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反) 자본주의 시위는 세계적 금융 중심지인 뉴욕 월 스트리트(Wall Street:월가(街))에서 지난달 17일 점화됐다.

30여 명의 20~30대 청년들은 월가 앞 주코티 공원에 텐트를 치고 상주하면서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 시위는 미국 주요 도시들로 확산돼 가며 여러 노동조합들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시위 구호는 “월가를 점령하라”, “1 대 99의 사회를 더 방관할 수는 없다”, “전쟁에 쓰는 돈을 청년실업에 투입하라”, “매일 아침 일어나서 방값 걱정, 끼니 걱정을 하지 않게 해 달라”, “부의 불평등을 종식하라” 등을 담았다.

반자본주의 시위는 청년 실업 증대와 그들의 상대적 박탈감, 최고경영자(CEO)의 과도한 보수체계, 정치권에 대한 불신 등에 대한 불만으로 터져 나왔다.

미국의 실업률은 9.1%이지만 24세 이하 대졸자 실업률은 12%에 달한다. 대부분 대졸 실직자들은 학자금 빚 때문에 채무자로 전락돼 일반 실업자들 보다 좌절과 분노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시위대의 구호들 중 “전쟁에 쓰는 돈을 청년실업에 투입하라”는 대목이 그들의 절박함을 반영한다.

특히 실업자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어려운 경제난 속에서도 연봉 수천만 달러씩 챙겨가는 CEO들을 미워할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는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 후 금융회사들을 살리기 위해 무려 7000억 달러를 퍼부었다. 국민 세금으로 살아남은 금융회사들은 CEO와 임직원들에게 한 해 200억 달러를 보너스로 퍼주었다. 여기에 시위대들은 “1 대 99의 사회를 더 방관할 수 없다”며 소수 독점 보수체계에 불만을 터트렸다.

날로 격차가 심해지는 미국의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현상에 대한 한숨도 크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빵값 걱정, 끼니 걱정을 하지 않게 해 달라”는 구호가 심각한 빈부격차에 대한 분노를 반영한다.

지난 해 미국의 빈곤층은 6명 중 1명 꼴인 4620만 명인 것으로 집계됐고 전년도 보다 260만 명이 늘어났다. 통계작성을 시작한 1959년 이후 최대치다. 그에 반해 최상위 1%의 소득은 늘어났다고 한다.

미국인들의 수입격차가 날로 심해지다 보니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미국인들의 수도 크게 줄어들었다. 2009년 74%에서 2010년엔 59%로 대폭 축소됐다.

도리어 중국에서는 자본주의 지지가 67%로 나타났다. 시위대의 피켓에는 남미 공산혁명을 주도한 체 게바라의 사진도 등장했다.

그러나 미국 반자본주의 시위가 올 봄 아랍의 제스민 혁명이나 금세기 초 러시아의 공산 혁명으로 치달을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유는 자명하다. 미국인들에게는 자유경쟁체제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고 불법 폭력시위에 대한 거부감이 강렬하다.

뿐만 아니라 계층간의 상하 이동과 소통이 원활해 극단적인 대결과 갈등을 녹여버리는 도가니(Melting Pot)가 내재돼있다. 그밖에도 미국은 유럽과는 달리 사회갈등에 직면할 때 급진적인 폭력혁명 보다는 법적 제도적 방식의 해법을 모색하는 정치문화가 정착돼있다.

“우리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는 구호도 자유체제에 대한 확신과 체게바라 식 폭력혁명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미국 전역으로 시끄럽게 확산돼가는 월가의 시위는 21세기 자본주의 경영체제 모순에 대한 반항이라는데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적자생존 논리, CEO의 과대한 보수체계, 승자독식, 부익부 빈익빈, 등의 부작용을 그대로 방치만 할 수 없다는 경고이다.

한국도 월가 시위를 값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CEO 급여체계, 부익부 빈익빈, 비정규직의 낮은 임금, 청년실업 등에 대한 대응책이 시급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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