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교장 “원칙 어기는 관례는 용납 안 된다”
학부모 “야구부 감독 A씨, 청렴하고 실력 있어”

이효준 배재고 교장. [배재고등학교]
이효준 배재고 교장. [배재고등학교]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고교야구 분야 명문 사립으로 알려진 배재고등학교가 야구부 감독에게 ‘재계약 불가’를 통보하며 학부모들의 반발을 샀다. 배재고는 서울시 교육청 감사 결과를 토대로 ‘중징계 권고’ 처분을 받은 감독 A씨의 재계약이 어렵다는 입장을 냈다. 반면 학부모들은 “관례로 이뤄지던 것”이라며 “동계훈련 중이라 시기가 좋지 않다”라고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결국 열띤 논의 끝에 A 감독의 재계약이 성사되며 일단락됐으나, 일각에서는 야구계의 전망을 두고 이 사안을 무겁게 보고 있다. 

서울시 강동구에 위치한 배재고등학교는 1885년 개교해 여전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사립학교다. 특히 교내 야구, 축구, 럭비 등 총 4개의 엘리트 운동부가 우수한 성적을 내며 선진 스포츠 체계의 성과를 자랑하기도 했다.

지난 1월4일 배재고는 교내 운동부인 야구부 감독 A씨와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해 실시된 교육청 감사에서 ‘학교 회계 절차 및 관리 지침 미준수’ 등으로 ‘중징계 권고’ 처분을 받으며 재계약이 불발된 것이다.

현행 ‘학교체육진흥법’에는 금품 및 향응수수, 음성적 경비 각출, 회계처리 부적정 등 학교 및 체육회로부터 징계 처분을 받은 경우 학교가 계약해지 및 재계약을 거부할 수 있다. 이에 배재고는 A 감독과 재계약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A 감독의 남은 계약 기간은 오는 2월 말까지다.

학교 측은 A 감독의 근무 성적이 기준점인 60점을 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근무 성적 평가 과정에서 ‘신입생 동계 훈련 참가’가 문제가 됐다. 현행 학교운동부지도자관리규정 제18조 등에 따르면, 입학예정 학생은 전지훈련 등 교외 훈련을 금지하도록 명시돼 있다.

학기 전 1학년 입학 여부를 명확히 확인할 수 없을뿐더러, 훈련 비용 등 관련 회계를 학교에서 직접 관리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각 시·도 교육청에서는 입학예정 학생을 동계훈련 등에 동원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학부모 신임 받는 감독, 불거진 반발

이와 관련 학부모들은 이의를 제기하며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꾸려 학교 측 입장 반박에 나섰다. 비대위는 “갑작스럽게 재계약 불가 소식을 접해 황망한 상태”라며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된다”라고 밝혔다.

비대위는 “A 감독은 배재고에서만 10년 이상 근속했으며, 지난해에는 학교로부터 근속 표창까지 받았다”라며 “청렴하게 야구부를 운영하고 있고, 소수 정원의 선수들을 데리고도 꾸준한 대회 성적을 내고 있어 야구계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학교 측에서 문제 삼고 있는 교육청 징계와 관련해서는 “야구부 정원이 다른 학교에 비해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한 학년만으로 모든 포지션을 감당할 수 없어 1학년 선수들도 경기에 출전하고 있고, 이에 입학예정자를 동계훈련에 참여시켜 기량을 조기에 끌어올리는 방법을 취해온 것”이라서 사정을 밝혔다.

이어 “신입생들의 동계훈련 참여는 철저히 자발적인 동의하에 이뤄졌고, 소요되는 비용과 지출 관리 또한 부모들의 동의를 거쳐 투명하게 이뤄졌다”라며 “관례와 선의로 진행한 훈련이었다”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시기가 좋지 않다”라며 “동계훈련을 앞둔 시점에서 재계약 불발은 앞으로 몇 년간의 대회 성적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지적했다. 취재진은 A 감독의 입장을 듣기 위해 비대위를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비대위 관계자는 “A 감독의 상태가 좋지 않다. 같은 입장이니 접촉을 자중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효준 교장 “원칙 지켜져야 공정”

취재진은 지난 1월25일 이효준 배재고 교장을 만나 입장을 들었다. 이 교장은 “동계훈련의 경우 서울시 교육청 스포츠건강관리과에서 철저하게 신입생 동원은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라며 “관행적으로 이뤄진 것이 학교 운동부 운영지침을 정면으로 위배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관행이라고 하는 말로 우리가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언제 원칙을 지키고 공정한 사회가 되겠는가”라며 “어렵게 내린 결정이다. 지난 1월29일 심의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부모의 입장을 귀담아듣고 최종적인 결정을 내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배재고 야구장. [박정우 기자]
배재고 야구장. [박정우 기자]

갈등 봉합, 이효준 교장의 혁신적인 운동부 개혁은?

결국 지난 1월29일 A 감독과 재계약을 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였다. 배재고 학교운영위원회는 야구부 감독 교체 시기가 동계훈련 직전인 만큼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했다. 이는 이 교장과 A 감독, 학부모 비대위 대표의 면담에서 이뤄졌다.

학부모 비대위 관계자는 이날 취재진에게 “이효준 교장의 용단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라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다. 지금까지 어려운 과정을 넘어 아이들의 미래와 학교, 학부모, 야구부 지도자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장은 같은 날 취재진에게 “학교운영위원회의 뜻을 존중하고 결정을 내렸다”라며 “학교 운동부 운영 매뉴얼과 법령을 위반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학생과 학부모를 위한 선택이었다”라고 전해왔다.

한편 이효준 교장은 앞으로도 학교 운동부 개혁 및 학생 건강 증진을 위해 심혈을 기울일 예정이다. 이 교장은 “다소 생소한 럭비를 1학년 체육 교육과정에 넣었다. 2학년은 필라테스 강사를 초빙했고 올해는 격투기를 교육과정에 포함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1인 3운동 원칙이 있다. 3학년 동안 3개의 운동을 경험해 보는 것. 축구나 농구는 접하기 쉽지만, 다른 스포츠의 경우 그렇지 않다. 학생들이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공부만큼 중요한 게 인성이다. 전인교육을 위해 일인삼기 스포츠로 청소년 체육을 지원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효준 교장은 평소 학생들과도 민소매를 입고 같이 축구를 하거나 농구대회에 나가 우승하는 등 학생과 스포츠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왔다. 이 교장은 “헬스장도 개방하는 등 모든 학생이 상향 평준화가 되는 스포츠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재계약 건은 마무리됐다. 한편 배재고 야구부는 현재 경남 창원에서 동계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이후 오는 7일까지 창원 지역 윈터리그, 이달 16일부터 27일까지 충청 지역 윈터리그에 참여한 뒤 일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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