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에 올려져 있던 팻말에 적힌 문구인데,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대통령인 자신이 다 짊어진다는 의미다. 바이든 대통령은, 장인(匠人)이 백악관 나무에 이 문구를 새겨 넣은 패를 취임 열흘을 맞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대통령의 막중한 책임감을 조언한 의미로 읽힌다. 윤 대통령은 이 패를 집무실에 비치해두고 있을 것이다.

이 문구는 얼핏 좋게 보이지만, 달리 보이기도 하다. 이 말은 모든 영광도 나에게 있다.”는 의미 또한 동시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대통령이란 직책은 고독한 자리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왕조시대 황제나 임금들이 하던 말과 같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복잡하고 다양한 일들이 수시로 발생하는 오늘날 대통령에겐 이런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이젠 이렇게 바꿔야 한다. “책임은, 권한을 가진 자가 직접 진다”.

이 말은 책임을 나누라는 의미다. 책임을 나눌 수 있도록 권한을 나눠줘야 한다. 권한(권력)의 효율적 분배가 좋은 정치(통치)의 기본이 된다.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읊조리며 내려다보는 절대권력자의 세상은 반민주적 독재국가에만 남아있다. 권한을 나눠야 책임도 나눠지고 리스크도 분산된다. 안전사고만 발생해도 나라가 온통 흔들리고, ‘대통령 탄핵운운하는 국가구조는 허술한 시스템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국가에서 툭하면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는 시스템은 정상이 아니다. 국가와 정부를 이렇게 허술하게 운영하면 안 된다.

여론에 등 떠밀려 내용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하는 사과는 허울 좋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정부 각 부처의 업무는 그 조직의 수장이 가장 잘 안다. 문제가 있다면 그 조직의 수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 다원화되고 복잡한 현재의 행정구조에서는 권한을 가진 사람과 책임을 지는 사람이 분명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명패는 각부 장관실, 각 산하 조직의 수장들 집무실에 비치해야 마땅하다. 대통령 1인에게 모든 화살이 집중되는 기형적이고 비효율적 구조를 깨부수기 위해서라도, 인사권의 파괴적 분배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선, 대통령에게는 각부 장관을 임명할 조건없는 권한을 부여한다. 국회는 장관후보자의 정책적, 정무적 판단 능력만 심사한다. 해당 장관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대통령에 의해 즉시 파면된다. 각부 장관은 해당 부서의 차관을, 차관은 실장을, 실장은 국장인사를 총괄한다. 국장은 과장이하 인사를 총괄한다. 부당한 인사가 드러날 경우 그 상급자는 즉시 파면되고, 부당한 인사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의 직책과 직위를 원상복구 시킨다. 모든 공기업 사장, 공공기관장은 해당부처 장관이 임명한다. 해당 공기업 사장, 공공기관장은 임원인사를 총괄한다. 임원은 소관 조직의 인사를 관장한다. 인사에서 부정이 드러나면 즉시 임원을 파면하고 책임을 묻는다.

이런 형식으로 소신껏 일할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되, 권리를 행사한 직접적인 당사자에게 혹독할 정도로 책임을 묻는 인사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구축되면 각자 맡은 영역에서 자율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다만 전쟁, 재난 등 국가적 비상상황 발생시에는 해당분야 최고전문가가 총리를 포함한 행정부 모든 장관과 인력을 통솔(지휘)할 수 있는 한시적 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잘못되면 그 책임은 최고전문가와 행정부처 장관들이 함께 진다. 그래야 대응과정상 비협조적 행태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

대통령에게 사소한 책임까지 몽땅 떠넘기는 시스템을 혁신하려면, 이렇게 인사권을 나누고 그 권한과 책임의 한계를 분명하게 설정해주면 된다. 언제까지 대통령에게만 막대한 권한과 권력을 위임하고,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을 부담시키며 서로 물고 뜯는 정쟁을 계속하도록 해선 안된다. 유능한 자에게 필요한 권한을 나눠 주고 그 책임을 정교하게 묻는 인사시스템만 제대로 만들어도 국가와 국정운영은 성공할 수 있다. 머리는 머리 역할을, 손발은 손발 역할을 하도록 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대통령은 국가의 발전적 미래, 국민의 행복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창조적 발상에 집중하고, 관료는 그 발상의 실현 가능성을 검증하고 추진하며, 국회는 국익의 관점에서 공정하게 평가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면 나라와 정부는 절로 굴러가지 않을까? 다시 이렇게 말해야 한다. “권한을 나누면 책임의 주체도 그만큼 선명해진다”.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운영 시스템을 보다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바꿔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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