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구 탐방을 마치고 양천구로 옮겨왔다. 첫 탐방지는 양천구 안양천이다. 양천구민의 안양천(성산대교~오목교, 5.4km) 사랑은 극진하다. 숨이 멎었던 안양천이 쉼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안양천 안내도.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안양천 안내도.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체육정원 안내도.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체육정원 안내도.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한강의 기적발상지, 산업화와 도시화의 젖줄
- 대표적인 겨울철새 도래지, 규모가 318,800

안양천은 한강의 기적발상지다. 안양천 물길은 구로, 금천, 안양, 군포 등 산업화 초기의 공업도시를 지난다. 안양천은 한때 우리나라 산업화와 도시화의 젖줄이었던 셈이다. 어느 순간 생활하수와 공업폐수의 하수처리장으로 변했다. 한순간에 생명은 사라졌다. 죽음의 강이 됐다.

지금은 생명의 강이 됐다. 630여 종의 동·식물이 살고 있다. 봄철이면 수천 마리의 가숭어 떼가 하천을 거슬러 오른다. 숲을 좋아하는 너구리도 산다. 물푸레나무 등 천연기념물도 산다. 생태 보고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하천 물길은 사람살이를 따라 흐른다. 생기가 피어나는 안양천 물길을 발맘발맘 걸어본다.

630여 종의 동식물 서식...가승어떼 장관

안양천.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안양천.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안양천은 한강으로 유입되는 4대 지천 가운데 하나다. 중랑천과 함께 가장 긴 지천이다. 조선시대에 대천(大川)으로 불렸다. 대천은 말내의 한자 표현이다. 말은 크다라는 의미의 접두사다. 말내 말고도 호계, 검암천, 누동천, 오목내, 맑은내, 갈천, 기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안양천이라는 이름은 김정호가 펴낸 대동지지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책은 186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6일 오전에 지하철 5호선 오목교역에서 내렸다. 10분 정도 걷자 안양천 오목교 입구에 도착했다. 안양천 제방을 따라 걸었다. 안양천의 최고의 조망명소라는 영학정(永鶴亭)으로 가는 길이다. 벚나무가 제방 양편으로 도열하고 있다. 끝이 없다. ! 바로 안양천 벚꽃길이었다. 둔치를 따라 조성된 안양천 벚꽃길은 양화교에서 광명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10km가 넘는 꽃길이다. 특히 양 길가의 벚나무 가지와 가지가 맞닿아 있다. 벚꽃이 한창일 때 자연스럽게 벚꽃 터널이 만들어진다. 아쉽다. 한 달 보름 뒤에만 왔어도 분홍빛 드레스 입은 벚나무를 볼 수 있었을 텐테.

벗나무길.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벗나무길.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영학정.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영학정.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영학정에 올랐다. 영학정은 최근에 만들어진 정자다. 안양천의 최고 절경을 볼 수 있는 장소라고 한다. 영학정에서 본 안양천은 자연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전혀 손을 댄 흔적이 없다. 자연의 풋풋함이 살아 있었다. 황량한 들판 한 가운데를 도도하게 안양천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강물도 탁했다. 훼손된 호안 블록 교체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물결은 평온했다. 강가의 비탈면과 수변에 고개를 들고 있는 건 마른 갈대와 억새뿐이다. 쓰러진 수초는 마치 흩어진 짚동 같이 헝클어져 있다. 옅은 갈색의 억새와 갈대와 쓰러진 수초가 계절감을 느끼게 해준다. 한강처럼 잘 다듬어진 강변과 잘 가꾼 조경을 가진 곳은 아니다. 이곳에 안양천의 핫 플레이스라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안양천의 아름다움은 어디로 갔나...아쉬움

계절 탓일까. 안양천의 아름다움은 어디로 갔는가. 원래 양천 지역에서 부르던 안양천의 이름은 오목내였다. 오목한 하천이라는 뜻이다. 안양천은 수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직선 수로가 아니었다. 밭틀길 사이를 구불구불 흐르던 사행천이었다. 홍수 피해를 막는다는 이유로 직선화했다. 시멘트 콘크리트로 수변을 덮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자. 이중환이 쓴 지리 인문서, 택리지에 이곳의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잘 묘사되어 있다. 그것을 풀어서 쓰면 다음과 같다.

안양천이 휘돌아가는 바람에 사안(沙岸·모래언덕)이 만들어졌다. 모래언덕에 갇힌 물은 빠져나가지 못하고 연못이 됐다. 그곳에서 연꽃이 자라 군락을 이뤘다. 고려 때는 어가가 자주 와서 연꽃 구경하면서 묵기도 하였다.”

고려의 왕이 연꽃 구경을 위해 거둥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조선시대에도 이곳은 명승지로 이름을 날렸다. 조선 초기의 학자인 강희맹은 이곳은 한양 10경 중 하나로 꼽았다. 특히 눈 내리는 풍경과 석양이 지는 풍경을 양화답설(楊花踏雪)과 양진낙조(楊津落照)라고 노래했다. 양화와 양진은 한강과 안양천이 만나는 지점이다.

철새도래지 안내판.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철새도래지 안내판.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영학정 아래는 국궁장이 있다. 이 자리는 옛날 군사 훈련장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시설이다. 국궁장으로 내려왔다. 몇몇 궁사가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안양천 산책로인 서울의 바람길숲이다. ‘바람길숲은 서울 도심의 미세먼지 저감과 열섬효과 완화를 위해 조성한 생태 숲이다. 둔치에는 물에 강한 버드나무들이 많이 식재되어 있다. 수령이 꽤 오래된 듯 울창하다. 국궁장 옆에 철새 도래지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그렇다. 안양천은 대표적인 겨울 철새 도래지다. 그 크기가 318,800규모이라고 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 한 해 5,000여 마리가 안양천을 찾는다. 종류도 다양하다. 천연기념물인 원앙을 비롯하여 쇠오리, 흰빰검둥오리, 청둥오리 알락오리, 넓적부리, 흰죽지, 되새, 밀화부리, 비오리 등이 그것이다. 종류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국궁장옆 철새 도래지’ 5000여마리 찾아

눈을 크게 뜨고 안양천 곳곳을 훑었다. 새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 건너편에 한 무리의 새가 보일 뿐이다. 안양천을 떠나버린 것일까. 그렇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머지않았다. 가까이 있는 갯버들을 봤다. 기분 탓일까. 버드나무 가지에 연두색이 도는 듯하다. 곧 봄이 움틀 것 같다.

본격적으로 산책로로 들어섰다.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평행선을 긋고 있다. 자전거 도로는 한강과 안양천 합류 지점부터 경기도 의왕시청 부근까지 이어진다. 언덕이 없는 평지길 30km. 안양천은 자전거 바람이 거세다. 평일인데도 쉴새 없이 자전거가 달린다. 안양천은 자전거 천국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짐작이 간다.

산책로와 자전거길.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산책로와 자전거길.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1km쯤 안양천을 거슬러 올라갔다. 마치 경주 포석정처럼 꾸며놓은 공원이 나왔다. 실개천생태공원이다. 안양천 정비사업을 통해 버려졌던 둔치가 수변공원으로 변신한 곳이다. 실개천생태공원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물은 말라 있었다. 공원 안쪽에 조성된 테마원(장미원, 글라스원, 허브원)에도 꽃은 없었다.

또다시 1km쯤 올라갔다. ‘안양천 체육정원이 나왔다. 야구장, 족구장, 쉼터, 테니스장, 인라인스케이트장, 반려견 쉼터, 야생초 화원, 만남의 광장 등이 이어져 있다. 체육 정원 위편 둔치에는 맨발 황톳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맨발 걷기 효과가 알려지며 주민 동호회가 생겨나는 등 맨발 길에 관한 관심과 참여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허준이 쓴 동의보감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약보불여식보(藥補不如食補) 식보불여행보(食補不如行補)”가 그것이다.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게 낫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걷는 게 더 좋다는 뜻이다.

쉼과 아름다움의 '공존 자연법각성

영학정에서 본  안양천.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영학정에서 본 안양천.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필자는 1989년에 처음으로 미국 워싱턴D.C에 갔다. 덜레스 공항에 착륙할 때 보았던 포토맥강을 잊을 수 없다. 강변을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진, 잔디 깔린 경기장이 부러웠다. 우리도 미국처럼 땅이 넓지 않아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다.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공존하는 게 바로 자연법임을 몰랐다. 어쩌면 쉼터 중심의 미국과 캐나다 공원, 보여주기 중심의 프랑스, 이탈리아 공원보다 더 자연스럽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쉼과 아름다움 그리고 기능을 겸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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