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한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나온 MZ 세대의 정의다. 그 뒤엔 다음과 같은 설명도 있다. “최신 트렌드와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인다,” 사정이 이렇다면, MZ세대를 다루는 방식도 이전과 달라야 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 점을 고려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하면서, 정부가 예상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았으리라. 1) 전 의사가 환자를 버려두고 거리로 나온다. 2) 의사를 욕하는 여론이 비등해진다. 3) 여론에 힘입어 정부가 면허취소. 구속 등의 강경조치를 발표한다. 4) 이에 굴복해 의사들은 다시 진료실로 돌아간다. 5) 윤 정부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총선도 이긴다.

하지만 정부의 시나리오는 첫 스텝부터 꼬였다.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일제히 사직해버렸으니까 말이다. 전공의가 나선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의대증원의 효과가 나타나는 시기는 앞으로 10년 후, 지금 의료활동을 하는 기성세대에겐 별 타격이 없지만, 장래의 수입을 머리에 그리며 주 80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해온 전공의들에겐 지금의 증원이 청천벽력이다. 문재인 정권 때인 2020년 공공의대 설립은 전문의를 포기할 이유가 되지 못했지만, 7년 후부터 1년에 5천명씩 의사가 쏟아져나오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아씨, 나 전문의 안할래. 그냥 일반의로 살거야.’ MZ세대인 그들은 거리로 나오는 대신, 사직서를 던졌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전공의는 대학병원에서 각종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존재, 서울아산병원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대학병원이 전공의의 값싼 노동력에 의존해 왔는데, 이들이 없어진 건 환자 진료에 큰 타격이다. 지금은 의대교수들이 그 일을 대신하고 있지만, 중년의 그들에겐 과중한 노동이 힘에 부친다. 정부가 이런 사태를 예측했다면 준비한 인력을 즉각 투입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겠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다음밖에 없었다. ‘사직 못 하게 막아!’ 그 뒤 정부는 면허정지한다’ ‘면허취소할 수도 있다’ ‘법정최고형에 처한다같은 협박을 해댔지만, 이런 구닥다리식 협박이 MZ 세대에게 먹힐 리는 없다. ‘2천명 증원이 철회된다 해도 일부 인기과를 제외한 분야의 전공의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MZ세대가 기성세대와 달리 교수전문의라는, 보이는 타이틀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첫 스텝이 꼬이고 난 뒤 나온 정부의 대책은 더 한심했다. 1) 지방 진료를 책임질 공중보건의와 군인들의 건강을 돌봐야 할 군의관을 대학병원에 투입한다고 하고, 간호사들에게 전공의가 하던 일을 시키겠다는 거다. 이럴 거면 간호법은 왜 반대한 걸까? 2) 당장이라도 면허정지를 시키겠다고 하더니, ‘이제 곧 정지시킨다만 한달 넘게 외치는 중이다. 3) 압권은 대학별 증원 발표, 정부가 늘어난 의대 정원을 어떻게 배치할지 결정했는데, 그 절대다수를 지방에 배정했다. 정원 50명에 불과했던 충북대는 이제 200명의 정원을 거느린 슈퍼의대가 됐고, 내가 몸담은 단국대도 40명에서 120명으로 정원이 늘었다. 지방의대의 교수 숫자와 시설이 수도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단 점에서, 이들을 어떻게 교육시킬지 걱정이 앞선다. 부산대도 못믿겠다고 서울로 올라가는 게 작금의 현실인데, 앞으로는 그런 현상이 더 심해지지 않을까? 윤정부는 이제 인정해야 한다. 의대 증원은 이렇게 마구잡이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었다는 걸. 증원발표 초기에 오르던 지지율이 떨어지는 건 이 정책이 준비없이 시작된 것임을 국민이 알게 됐다는 징표다. 안다. 여기서 물러나자니 당최 면이 서지 않을 것이다. 의사에게 굴복하는 순간 지지율은 급락하고, 총선도 폭망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들 것이다. 그렇다고 의료계에 대화를 요청하면서 의대증원 1년 연기나 규모 축소는 건드리지 말고, 조건없는 대화를 하자는 식의 궤변만 늘어놓아선 사태해결이 안 된다. 그래서 한동훈 위원장의 등판이 필요하다. 한 위원장에게 증원 규모를 포함해 전권을 준 뒤 의료계와 협상하게 하자. 그가 이번 사태를 잘 해결하면 국민의 근심도 덜 수 있고, 대통령의 체면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대통령의 통큰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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