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기 쉬운 수학 개념을 詩에 담아 강의 보조자료로 활용”
“전자공학 분야의 전자와 빛알갱이 모습 우리 삶 이야기와 유사”

이경식 성균관대학교 정보통신대학 명예교수
이경식 성균관대학교 정보통신대학 명예교수

[일요서울ㅣ장휘경 기자] 10·20대 청소년들은 장래 직업에 대한 원대한 꿈이 있지만, 자신의 진로 설계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확신을 얻지 못해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일요서울이 다양한 직업군의 멘토를 만나 그 직업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알아봄으로써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직업관을 심어주고 진로를 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번에는 ‘전자공학시인’을 꿈꾸는 10·20 청소년들을 위한 멘토로 이경식 성균관대학교 정보통신대학 명예교수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경식 전자공학시인은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박사 학위는 미국 콜로라도대학교에서 마쳤고, 국내외 저명한 연구기관을 거친 후 모교인 성균관대학교에 부임해 30년간 강의와 연구직을 수행했다.

2020년 정년 퇴임한 그는 현재 성균관대학교 정보통신대학 명예교수로서 수학·과학 분야의 교양서적을 집필하면서, 이시경이라는 필명으로 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이경식 성균관대학교 정보통신대학 명예교수
이경식 성균관대학교 정보통신대학 명예교수

- 전자공학자를 양성하는 교육자로서 정반대 분야인 시인으로 등단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학에서 존경받기 위해서는 자기 전공 분야에서 연구와 강의가 탁월해야 합니다. 그렇다 보니 교수님들이 보통은 자기 분야에만 전념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에요. 저도 ‘시 쓰기’가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안 후로 처음에는 취미 삼아 조금씩 해 보았죠. 그러다가 정년퇴임을 몇 년 앞두고부터는, 이왕 시를 쓸 바에는 전자공학의 기반이 되는 수학·과학을 시에 접목하는 ‘시 쓰기’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전자공학이 시를 쓰시는 데 기여한 점이나 영향을 미친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전자공학에는 반도체, 정보통신, 디스플레이, AI·로봇 등의 분야가 있는데요. 이 분야에서 전자와 빛알갱이(광자)는 거의 항상 슈퍼스타로 활약합니다. 이들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 삶의 이야기와 유사해요. 저는 이들을 작품 속에 자주 등장시켰는데, 시 속에 이들이 자주 나오는 시집으로는 『n평원의 들소와 하이에나』와 『아담의 시간여행』이 있고, 과학 교양서적으로는 『과학을 시로 말하다』가 있습니다.

- 시를 곁들여 수학 개념을 재미있게 설명하는 『수학을 시로 말하다』를 출간해 주목받고 계시는데요. 그렇게 독특한 시를 구상하게 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고안한 것인가요.

▲제가 대학에서 가르쳤던 과목 중에서 특별히 애착이 갔던 과목 중 하나가 ‘공학 수학’입니다. 그 이유는 이 학문을 깊이 들여다볼 때마다 뭔가 심오한 진리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자칫하면 학문의 특성상 강의가 딱딱하고 지루해지기 쉬워서 재미있게 강의하는 데에는 뭔가 독특한 아이디어가 필요했어요. 그 방법은 바로 중요한 개념이 나올 때 그 수학 개념을 시에 담아 강의 보조자료로 올려주는 것이었는데요. 이렇게 태어난 수학 시집이 『라마누잔의 별 헤는 밤』이고, 수학 교양서적은 이번에 신간으로 나온 『수학을 시로 말하다』입니다.

- 수학과 과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수의 탄생과 진화과정을 쉽게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간단하게 소개해주세요.

▲초기 인류에게는 오늘날과 같이 복잡한 수들이 필요 없었어요. 그날그날 사냥하고 채집해서 살던 시절에는 손가락으로 사냥감이나 열매의 수를 세는 정도로도 충분했으니까요. 그러다가 곡식을 저장하거나 물물교환 등을 하게 되면서 더 큰 수들이 필요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수 체계들이 등장했죠. 그런데 그중에서 지금까지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아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는 아라비아 숫자는 어떠한 큰 수도 쉽게 표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연수와 정수가 탄생하였고, 인류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서 더 복잡한 수들이 필요하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서 농경지나 건축물을 정확하게 계획하고 측량하기 위해서는 유리수뿐만 아니라 무리수가 필요한데, 이 무렵 무리수가 발견됨으로써 수는 무리수까지로 확대되었죠. 그 후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여러 가지 자연이나 물리적 현상들을 수학적으로 해석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초월수인 e(자연로그의 밑)와 허수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초월수와 허수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과학과 공학의 발전도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19세기 중반에 이미 발명되었으나 거의 사용되지 않다가 최근에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나 로봇 제어와 같은 분야에서 활용되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사원수(4차원수)의 ‘부활’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수의 체계가 진화하려고 몸부림치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경식 성균관대학교 정보통신대학 명예교수
이경식 성균관대학교 정보통신대학 명예교수

-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수열과 그 속에 담겨있을 신비함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 한두 가지만 말씀해 주세요.

▲지금까지 알려진 신비한 수열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숨겨진 채 잠자고 있는 수열을 찾아내는 일은, 젊은 천문학자가 새로운 별자리를 찾아내는 사건처럼 매우 흥분되는 일일 거예요. 온라인 정수열 백과사전(OEIS)의 보고서에 의하면 이 백과사전에 해마다 새로 추가되는 수열이 1996년에서 2009년 사이에는 매년 1만 개 이상이었다고 하고, 2020년 말까지 그 수가 모두 33만 개를 훨씬 넘었다고 해요. 이 수열 중에서 어떤 수열로부터는 천상의 연주곡에 대한 영감을, 다른 어떤 수열로부터는 새로운 이미지나 시상 또는 아이디어를 불러일으켜서, 예술가나 과학자들에게 신선한 상상력을 제공해 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반대로 과학자나 예술가들의 연구 결과로부터 피보나치수열과 같은 수열을 발견하는 쾌거를 이룰 수도 있고요. 참고로 저도 수열로부터 영감을 얻어서 시를 창작하기도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벨의 땅」이라는 작품이에요.

무한히 계속되는 어떤 수열 속에는 나에게 던지는 어떤 깊은 메시지가 담겨있을지 모릅니다. 수열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그것이 무엇인지 가끔 한 번씩 상상해 보시면 어떨까요?

- 우리 주변의 기계적이거나 전기적인 시스템에 수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세상의 모든 것들은 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변화하는 정도’, 즉 ‘변화율’이 바로 ‘미분’이에요. 따라서 우리 주변의 변화무쌍한 기계적이거나 전기적인, 또는 다른 어떤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분’에 대한 개념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신간 『수학을 시로 말하다』의 본문에서 ‘미분’에 대해서 비중을 두고 거듭거듭 설명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전자공학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와 시인으로서 시를 쓸 때 중 어느 때가 더 개인적으로 더 보람되고 즐거우신가요.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특히 강의를 준비하고 가르치면서 고뇌한 것들이 신선한 시가 되어 나올 때 가장 보람되고 즐거웠던 것 같아요.

- 앞으로의 계획이나 희망 사항, 미래 청사진은 무엇인가요.

▲교수이며 시인으로서 젊은이들에게 꿈이 되고 격려가 되는 이름다운 글을 남기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전자공학시인을 꿈꾸는 10·20 청소년들을 위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저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것이 계기가 돼 대학원과 연구소 등에서도 그와 유사한 분야를 연구하게 되었는데요.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연구소나 대학에서 연구하면서 느낀 점은, 어느 분야든지 조금만 깊이 들어가도 수학이 약방의 감초처럼 나오고 수시로 물리와 낯선 공학들이 나온다는 것이에요. 이와 같은 현상은 다른 공학 분야에서 연구할 때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요즘 세상에 나오는 어느 로봇 제품을 봐도 깊이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전자공학뿐만 아니라, 수학, 물리, 기계, 금속, 재료, 항공, 예술,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가 융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시’와 같은 문학 작품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일터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난 수학적·과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시 쓰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시집을 포함해서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할 수 있었거든요. 이번에 출간한 교양 수학 서적인 『수학을 시로 말하다』도 ‘수학’과 ‘시학’이라는 서로 다른 두 분야를 융합해, 수학을 꺼리는 이들도 흥미를 갖고 까다로운 수학을 개념이나마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 쓰기’를 포함해서 문학 작품을 구상하는 (전자공학을 포함한 모든 분야의) 청소년들에게, 어느 전공 분야에 있든지 열정과 창의력만 있으면 그곳에서 멋진 작품을 선보일 수 있으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큰 꿈을 꾸라고 격려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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