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지능인, 지원 법률도, 정부 정책도 없다?!
전지혜 교수 “가장 시급한 것은 대상자 발굴”

본 사진은 내용과 무관합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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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계선 지능인’ 규모는 약 500~6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체 인구의 약 13% 수준이다. 경계선 지능인은 지능지수가 70~85인 사람으로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사회활동에 어려움을 겪지만 ‘장애인’에 해당되지 않아 국가 지원이 전무하다. 이런 상황에서 경계선 지능인이 홀로 아이를 양육하는 사례가 확인되면서 전문가들은 의도치 않은 아동학대 및 방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 지원이 전무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우선, 실태조사를 통한 대상자 발굴이 선행돼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지난 1월22일 국회입법조사처(조사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계선 지능인’ 규모는 약 500~6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경계선 지능인이란 지능지수(IQ)가 70~85인 사람으로, 의사소통과 노동이 가능한 지적 수준을 지닌 이들을 일컫는다.

정부의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경계선 지능인은 또래보다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성인이 돼서도 사회활동에 어려움을 겪지만 ‘장애인’에 해당되지 않아 국가 지원이 전무한 상황이다.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사각지대 문제가 대두된 것 또한 최근이다.

500~600만에 달하는 경계선 지능인 중에는 한부모로서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사례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원활한 사회활동이 어려운 만큼 아동 양육에 있어서 아이에게 의도치 않은 결핍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조사처는 ‘경계선 지능인 한부모 지원을 위한 입법·정책 과제’에서 경계선 지능인 한부모 지원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 검사비용 지원, 사례관리 지정, 가정방문서비스 의무 제공 방안 마련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경계선 지능인 양육자의 경우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학대가 아닌, 부주의 및 돌봄 능력 부족으로 아동이 안전사고 등의 위험에 처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계선 지능인 지원 명시된 법률 ‘전무’

현재 우리나라에서 경계선 지능인 지원을 명시하고 있는 법률은 전무한 상황. 제21대 국회에서 ‘경계선 지능인’ 관련 총 4건의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서울시는 2020년 지자체 최초로 ‘서울특별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 조례’를 제정한 이후 2024년 1월 기준 57개의 지자체 및 교육청에서 경계선 지능인 지원 관련 조례를 제정해 시행 중에 있다.

하지만 이중 34개 조례가 경계선 지능인의 ‘평생교육 지원’에 관한 조례라 주로 교육활동에 초점을 두고 있다. 정부 사업 또한 아동복지시설의 경계선지능 아동에게 사례관리서비스 정도가 제공되는 것에 그치는 실정이다. 이를 두고 조사처는 “양육인으로서의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복지 서비스는 전무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사처 ‘한부모가족지원법’, “경계선지능인 한부모 규정 따로 둬야”

경계선 지능인 한부모의 양육을 지원하고 아동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되는 법률이 마련돼야 한다. 이에 조사처는 “‘한부모가족지원법’에 경계선 지능인 한부모 규정을 따로 두면, 국가 및 지자체에 이들에 대한 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무를 부여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자녀를 양육하는 경계선 지능인 중 가족과 지역사회로부터 고립된 한부모는 아동안전 및 보호에 있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기 쉽다. 이에 무료 검사 실시와 그 결과를 토대로 지자체가 해당 가정의 양육 현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나아가 경계선 지능인 한부모를 통합사례관리 대상자로 지정해 가정방문서비스를 의무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조사처는 “양육교육, 아동안전 및 발달상태 서비스 제공과 더불어, 전문가의 개입 및 판정을 통해 홀로 양육하는 게 아동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장기적인 양육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시했다.

전지혜 교수 “실태조사, 고용·교육 지원 정책 필수”

지난 1월26일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 상황에 대해 취재진에게 “정부 지원이 전무해 경계선 지능인은 사각지대에 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경계선 지능인의 경우 장애인 복지 등 어떤 혜택도 받을 수 없다.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교육을 받고 고용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교육과 취업에 어려움을 겪지만, 정작 복지 수혜 대상자는 아니라 사각지대에 처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우리나라는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전국적인 실태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다. 조사를 시도한 적도 없고,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다. 몇몇 지자체에서 조례와 계획 등을 발표했으나, 정책을 만들어도 실태조사 자료가 없으니 대상자 발굴이 굉장히 어려운 실정이다”라며 “이에 선행돼야 할 것은 경계선 지능인 발굴을 위한 조사작업이다”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장애인의 경우 의무 고용 제도가 있다. 이처럼 경계선 지능인도 직업 훈련이나 고용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이들을 위한 별도의 고용 정책은 필수다”라며 “일자리와 교육 지원이 선행된 이후 복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분석했다.

전 교수는 경계선 지능인 한부모와 관련해 “상당히 많다. 경계선 지능을 가진 엄마인데 양육을 잘못해서 아이들이 방임되는 사례가 있다. 아이를 봐야 한다는 말을 정말 눈으로 봐서 아동이 영양실조에 걸린 적도 있었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양육지원이다”라고 방안을 제시했다.

법의 보호와 정책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계선 지능인의 사각지대가 드러난 가운데, 경계선 지능인 가정의 아이들은 의도치 않은 아동학대와 방임 위험에도 처해있다. 전문가들은 하루빨리 정책 지원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대상자 발굴을 위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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