만, 사용자성을 뒤집지 못했다.

앞서도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의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라서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은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정용석 부장판사)는 지난 1월 CJ대한통운이 원청 사용자로 택배노조와 교섭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는 근로자와 직접 계약을 맺고 있지 않은 사용자라도 근로조건에 관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한다면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 봐야 한다는 '실질적 지배력설'에 따른 판단이다. 그러나 CJ대한통운 측은 중노위 판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 소송을 냈고 서울고법에 항소해 이날 판결이 나온 것이다.

법원에서 주목한 ‘실질적 지배력 설’은 국회로 이어졌다. 사용자 범위를 원청 사용자까지 확대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지난 1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을 행사에 가로막혀 개정에는 이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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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송 결과는 산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중공업, 철강 등 하청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장마다 판단 지표로 활용될 공산이 크다.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된다면 하청 노조가 잇따라 원청에 교섭권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시선은 국회에 계류 중인 노란봉투법과 대법원에 계류 중인 현대중공업 사건으로 쏠리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조합 조합원 개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의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노동조합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이 사건과 동일한 쟁점의 다른 사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대중공업 사건도 이번 사건의 향방을 판가름 지을 수 있는 사건이다. 만약 대법원이 현대중공업 사건을 먼저 판단한다면 그에 따라 CJ대한통운 사건의 결론도 결정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지난해 여러 차례 반복됐던 택배 파업이 재발할 것으로 우려한다.
지난해 택배노조는 원청과의 교섭을 요구하면서 전국적인 총파업을 반복했다. CJ대한통운의 경우 64일간의 장기 파업을 거치면서 막대한 피해를 보기도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CJ대한통운의 택배기사노조 단체교섭 거부가 부당하다는 항소심 판결에 대해 "대법원의 판결과 배치된다"고 24일 밝혔다.

경총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이번 판결은 기존 대법원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며 "대법원은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기업은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체교섭에서는 임금 및 근로조건이 의무적 교섭 대상이므로 근로계약 관계있는 자가 교섭 상대방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며 "이번 판결에 따르면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의 취지가 몰각될 뿐만 아니라, 산업현장은 하청노조의 원청기업에 대한 교섭 요구와 파업, 그리고' 실질적 지배력' 유무에 대한 소송으로 몸살을 앓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총은 "법원은 이제라도 기존 대법원판결을 존중하고 산업현장의 현실을 살펴 단체교섭 상대방은 근로계약 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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