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가는 이발소가 있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 나오는 이발소보다는 좀 대형화되고 근대화되었는데 퇴폐적이지 않고 편안해서 머리를 내맡기고 가끔 잠이 들곤 한다. 칸막이가 없어서 더 수수해 보인다. 얼마 전에도 보통 때와 같이 편안한 마음으로 머리를 다듬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피곤하기도 하여 핑계 김에 자고 싶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 양반이 큰 소리로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는 소리에 그만 잠이 깨어버렸다. 곧 끝나겠지 했는데 그 양반은 흥분을 하면서 목소리를 점점 높여 상대와 싸우듯이 통화를 계속했다. 나 말고도 몇 분이 평상심을 잃었는지 헛기침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 통화는 그 상태로 계속됐다. 급기야 면도하는 아주머니께서 나서서 귓속말로 조용히 통화하라고 했다. 잠시 후 목소리는 더 커졌다. 그리고 그 양반은 황급히 어디론가 나가버렸다. ‘중앙당’이니 ‘시도당’이니 하는 통화내용을 봐서는 정치를 하는 인사인 듯했다. 정치를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잠재우고 다시 평안을 찾으려 해도 한 번 상한 마음이 영 편안해지지 않았다. 그 양반이 나간 뒤 면도하는 아주머니가 포문을 열었다. “지가 이 지역 국회의원이면 다지 여기까지 와서 행패람”. “지난번에 와서는 어떤 분이 잠깐 잠들었을 때 코를 좀 크게 골았다고 마구 화를 내더니… 참”. “저런 사람은 아마 다음에 안 될 거야”. 짧은 시간이었는데 이발료를 생각하면 매우 값진 성찰의 시간이 되었다.17대의원들이 평균연령도 매우 젊어지고 경력들이 탈 권위적 영역에 있었던 사람들이 많아 개원초기에 국민들의 기대가 높았다. 승합차로 출퇴근하는 의원도 많아 국회의원회관 주변의 풍속도도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어떤 의원은 권위의 상징이라 하여 의원 배지도 달지 않고 다녔다. 이러한 경향성이 집단적인 양태로 나타난 것은 의원회관에 있는 의원전용엘리베이터를 없앤 것이다. 입구에 붉은 카펫이 깔려있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로비를 걸어가다가 밟을 때도 느낌이 이상했었는데 그것을 철거하는 것을 보고 국민들은 이제 세상이 변하고 있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 때는 그러한 움직임이 단순한 ‘이미지변화(image change)’가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알아차린 의원들의 ‘자세변화(attitude change)’라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있었다. 대통령까지 나서 평검사들과 갑론을박하면서 이를 생중계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면서 리더십의 새로운 패러다임론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공식적인 권력의 계선조직을 감안하면 대통령이 꼭 평검사들과 그런 형태로 대화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상황에서도 대세는 탈 권위라는 화두에 휩쓸려 나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얼마 안돼 여의도 선량들은 그 전의 모습들을 도처에서 보여주고 있다. 골프가 끝나고 술 한잔하는 자리에서, 축사를 제의받지 못한 행사장에서, 그리고 이발소에서도. 이제 곧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예산도 살펴보고 산적해있는 민생에 대한 긴급한 대책도 내놓아야 할 형편이다. 또 청와대와 여당이 내놓고 해결하지 못한 연정을 포함한 양원제 등 굵직한 정치적 현안들도 다루게 될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정치권의 움직임을 17대국회 초기에 보내주던 신뢰공간 안에서 해석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정치권이 또다시 여의도라는 ‘나와는 다른 섬나라’로 여겨지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동영상에 대하여 무감각해질 것이다. 이미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설득력을 인정받을 가능성은 약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인 불신이 전 국민의 무의미감으로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17대 개원초기의 부드러운 무드가 선거직후에 남은 ‘공약의 잔상’임을 만천하에 외치는 행위들을 자제하고 이제는 지난 총선 시에 국민들에게 무엇을 약속했는지 다시 한번 반추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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