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작년 12월21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 된지 3개월이 지난다. 그는 비대위장으로 취임하고는 “이 나라의 미래를 대비하고 싶었다”고 토로했으며 “국민의힘을 이기는 정당으로 이끌어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종섭 호주대사의 즉각 “귀국 요구”와 3월20일 사퇴하기 전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거취(사퇴) 결정” 요구로  그가 “이 나라의 미래를 대비”하고 있는지 되짚어 보게 했다.

이 호주대사는 국방장관 시절 수해 피해 구조에 투입됐던 해병대 상병이 불어난 물결에 익사한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으로 조사대상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대사를 직권남용 혐의로 작년 9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그렇지만 그 후 공수처는 이 대사를 고소하지도 않았고 소환조치도 안 했다. 다만 공수처는 그를 작년 12월 출국 금지시킨 후 한 달씩  두 차례 출금을 연장했다. 이 대사는 호주로 출국하기 직전인 3월7일 출금 사실을 알게 돼 자진 출석, 처음 조사를 받았다. 호주 대사로 출국하면서도 공수처가 요구하면 즉시 귀국해 조사를 받겠다고도 했다.

그런데도 민주당 측은 “범죄 피의자가 해외로 도피했다’고 했다. 거기에 맞장구를 치듯 한 비대위장은 3월17일 공수처가 이 대사를 “즉각 소환통보해야 하고 이종섭 호주대사는 즉각 귀국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실은 다음 날 “공수처가 소환도 안 한 상태에서 국내에 들어와 마냥 대기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반박했다.

그밖에도 한 비대위장은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이 3월20일 사퇴하기 전 그의 “거취 결정”을 압박했다. 황 수석이 3월14일 너댓명의 가자들과 식사 자리에서 “MBC는 잘 들어” “1988년 경제신문 기자가...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다”고 언급한 대목  때문이었다. 그는 기자가 칼 맞게 된 건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의 글을 쓰려고 했던 것이 문제였다”고 했다. 그는 이어 “농담이지, 조사 보고 하지 마라”고 당부했다. 언론매체들과 민주당은 회칼 테러 언급에 대해 저열한 언론관이라며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비판적인 논조”MBC에 대한 황 수석의 언급은 묵살했다. 그런데도 한 비대위장은 황 수석의 MBC 비판논조 지적에 대해선 의견을 제시하지 않은 채 민주당과 언론의 요구대로 거취를 결정하라고만 다그쳤다. 민주당 비대위장이 아닌가 헷갈리게 했다. 결국 황 수석은 사퇴했다.

이•황에 대한 한 비대위장의 대응은 그가 검사시절과는 달라진 게 아닌가 걱정케 했다. 그는 검사 시절 “권력이 물라는 것만 물어다 주는 사냥개”가 되기를 거부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정치판으로 들어가더니 포퓰리즘 (공익이 아니라 대중 인기와 욕망에 영합하는 정치)이 “물라는 것만 물어다 주는 사냥개”로 가는 게 아닌가 우려케 했다. 당장 4월10일 총선 득표만을 의식했을 뿐 법치에 기반한 “나라의 미래”는 뒤로 했다는 데서 그렇다. 그는 이 대사가 마치 도망친 피의자같이 즉각 “소환통보“ 운운했는가 하면, 황 수석의 기울어진 MBC 비판 논조에 대해선 해명해 주지 않았다.
     
훌륭한 지도자는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고 바른 미래를 위해 꿋꿋이 밀고 간다. ‘플루타크 영웅전’에는 이런 대목이 실려 있다. “국민의 뜻을 거스르면 국민에 의해 망하고 국민만 쳐다보면 국민과 같이 망한다” 한 비대위장은 국민만 쳐다보다 “나라의 미래”는 놓친 게 아닌가 싶다. 정치인으로서 묵직하지 못했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은 수세기 동안 식민지 소유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애착을 포기토록 설득했음을 덧붙여 둔다. 한 비대위장은 검사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 “나라의 미래를 대비”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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