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보면 힘든 일, 스트레스 받는 일들이 수 없이 많지만, 그 중 하나는 대한민국 유권자 노릇임이 분명하다. 첫 직선 대통령을 뽑게 된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 선거만 8, 국회의원 선거는 9, 지방선거가 8번 있었다. 이 모든 선거에 참여한 1967년생 이상 유권자라면 지금까지 25번의 유권자 노릇을 스트레스를 참아가며 해낸 것이다. 경의를 표한다.

물론 선거 스트레스(election stress)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유권자 노릇에 대한 스트레스는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트럼프(공화당)와 힐러리(민주당)가 강하게 맞붙었던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미국인 중 52%선거 스트레스 장애(election stress disorder)’를 겪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작년 5월 발표된 미국 논문에서는 트럼프와 바이든이 맞붙었던 2020년 선거 당시, 트럼프의 낙선에 불복한 시민들이 의회 의사당에 난입하고 폭력을 행사한 사건으로 미국 성인 12.5%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었다고 조사되었는데, 이는 평소 미국 성인 평균인 3.5%의 세 배가 넘는 수치였다. 또 다른 두 편의 논문에서는 2016년과 2020년 미국 대선 기간 급성 심근경색, 심부전, 또는 뇌졸중으로 입원한 환자를 조사했는데, 2016년 대선 기간에는 평소의 1.6, 2020년 대선 기간에는 1.2배 였다고 한다. 못된 정치가 국민까지 죽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의 공식적 조사는 없지만, 예상은 할 수 있다. 미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특히 지난 대선 이후, 갈등이 최고조로 높아가고 있는 이번 총선이 국민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것은 불보듯 뻔하다.

그 전조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기득권 정당들은 상대를 정치의 파트너가 아닌 절멸시켜야 할 대상으로 지목하고 날선 말들을 뱉어낸다. 이러한 말들은 공중파 뿐 아니라 유튜브 등 더 강력한 채널을 통해 유궈자들에게 유포된다. 유튜브는 또 개인 메신저를 타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흘러간다. 도저히 선거 스트레스를 피해 벗어날 도피처가 없어 보인다. 벌써부터 스트레스가 오른다.

필자가 처음으로 치른 선거는 1997년 대통령 선거였는데, 현역 사병 시절 군대에서 맞이한 선거였다. 전역을 앞둔 당시 IMF사태 등 극한 위기의 대한민국 5년을 맡길 사람을 뽑는다는 과정 자체가 여러모로 큰 효능감을 준 기억이 있다. 인생 첫 선거였고, 중대한 투표였고, 또 군이라는 특성 상 선거에 대해 누구와도 상의할 수 없었다. 오롯이 혼자의 결정을 따른 것이다. 당시 밤 10시 정해진 취침시간을 넘겨가며 개표결과를 지켜보며 손에 땀을 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이후 치러진 선거는 그 만큼의 효능감을 준 기억이 없다. 직접 선거에 참여해 누군가와 당락을 함께하기도 했지만, 당락과는 별개로 선거는 늘 스트레스였다. 당시를 떠올리며 이번 선거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한 나만의 해법을 찾아본다.

첫째, 이번이 내 인생 첫 선거라는 생각으로 이번 선거를 즐겨보자. 첫 선거를 대하는 마음으로 정당과 후보를 살펴보고, 그들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보자. 둘째, 이번 선거가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새기고, 정당과 후보들의 미래 비전이 무엇인지, 지킬 수는 있는지 생각해보자. 마지막이 제일 중요한데, 누구와도 선거 얘기로 상의하지 말아보자. 내가 생각하는 선거에 대해서도 말하지 말고, 남이 하는 얘기도 가급적 피해보자. 오롯이 후보와 정당과 나 사이에서 미래 대한민국에 관한 일로 이번 선거를 대해보자. 대게의 스트레스는 상대에 대한 편견과 강요에서 시작된다. 이것만 좀 줄여도 선거 스트레스가 더 낮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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