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선생, 유관순 열사 수감됐던 역사적 공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박정우 기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박정우 기자]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일제 통감부는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독립운동가를 투옥하기 위해 1907년 서대문형무소를 건설, 1908년 문을 열었다. 이후 1998년 서대문구가 관리하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개장해 현재에 이르렀다. 3월1일에는 인근 서대문독립공원 일대에서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 행사가 개최된다.

서대문형무소는 완공 당시 ‘경성감옥’으로 불렸으며, 약 500명을 투옥할 수 있는 560여 평 규모의 목조건물이었다. 1923년에 이르러 서대문형무소로 개칭하게 됐으며 1944년 기준 2890명이 수용돼 있었다. 

백범 김구 선생, 강우규 열사, 유관순 열사가 수감됐던 걸로 알려진 서대문형무소는 1945년 광복 이후 ‘서울형무소’로 명칭을 바꾸고 반민족행위자와 친일세력이 수용됐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에 따라 이광수, 노덕술 등 친일파가 수감됐다.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의 감방 벽면에는 ‘시찰공’이라 불리는 감시창을 뚫어 수감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또한 일본인 간수들은 총과 칼을 소지한 채 수감자에게 무차별적 구타를 자행해 식민지 통치의 폭력적 행태를 드러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박정우 기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박정우 기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박정우 기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박정우 기자]

지난 28일 취재진이 방문한 현장에는 주로 가족과 함께 방문한 어린이들이 태극기를 들고 뛰놀고 있었다. 입구 바로 앞 서대문형무소역사전시관에서는 당시 역사적 맥락과 상황이 상세히 설명돼 있었다.

이어 감옥과 시찰공 등을 관람 및 체험할 수 있고,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인물 소개를 엿볼 수도 있었다. 일제는 당시 위압감을 주기 위해 정면의 지붕을 높고 웅장하게 세웠다. 내부 감옥은 수감자들이 누울 수도 없는 좁은 공간이었고, 결국 교대로 잠을 청했다고 전해진다.

오는 1일에는 역사관 내에서 기념무대와 배우들의 독립운동 재현 퍼포먼스, 역사어린이합창단의 공연, 3.1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삼창이 펼쳐지고 독립문 앞까지 약 350m 구간에서 시민들의 만세 행진이 진행된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박정우 기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박정우 기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박정우 기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박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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