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벌어지는 일 중 절로 한숨이 나오는 일 세 가지가 있다. 첫째가 입법 남발(濫發)이요, 둘째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요, 셋째가 특별법 남용(濫用)이다. 이 세 가지는, 국회의원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기본적인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자신들의 행위로 인해 발생할 문제들에 대한 고민을 전혀 안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깊이 고민하고 성찰하며 항상 공부하는 국회의원이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먼저 입법 남발을 보자. 21대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110일기준 23,340건이다. 정부나 위원장이 발의한 건수는 제외한 숫자다. 이중 가결된 것은 6,833건인데 원안 그대로 가결된 안건은 고작 338건이다. 그냥 별 고민이나 연구없이 일단 발의부터 한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입법권자로서 기본이 안 되어 있단 의미다.

더 가관인 것은 개별의원의 대표발의 건수다. 110일기준 법안발의 건수 상위 10위를 보면 절로 입이 벌어진다. 1위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 수는 325건이다. 임기동안 4일마다 한 건씩 발의한 셈이다. 그런데 그중 원안대로 가결된 건수는 단 한 건이다. 2위는 281건을 대표발의했는데 원안대로 가결된 법안은 0건이다. 10위 의원이 발의한 건수는 163건이다. 역시 원안대로 가결된 법안은 0건이다. 다들 비몽사몽 상태에서 생각없이 법안을 남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법안발의 건수로 의정활동을 평가하는 멍청한 행태가 반복되는 한, 이런 무지막지한 입법 남발 역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특히 입법 남발이 문제인 이유는, 불필요한 업무를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보좌진은 물론이고 입법조사처, 예산정책처 구성원들의 불필요한 노동도 포함된다. 해서는 안 되는 입법, 하나마나한 입법을 남발하는 정치인은 그 자체로 국민을 괴롭히고 나라를 망치려고 작정했다는 의미로 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밥값도 못하고 양식만 축내는 것도 모자라 온갖 저지레만 하는 부류라는 의미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사업도 마찬가지다. 예비타당성조사는 1999년 김대중 정부때 정부 재정이 대규모로 투입되는 사업의 정책적·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검증·평가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에 국고 지원이 300억 원을 넘는 사업 등을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정부(기회재정부)가 보유한 통계(2005~2023)만 보더라도 이 기간 동안 398건의 사업이 예타면제를 받았다. 해마다 평균 20건 정도의 사업이 예타 면제를 받은 셈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시기는 그 수가 폭증했다. 2017년과 2022년을 제외하고서라도 201830, 201947, 202031, 202131건에 이른다. 마구잡이식 예타면제가 이뤄져 왔다는 방증이다. 2008년부터 2023년까지 15년간 총사업이 각 1조 원 이상 소요되는 사업 52건의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됐다. 나라야 망하건 말건 정부와 정치권이 한통속이 되어 마구잡이식으로 예타를 면제해왔다는 의미다.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한 사업의 경우 국가재정법 제38조제2항에 따라 기획재정부 주관의 타당성 검토 절차를 거치지 않고 주무 부처에서 관련 규정과 절차에 따라 사업을 추진한다. 사업과정에서 관련 법령에 따라 예·결산, 성과관리 등을 통해 점검하고 관리한다고는 하지만 잘될 턱이 없다. 문제는 이렇게 예타가 면제된 사업에 따른 비효율과 낭비에 대해 그 어떤 공무원이나 정치인도 금전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결국 국민 부담을 가중시킨 당사자들은 책임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셈이다. 이러니 별 고민없이 예타를 면제하는 것이다. 제 주머니 돈을 쓴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특별법 남발은 또 어떤가. 특별법은 일반법에 우선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다 보니 너도나도 특별법을 남발한다. 특별법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는 법이 된 상황이다. 20241월현재 시행 중인 특별법만 136건에 이른다. 2010~2013년까지 불과 13년간 제정된 특별법만 93건에 이르고, 문재인 정부 때 마련된 특별법만 전체의 1/3이 넘는 39건에 이른다.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무능력한 정부와 정치인들이 특별법을 남용해 온 셈이다.

독일 법학자 엘리네트는 일찍이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했고, 유방(劉邦)은 약법삼장(約法三章)만으로 민심을 얻어 천하를 평정했다. 법과 제도를 새로 만들거나 고치는 일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다. 왜냐면 법문 한 줄이 마치 날카로운 칼날과 같아 사람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핸드폰이나 냉장고 한 대를 사면서도 요모조모 따지고 소비하는 것이 자기 돈 쓰는 인간의 속성인데, 수천억, 수조원의 혈세가 들어가는 줄 알면서도 함부로 결정한다는 것은 도적(盜賊)과 진배없다.

이런 일들은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아야 하고, 그 기준에서 4월총선의 영입과 퇴출인사를 구분하는 노력도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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