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마다 이어지는 '스포츠 영웅' 짝사랑, 정작 체육계 재선의원은 0명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영입인재 환영식에서 진종오 전 사격 국가대표에게 당 점퍼를 입혀주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l 박철호 기자] 정부·여당의 스포츠 영웅들을 향한 '러브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첫 개각 당시 '역도 영웅'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깜짝 발탁에 이어 국민의힘은 '사격 황제' 진종오 대한체육회 이사를 영입했다. 정치권은 국민적 인기를 가진 스포츠 스타들을 향한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으나, 정작 스포츠 스타 출신 재선의원은 아직 '0명'이다. 

국민 영웅 향한 꾸준한 '러브콜' 
지난 1년간 당정의 영입설이 제기된 스포츠 스타는 총 4명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6월경 개각에서 장 차관을 깜짝 발탁했다. 국가대표 출신의 차관 발탁은 박근혜 정부의 박종길(사격) 전 차관과 문재인 정부의 최윤희(수영) 전 차관에 이어 장 차관이 세 번째 사례가 됐다. 그 뒤 지난해 12월경 장 차관의 22대 총선 차출론이 급물살을 타면서 이영표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의 후임 차관 지명설이 거론되기도 했다. 다만 장 차관이 총선 출마와 관련 "뉴스를 보고 알았다"며 "맡은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밝혀 일단락됐다.

이어서 지난해 12월경 한 매체는 국민의힘이 박지성 전북 현대 테크니컬 디렉터를 영입해 수원에 공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박 디렉터는 "앞으로 저에게 제의를 안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일축했다. 그 뒤 국민의힘은 지난 5일 진 이사의 영입에 성공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인재영입식에서 진 이사를 고트(GOAT·역대 최고)로 표현하며 경기력은 물론 행정력도 뛰어난 인재라고 소개했다. 국민의힘은 현재 진 이사의 활용법을 두고 비례대표 후보 추천 혹은 수도권 전략공천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 스타 영입설은 선거철의 단골 메뉴 중 하나다. 특히 보수정당에서 국가대표 출신 체육인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편이다. 지난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둔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코리안 특급' 박찬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특별 고문·'피겨 여왕' 김연아 강원2024 홍보대사·'무등산 폭격기' 선동열 전 감독 등을 영입 명단에 올려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의 국보급 선수 영입설은 '짝사랑'에 그쳤으나, 실제 영입으로 이어진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 2012년 새누리당은 19대 총선을 앞두고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인 문대성 전 의원·탁구계의 전실인 이에리사 전 의원을 영입했다. 당시 문 전 의원은 지역구에서 당선됐고, 이 전 의원은 비례대표로 당선돼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지난 2022년에는 당구스타 차유람씨가 국민의힘에 입당하기도 했으나 2년 만에 당구계로 복귀한 바 있다. 아울러 21대 국회에서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 총감독을 맡은 이용 국민의힘 의원이 의정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국위를 선양한 스포츠 스타들은 유권자들의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인재이다 보니 정치권의 러브콜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정치권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스포츠 스타들이 상징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은 정치권이 숱하게 강조하는 공정의 가치를 실현한 사례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김민수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 차관이 발탁된 지난해 7월경 '국민의힘은 '페어플레이 정신', 역도영웅 장미란에 부끄럽지 않은 '공정 정당'이 되겠다'는 제목의 논평을 게시한 바 있다. 당시 김 대변인은 선수 시절 장 차관이 별명인 '내추럴(natural)'에 대한 일화를 설명했다.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장 차관은 경쟁선수들이 금지 약물을 복용하는 와중에도 정정당당한 승부 끝에 동메달을 획득한 사연이다. 

반면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각 정당들이 유명인들의 인기를 활용하고 싶은 수요가 큰 것"이라며 "보수정당은 운동권 인사 위주의 영입을 이어온 과거 진보정당에 비해 영입의 폭이 자유로웠던 만큼 유명인들의 영입에 적극적이었던 것이 아니겠나"라고 해석했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진 이사 이후에도 스포츠 스타를 영입하기 위한 시도는 계속될 예정"이라며 "국가대표 출신 선수 중에서도 정치에 뜻을 가진 분들이 많다. 체육인들의 경우 선수 시절 자기 종목의 협회가 저지른 각종 병폐를 개선하고 싶어하는 의지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적극적인 정치 행보를 보인 스포츠 스타들도 존재한다. '천하장사' 이만기 인제대학교 교수는 지난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남 마산갑에 출마해 낙선했고, 20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후보로 경남 김해을에 출마해 낙선한 바 있다. 

롯데자이언츠의 전설인 '무쇠팔' 고(故) 최동원 선수도 지난 1991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꼬마민주당) 후보로 부산 서구 광역의원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당시 최 선수는 경남고 선배인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러브콜을 뿌리쳤다. 김 전 대통령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과 손을 잡고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을 창당한 상황이었다.

당시 PK(부산·경남)는 김 전 대통령을 향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최 선수는 당선 가능성이 낮은 민주당을 선택했다. 최 선수는 당시 "대선배(YS)의 3당야합 부도덕성을 선거로 심판하기 위해 출마했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에 지난 2020년경 전재수 민주당 의원은 부산 민주당 당사에서 "바보 노무현 이전에 바보 최동원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스포츠 스타 재선의원은 0명, 22대 국회는 다를까? 
스포츠 스타를 향한 꾸준한 러브콜에 비해 체육인 출신 국회의원의 성공적인 연착륙 사례는 적은 편이다. 헌정사상 첫 스포츠 선수 출신 국회의원인 고(故) 황호동 전 의원은 의원 재직 시절인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역도 은메달을 따기도 했다. 하지만 황 전 의원은 재선을 달성하지 못하고 정계를 떠났다. 앞서 새누리당의 문 전 의원도 20대 총선 당시 인천 남동갑에 출마해 낙선했고, 이 전 의원은 공천 과정에서 탈락했다. 

롱런 중인 체육인 출신 정치인은 김영주 국회부의장이 유일하다. 4선의 김 부의장은 문재인 정부의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김 부의장은 1970년대 서울신탁은행 실업 농구단의 선수로 활약한 뒤 20여년간 금융노조에서 활동한 ‘노동계의 대모’로 불린다. 이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1999년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할 때 김 부의장을 노동계 인사로 영입한 바 있다. 다만 김 부의장의 정치 경력은 노동운동가에 방점이 찍힌 만큼 체육계 인사로 발탁된 뒤 재선을 달성한 정치인은 아직 없는 셈이다. 

현역의원 중 최초의 체육계 재선의원에 도전하는 정치인은 이용 국민의힘 의원과 핸드볼 국가대표 출신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존재한다.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이 의원은 22대 총선에서 하남시 출마를 선언했고, 경기 광명갑이 지역구인 임 의원은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과의 대결이 유력하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체육계·연예계 출신 유명인의 경우 정치권의 외부자다 보니 국회에 와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며 "코미디언 고(故) 이주일 씨도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코미디 한 수 잘 배우고 간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정치를 경험해보니 자신의 분야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는 판단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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