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더불어민주당의 공천경쟁이 명문(明文)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시스템 공천을 강조했지만 계파갈등이 본격화하면서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 공천전망은 일부 잡음에도 무난한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연초 김종민·이상민·이원욱·조응천 등 대표적인 비명계 의원들의 이탈 이후 친명계와 친문계가 적절한 선에서 타협할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이는 양대 계파의 수장인 이재명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양산회동을 통해 화합과 통합을 강조하면서 명문(明文)정당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현실은 달랐다. 공천이 진행되면서 곳곳에서 파열음이 속출했다. 특히 서울 중성동갑 공천을 놓고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컷오프당하면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친문계의 강력한 반발에도 친명계 지도부를 이를 관철시켰다. 이후 한지붕 두가족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양측은 루비콘강을 건넜고 남남이 됐다. 야권 최대 이슈로 떠오른 명문전쟁의 전말을 짚어봤다.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 뉴시스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 뉴시스

- 이재명, 2017년 대선 경선 당시 저격이후 대표적 비문 낙인
- 경기지사 경선 혜경궁 김씨논란, 루비콘강 건넌 친명 vs 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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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대선경선 2022년 전당대회 거치며 친명계주도권 장악

명문충돌은 민주당 내부 권력이동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신주류인 친명계가 구주류인 친문계를 누르고 당의 대주주로 올라선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재명 대표의 정치인생 자체가 친문과의 대결의 연장선이었다. 멀게는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부터 가까이는 202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 맞닿아있다.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확고부동했던 시절에만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재명 대표는 2017년과 2021년 민주당 대선경선은 물론 2018년 경기지사 경선, 2022년 전당대회 과정을 거치며 친문진영과 격렬하게 대립했다. 22대 총선 과정에서 명문전쟁의 승자는 일단 이재명 대표다. 다만 명문전쟁의 여파로 민주당은 심리적 분당을 넘어 물리적 분당의 위기로까지 내몰릴 수 있다. 특히 총선 이후 결과에 따라서는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명문전쟁 시즌2가 이어질 수 있다.

명문정당강조한 평산마을 ·회동에도 공천파열음

여야를 막론하고 총선시즌에는 공천잡음이 일상다반사다. 다만 민주당은 국민의힘보다 상대적으로 상황이 좋았다. 이른바 ()윤석열기조 아래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당위론 때문이었다. 이때문에 친명 vs 친문의 공천갈등은 태풍이 아닌 미풍에 그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게다가 친명계와 친문계의 수장인 이재명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의 굳건한 합의도 플러스 요인이었다. 두 사람은 지난달 초 문 전 대통령의 사저인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서 회동하면서 당의 단합과 총선 승리를 강조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이 대표와 문 전 대통령의 이름을 조합한 명문(明文)정당이 또다시 화제에 올랐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당의 단합을 이끌어내고 이를 총선 승리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지였다. 취재진에게도 두 사람이 악수와 포옹을 나누는 모습이 공개될 정도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문 전 대통령은 우리가 다 같이 하나 된 힘으로 왔는데 총선에 즈음해서 친문과 친명으로 나누는 프레임이 있는 것 같은데 안타깝다선거는 절박함과 간절함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 역시 민주당은 용광로처럼 분열과 갈등을 녹여내 단결하고 총선 승리를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는 본격적인 공천국면을 앞두고 친명 vs 친문대결 프레임이 들면서 이를 사전에 진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만 휴전합의는 오래가지 못했다.

총선 공천이 본격화하면서 곳곳에서 파열음이 터져나왔다. 친명계가 주도한 공천이 밀실 사천 논란을 빚으면서다. 가장 대표적인 게 임종석 전 비서실장을 둘러싼 공천 갈등이었다. 특히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이 윤석열정부 탄생 책임론을 제기한 이후 컷오프를 시사한 이후 갈등은 증폭됐다. 친명계는 공천을 줄 수 없다고 밀어붙었고, 친문계는 차기 정적 제거라며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대변인 출신으로 임 전 실장을 손발을 맞췄던 고민정 의원은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이후 지루하고도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임종석 전 실장은 옛 지역구인 서울 중성동갑 지역구 출마를 희망했지만 전략공관위는 컷오프(공천배제) 결정을 내렸다.

임 전 실장은 강력 반발했다. 당 지도부에 재고를 요청하면서도 이 대표와 최고위원회에 묻고 싶다. 정말 이렇게 가면 총선에서 이길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이후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갔다. 임 전 실장의 탈당설마저 흘러나왔다. 다만 임 전 실장은 당의 결정을 수용한다는 짧은 입장문과 더불어 당 잔류를 선택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임 전 실장은 총선 이후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친문계의 구심점으로 당 대표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왔다. 임 전 실장과 함께 컷오프당한 4선 중진인 홍영표 의원은 민주당 공천은 정치적 학살이라면서 이 대표를 향해 자질 없는 저질 리더라고 맹비난했다. 홍 의원은 민주당을 탈당한 뒤 이낙연신당에 합류했다. 민주당 공천과정은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낙인 속에 2016년 새누리당의 진박공천 파동과 다를 바 없다는 냉담한 평가가 쏟아졌다.

이재명, 친노·친문과 불화경기지사 경선·대선 경선·총선공천까지

경기도지사 경선 전해철, 양기대, 이재명 후보. 뉴시스
경기도지사 경선 전해철, 양기대, 이재명 후보. 뉴시스

민주당 총선 공천에서 명문(明文)전쟁은 사실 예고된 것이었다. 이 대표의 정치인생을 되돌아보면 친노·친문진영과 적잖은 불화를 겪어왔다. 성남시장 시절이던 2017년 대선 출마를 시작으로 2018년 경기지사 경선, 2021년 민주당 대선경선, 2022년 민주당 전당대회 출마 등 정치적 변곡점마다 친문계와 대립해왔다.

국정농단 및 탄핵사태 이후 치러진 2017년 대선 경선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사실상 민주당 대선후보로 문 전 대통령의 선출이 유력한 가운데 당시 성남시장으로 대선경선에 나섰던 이 대표 측이 지나치게 문 전 대통령을 비방 저격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이 대표는 대선 경선 과정에서 지나친 네거티브 공세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이후 대표적인 비문이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정치적 고초를 겪었다. 친명계는 민주당 비주류와 동의어였다. 이 대표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친문계를 의식하며 극도의 로우키 행보를 이어갔다.

친명 vs 친문의 극단적인 대립은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경기지사 경선이었다.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이었다. ‘친문 전해철 vs 친명 이재명의 싸움은 피비린내 가득한 혈투였다. 친명계 일각에서는 당시 친문계가 차기 대선 라이벌이었던 이 대표를 제거하기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는 의혹을 쏟아냈다. 이른바 혜경궁 김씨논란은 친명과 친문의 뿌리깊은 갈등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전해철 의원이 고발한 이 사건은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방한 트위터 혜경궁 김씨의 계정 주인이 이 대표의 부인인 김혜경 여사라는 의혹이었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으로 김 여사는 혐의를 벗었지만 이후 양측진영의 감정적 앙금은 여전한 상황이다.

이후로도 친명·친문과의 불협화음은 반복되면서 확대돼갔다. 이낙연 전 대표와 맞붙은 2021년 대선 경선은 친문 일색이던 민주당이 친문과 친명으로 분화한 결정적 계기였다. 이 대표는 대선경선 승리로 이끌어내면서 신()주류로 올라섰지만 친문계와의 화학적 결합에는 실패였다. 대선 패배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되는 대장동 네거티브공세를 비명 친문계가 주도한 것은 물론 대선 본선에서도 경선불복의 행태를 보였다고 꼬집었기 때문이다. 마치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 주도의 친이계와 박근혜 전 대통령 주도의 친박계가 이후 정치적 대립과 갈등을 이어간 것과 유사한 흐름이다.

박빙의 대선 패배 이후에는 친명·친문의 갈등이 더욱 노골화됐다. 특히 이 대표의 대선 이후 행보는 친문진영의 반발을 샀다.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는 물론 20228월 전당대회 출마까지 양측은 매번 정면충돌했다. 전당대회 국면에서 친문계는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우려해서 불출마를 종용했다. 이 대표를 굴하지 않고 출마한 뒤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22대 총선 공천 국면에서는 누적된 갈등이 폭발했다. 지난 연말만 하더라도 비명계를 중심으로 총선승리를 위한 이 대표의 2선후퇴라는 솔선수범을 요구했다. 친문계 역시 심정적으로 동조했다. 반면 친명계는 이를 모두 거절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 압승 이후 야권 우위의 총선지형을 믿었기 때문이다.

당의 주도권을 장악한 이 대표는 22대 총선 공천 국면에서 사실상 친문을 포함한 비명계 공천학살로 이를 마무리했다. 친문계는 문 전 대통령의 부재와 침묵 속에서 사실상 무장해제를 당한 셈이다. 최근에는 문재인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조국혁신당으로 몰려들면서 친문진영의 또다른 정치적 구심점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갈등 봉합일시적 총선후 명문(明文)전쟁시즌2 확정

이재명 대표가 공천관련 입장발표중인 임종석 전 실장을 헬스장 tv로 보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표가 공천관련 입장발표중인 임종석 전 실장을 헬스장 tv로 보고 있다. 뉴시스

거친 갈등 속에서 혼돈의 공천과정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양측이 결정적인 파국을 원치 않으면서 친명과 친문의 전투는 일시적인 휴전 상태다. 문 전 대통령이 분명한 입장 없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총선 이후에는 어떻게든 갈등이 재점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총선 성적표가 어떻게 나오느냐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민주당은 4년 전인 21대 총선에서는 180석 대승을 거뒀다. 특히 총선 최대 승부처로 불리는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서는 그야말로 싹쓸이 승리를 거뒀다. 한때 200석 대망론이 흘러나올 정도였지만 현 상황은 다르다. 과반 승리로 쉽지 않은 가운데 최악의 경우 원내 제1당을 국민의힘에 헌납할 수도 있다.

우선 이 대표가 4년 전의 영광을 재현하면서 과반을 달성하는 경우다. 이 경우에는 완벽하게 당 주도권을 쥐게 된다. 공천과정에서 반발했던 친문계들의 목소리도 잦아들 수밖에 없다. 친문계는 사실상 소멸 수순을 맞게 된다. 이 대표에게 백기투항하면서 친명계가 친문계를 정치적으로 흡수하는 형태다. 이후 민주당은 친명정당으로 뿌리를 내리면서 이 대표를 중심으로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체제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정반대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패배하는 경우다. 이 대표의 대표직 사퇴 이후 민주당은 비대위 체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이후 상황은 매우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이른바 이재명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친명 vs 친문 계파간 대혈투가 또다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만일 21대 총선 당시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 대표가 100석 안팎의 의석을 얻으면서 총선에서 참패할 경우 정치적 입지는 극도로 축소된다. 차기 대선은 고사하고 정계은퇴 압력에까지 내몰릴 수도 있다. 민주당의 쇄신과 부활이라는 명분을 위해 친문계가 전면에 나서서 당의 주도권을 쥐면서 이 대표를 향한 공세와 압박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총선 시즌은 권력의 교체기다. 비주류로 정치를 시작한 이재명 대표 중심의 친명계와 오랜 기간 민주당 대주주로 활동해온 친문계와의 파열음은 필연적인 것이라면서 심리적 분당에 직면한 양측이 물리적 분당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악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총선 이후라고 내다봤다. 특히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운명은 총선 성적표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승리할 경우 친명계의 당 주도권 장악과 더불어 차기 대선주자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다질 것이다. 반면 패배할 경우 친문계의 거센 조직적 반격과 더불어 최악의 경우에는 정계은퇴 수준까지 내몰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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