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 등 의료관련 인사권, 관련 입법과 형사 처분까지 의사가 결정
- 유교경전 내세워 양반, 백성 고혈 빨아...황당.오만한 자 '의새스럽다' 신조어 등재될 듯

조선의 정치체제는 왕권(王權)이었을까 신권(臣權)이었을까. 지금도 논란이 계속되는 쟁점이지만 이는 태조 이성계가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건국할 때부터 논란거리였다. 창업공신 삼봉 정도전은 신권을 강조했고, 역성혁명의 주자 이방원은 왕권을 주장하며 2차례 왕자의 난으로 왕위에 올랐다.

조선 정치의 대표적 키워드가 '사색당파' '붕당정치' '탕평책'이고 노선과 이해에 따라 서인·동인·남인·북인·노론·소론 등으로 나뉘어 국정과 정치가 진행된 것을 보면 왕권보다는 신권 성격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인사를 계파별로 잘 배분해 경쟁을 유도한 왕은 왕권이 강했지만 그렇지 못한 왕은 반정(쿠데타)으로 쫓겨나거나 의문사하기도 했다.

역사드라마에서 흔히 듣는 대사가 '전하! 아니 돼 옵니다'이다. 폭정과 실정을 반복하는 왕에게 목숨 걸고 충언하는 충신의 용기와 결기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실상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조정 대신과 양반 등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위해 '신권' 실력행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양반 사대부가 아니라 백성과 국가를 위한 정책이 조정대신, 양반 등 사대부 기득권세력에 좌절되거나 지연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성군 중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은 지금의 토지세법이라 할 수 있는 공법을 제정했다. 공법은 토지를 6등급으로 나누고 매년 소출에 따라 9등급으로 세율을 차등 적용 하는 것으로 공평 과세와 양반과 관료들의 농간과 수탈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세종이 공법 제정에 대한 여론조사를 지시한 것이 세종 12(1430)인데 최종 마무리가 세종 26년이었으니 무려 14년이 걸린 것이다. 당시 기득권세력의 저항이 어느 정도였는지 예상 할 수 있다. 이 마저도 세종 이후 점차 양반 대지주들에 의해 무력화되고 말았다.

대동법은 그 흑역사가 너무나 길다. 짧게 잡아 100, 실제는 훨씬 더 길다. 대동법은 지방에 특산물을 부담시키고 없으면 관리들이 물품을 대신해 지불하는 공납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미곡()이나 삼베, 무명 등의 직물, 혹은 돈으로 대신 내는 것이다. 공납을 대신하는 관리들과 공납 물품을 조달하는 방납업자들의 농간으로 백성은 죽어나가고 국고는 텅 비었다.

공납은 조선 초부터 폐해가 많았지만 양반 등 기득권세력들의 반발로 손도 못 대다가 광해군 즉위 첫해(1608)에 영의정 이원익의 건의를 받아 대동법을 시행한 이후 전국으로 확산된 것이 숙종 36(1708), 무려 100년이 걸렸다.

끝내 이루지 못한 것도 있다. 조선 500여 년 동안 몇몇 왕과 대신들이 추진했으나 양반 병역 의무 이행은 실패했다. 조선의 병역제도는 양인(良人) 개병제로 16~59세 사이의 양인(양반·상인·농민) 남성은 누구나 병역의 의무를 져야 했다. 그러나 조선 중기에 들어가 양반들은 갖가지 명목으로 병역을 지지 않았다. 병자호란 후 최명길과 윤휴와 같은 일부 대신들이 양반 병역부과를 주장했으나 안 되자 베 한 필씩이라도 받아 국방비에 충당하자고 건의했으나 이 마저도 양반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왜군이 20여일 만에 한성을 함락시킨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북벌을 추진하던 효종(10)이 다시 추진하자 영의정 심지원은 말한다. "우리나라가 유지되는 것은 바로 사대부의 힘입니다. 그런데 지금 하루아침에 갑자기 일찍이 없었던 일을 만들어 서민들과 똑같이 군포를 징수한다면 그 원망 소리 또한 크지 않겠습니까”. 그 사대부 양반들이 부담하지 않는 노무와 병역 부담은 오로지 백성들의 몫이었다.

조선시대 왕은 신하와 관리, 양반 사대부, 기득권세력을 꺾지 못하면 허수아비, 조선주식회사 바지사장에 불과했다. 10% 정도에 불과한 양반 사대부들이 왕을 누르고 백성 90%를 노예로 삼아 고혈을 빨아 배 채우고 대대손손 권력 틀어쥐고 지배한 것이다. 실로 양반 천하지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사대부에서 권문세족 외척의 세도정치로 넘어가 결국 조선은 망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신임 회장 당선자는 28의협이 국회 2030석 당락을 좌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여야가 비례대표 후보인 안상훈 전 사회수석, 김윤 서울대 교수의 공천을 취소하지 않으면 의사들은 조직적으로 개혁신당을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전날 임 당선자는 윤석열 대통령 사과,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박민수 2차관 파면, 의대 정원 500~1000명 감축, 필수 의료 (지원) 패키지 전면 백지화를 요구했다.

의협 회장 경선에서는 장.차관, 대통령실 보건복지비서관 파면, 정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백지화, 보건복지부 장.차관 의협 추천 인사 등용, 의료법 개정, CCTV설치 금지, 한약 및 한방행위 불법화 등이 나왔다.

황당하고 기가 막힌다. 이 정도면 의료관련 정책을 결정하는 모든 위원회와 기관의 인사권과 관련 입법권, 형사 처분권까지 갖겠다는 심보다. 백과사전에 황당하고 오만한 자를 일컬어 '의새스럽다'는 신조어가 등재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이제 의사가 아닌 일반 국민들은 0.02%에 불과한 의사들의 노예 신세가 되는 '의사천하 노예국민'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각오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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