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 권위주의 체제 경험, '기관'은 권력과 권위, 위협적 존재
- 의사확대 등 의료 개혁 반대 의료계, 국민 걱정하는 척 '국민의료' 협박
하늘 아래 동일 인격체 존중 인권사상...전 근대적 서열 문화 청산해야

중국인은 차()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다할 정도로 4천여동안 차를 즐겼다. 중국을 가본 사람은 엉망인 서비스에 혀를 차면서도 공공장소나 지방 소도시 어디서도 차를 마실 수 있게 뜨거운 물을 제공하는 서비스만큼은 최고라고 말한다. 그만큼 중국인에게 차는 생활이고 인심이고 최소한의 배려와 소통이다.

그러나 최근 중국에서는 차 한잔이 공포의 관용어가 됐다고 한다. 우리의 경찰, 국정원을 합친 중국 공안당국이 '같이 차 한잔 하시죠'라며 부르면 수사가 시작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국 정보당국인 국가보안국은 지난달 31일 공식 위챗(微信) 계정에 이 관용어를 인용한 ‘10가지 차를 국가기관과 함께 마시지 말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게재했다.

중국 당국이 지난해 7월 시행된 반간첩법 개정안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친절한 서비스인데 보고 듣는 이들은 공포 그 자체다. 개정안이 간첩행위의 범위와 처벌 규정을 크게 확대, 공안 당국 마음대로 법령을 해석,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다른 나라 수사기관은 애써 숨기는 공권력 과잉을 중국은 '언제든 당신들을 소환할 수 있어'라며 공개적으로 국민을 겁박하고 있다. 우정과 배려의 관용어였던 '차 한잔'이 공포의 벨 소리가 되어 버린 셈이다.

우리에게도 가장 친근했던 단어가 살벌한 공포의 저주가 되어 버린 단어가 있다. 동무라는 표현이다. 예전에는 '동무야 놀자, 동무야 학교가자등 친근한 사이끼리 쓰던 우리말인데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가 되고 동지를 뜻하는 'Comrade'를 동무로 번역하면서 남쪽에서는 동무라는 단어가 금기어가 됐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도 본래는 "동무 따라 강남 간다"였다. 마치 인민은 북한 사람이고 국민은 남한 사람이고 노동자는 좌파고 근로자는 우파이듯이. 차이는 있지만 '우리'라는 단어도 그렇다. 영어권 사람들은 'my wife' 'my family'라고 하는데 우리는 '우리 집사람' '우리 애들'이라고 소개할 만큼 '우리'는 단어나 관용어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지지세력이 구 민주당과 결별하면서 창당한 정당 명칭을 '열린우리당'으로 하고 그 줄임말을 '우리당'이라고 하면서부터 '우리'라는 단어가 어색해졌다.

당시 한나라당은 우리당은 보통명사인데 통합신당 당 이름으로 쓰겠다고 하는 저의가 뭔지 모르겠다'열우당'이라고 불렀고 대변인은 브리핑 시작할 때 우리당은~’하던 것을 우리 한나라당은~’이라고 바꿔야 했다. 우리은행도 한때 우리이미지 때문에 고충을 겪었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 쓰던 보통명사나 관용어가 변질되어 '말과 단어' 자체가 권력이나 특정 상황, 관계를 상징하는, 암시하게 된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언어와 상징권력'에서 사회적 인정, 힘을 획득하는 '상징권력'은 언어, 대화를 통해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언어는 독점적이고 자발성을 가장한 복종을 담고 있어 언어 자체가 사회 구조의 산물이라는 얘기다.

세월이 많이 지나고 달라졌지만 군사독재, 권위주의 체제를 경험한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기관'이란 단어는 권력과 권위, 위협적인 존재다. 원래 뜻은 '사회생활의 영역에서 일정한 역할과 목적을 위하여 설치한 기구나 조직'으로 영어로는 Institute(연구소 등), Agency, Organ이다.

정부와 행정기관, 사법기관(·경찰), 입법기관(국회) 등 권위와 권력의 실체를 인정하거나 존중받아야 하는 조직이 '기관'으로 통칭되는 불가피하다.

문제는 민간 조직을 의미하는 Organ이 행정 등 공공조직을 의미하는 Agency 의미로 사용될 때다.

특정 직종과 무리들의 사적 이익을 옹호하는 협회나 협의체 등 민간 조직들은 그동안 '기관'이란 단어를 참칭(분수에 넘치는 칭호 사용)하여 '기관' 명칭에 내재된 권위와 권력을 사칭하고 유용해 사적 이익을 챙겨왔다.

대표적인 것이 의료기관, 법조기관이다. 이들 집단은 개인과 회사의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 사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의 이익과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공인, 공공기관으로 행사해왔다. (언론기관도 20여 년 전만 해도 4’ ‘밤의 대통령등 행세 꽤나 했으나 최근 인터넷언론 폭증으로 기레기’ ‘듣보잡’ ‘동네X신세여서 기관에서 제외했다.)

이들은 기능과 직업이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또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종사자, 회사이기 때문에 존중을 받아왔다. 그러나 길거리 포장마차나 대형로펌, 언론사나 병원 모두 그 본질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영리업체다.

이 같은 서열 문화는 남존여비(男尊女卑), 사노공상(士農工商), 문존무비(文尊武卑) 등 유교의 전 근대성의 잔재고 구악이다.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공무원들이 민원인에게, 변호사, 의사들이 비특권층 고객을, 백화점에서 판매원을 무릎 꿇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들은 국민들과 다른 특권적 혜택, 존중을 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1789년 프랑스혁명과 근대화, 1,2차 세계전쟁을 거치면서 선진국(일본 아님)은 타고난 가문과 직업이 아니라 하늘 아래 동일한 인격체로 평등하다는 인권 사상이 일반화됐다. 우리도 전 근대적이고 반 인권적인 서열 문화 잔재를 청산해야 21세기 글로벌 리더 그룹, 세계 문화시민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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