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08년 고조선 멸망 이후 지배층 유민들은 이웃 후국(侯國, 제후의 나라)으로 피란하거나 새 국가를 세우고자 해 민족대이동의 제1차 파동이 일어났다. 고조선 유민의 일단은 남하해 진한(辰韓, 경주 일대) 지역에 정착했다가 고조선 왕족 청년이 말을 타고 찾아오자 그를 박혁거세 왕으로 추대해 고조선을 계승해서 BC 57년 신라(新羅, 사로국·斯盧國)를 건국했다.

신라는 천년에서 8년이 모자라는 992년(기원전57~935)을 존속한 국가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역사가 긴 국가이다. 신라보다 역사가 긴 국가는 1,058년(395~1453)을 존속한 동로마(비잔틴)제국뿐이다.

박혁거세(朴赫居世, BC 69~AD 4/재위 BC 57∼AD 4)는 신라의 건국시조이다. <삼국유사>의 건국신화에 따르면 기원전 69년에 알에서 태어났다. 경주 지역을 다스리던 여섯 촌장들(斯盧·사로 6촌)의 지지를 받아 우리나라 고대 왕권 국가의 문을 여는 신라를 세웠다. 고구려의 추모왕 고주몽(高朱蒙)보다 20년 먼저, 백제의 온조왕(溫祚王)보다 40년이 앞선 시점이었다.

기원전 69년경. 한반도의 남동쪽에는 여러 부족 국가들이 모여 연맹을 이룬 진한이 있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진한 중에서 경주 지방에는 여섯 개의 마을이 있었는데, 이들 촌장은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 임금으로 세우기로 뜻을 모았고, 고허 촌장 소벌공(蘇伐公)이 ‘나정(蘿井)’ 우물가에서 무릎을 꿇은 채 울고 있는 흰말을 보고 다가가니 흰말은 크게 울면서 하늘로 올라갔고, 흰말이 있던 자리에는 금궤 속에 자줏빛 알이 있었다.

촌장들이 알을 건드리자 껍질이 갈라지면서 한 사내아이가 나왔다. 동천(東泉)에 목욕시키자 몸에서 광채가 났다. 촌장들은 하늘에서 임금을 보내주었다고 생각하고 사내아이의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고 지었다. 혁거세란 ‘세상을 밝게 한다.’는 뜻이다. 박처럼 생긴 알에서 나왔으니 성은 박씨가 되었다.

5년 뒤, 알영(閼英)이라는 여자아이가 계룡(닭처럼 생긴 용)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났다. 훗날 알영은 박혁거세의 부인이 된다.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임금이 ‘천손(天孫, 하늘의 후손)’임을 내세워 신성시하려는 의도이다.

기원전 57년. 촌장들의 손에서 자란 13세의 박혁거세는 ‘서라벌’(사로, 계림)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었다. ‘신라(新羅)’는 제22대 지증왕(智證王) 때인 503년에 고쳐 붙인 이름이다.

혁거세의 치적과 사람됨을 보여주는 기사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혁거세는 어질고 지혜로운 왕이었다. 재위 30년에 낙랑군(樂浪郡)이 침범했는데, 밤에도 문을 걸어 잠그지 않고, 노적가리가 들을 덮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사람들은 서로 훔치지 않으니 도의가 있는 나라”라 하고 물러났다.

둘째, 재위 38년에 호공(瓠公)을 마한(馬韓)에 보냈는데, 그는 마한 왕에게 “창고는 가득 차고 백성은 서로 존경하고 겸양한다.”며 그 공을 혁거세왕 부부에게 돌리고 있다.

셋째, 마한 왕이 자기네에게 공물을 바치지 않는다고 사신 호공에게 화를 낸 일이 있었는데, 훗날 그가 죽자 한 신하가 “마한 왕이 지난번에 우리 사신을 욕보였으니 이제 그의 장례를 기회로 정벌하면 쉽게 평정할 수 있습니다.”라고 건의하였다. 혁거세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요행으로 여기는 것은 어질지 못하다.”라며 따르지 않고, 곧 사신을 보내 조문하였다.

박혁거세는 약 61년간 나라를 다스리다 경주시 탑동에 있는 오릉(五陵)에 묻혔다. 박혁거세 설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기이한 출생담은 신화적 내용을 가지고 있다. 장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은 그 민족 고유의 사상과 역사적 체험이 용해된 건국신화(建國神話)를 가지고 있다. 건국신화는 초월적 권위에 기대어 국가출현과 왕권을 신성시하여 국민을 단결시키기 위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뿌리이자 민족사의 주축이 된 신라의 건국시조 박혁거세를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瑞祥福地待人君(서상복지대인군) 상서로운 복된 땅 (여섯 촌장이) 임금을 기다렸는데

順理諸方翼戴欣(순리제방익대흔) 모든 촌이 마땅한 이치로 추대하여 받들었네

人傑鷄林傳信息(인걸계림전신식) 인걸들이 경주에서 먼 곳의 소식 전하여

天孫徐伐啓風雲(천손서벌계풍운) 하늘의 자손(박혁거세)이 서라벌에서 나라를 세웠네

同仁積善千秋礎(동인적선천추초) 차별 없는 사랑과 선을 쌓아 천년사직 기초 닦았고

壯志伸張萬世勳(장지신장만세훈) 크게 품은 뜻 신장해 만세의 공훈을 이뤘네

陰德景流韓半島(음덕경류한반도) 숨은 덕행은 우리나라에 상서롭게 흘러

海東一祖史云云(해동일조사운운) 우리 민족의 한 조상으로 역사에 일컬어지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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