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천황성 황금백합작전 보물지도는 실제 존재한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이 우리나라와 필리핀 등 해외 곳곳에 묻어 둔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야마시타 골드’에 대해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굴착전문가인 윤모씨는 야마시타 골드는 한반도에도 상당량 숨겨져 있으며, 보물 탐사꾼들에 의해 금괴 일부가 발굴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반도에 매장된 야마시타 골드는 아무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는 필리핀 등지에서 수많은 보물 탐사작업에 참여했으며 자신이 직접 설계한 굴착기계로 일본군이 숨겨둔 금괴를 정확히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그는 수년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산 문현동과 진도 일본군 보물에 대해 확고하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지금부터 윤씨가 전하는 보물이야기를 들어보자.

강원도에 거주하고 있는 윤씨는 20여년간 보물탐사작업에만 매달렸다. 수많은 실패를 맛봤지만 그 실패를 통해 보물탐사에 관한한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았다. 그는 해외 보물탐사작업에 참여하면서 막대한 금을 눈앞에서 놓친 적도 있다고 한다. 윤씨는 현재 해외 보물탐사작업을 다시 계획 중이다. 현지에서 준비가 끝나는 대로 짐을 챙겨 다시 보물탐사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윤씨는 “[일요서울]이 지난호(제 752호)를 통해 보도한 <일본인 보물사냥꾼 고바야시>제하의 기사를 본 적 있다”고 말했다. 또 “최근 부산 문현동 보물탐사작업의 주역인 정충제씨가 책을 펴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지난 18일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고바야시라는 사람이 한 말이 전부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부분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고바야시는 보물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는 인물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보물 찾을 수 없는 이유

윤씨는 야마시타 골드에 대해 매우 소상히 알고 있었다. 일본군이 숨겨둔 야마시타 골드는 ‘야마시타 골드’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책에는 야마시타 골드에 대한 모든 비밀이 녹아 있다. 이 책의 내용에 따르면 일본군이 숨겨뒀다는 엄청난 양의 황금은 실제로 존재한다. 다만 그 보물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전설처럼 사람들의 입으로만 그 존재가 전해지고 있다.

윤씨는 “나는 ‘야마시타 골드’라는 책을 보지 않아 그 책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야마시타 골드에 대해 국내에서 나만큼 소상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나는 필리핀에서 야마시타 골드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고 발굴 현장에도 있었다”고 말했다.

윤씨에 따르면 야마시타 골드는 철저한 보안 속에 매장작업이 이뤄졌다. 뿐만 아니라 보물이 도굴되지 않도록 수많은 안전장치가 돼 있기 때문에 설령 보물을 묻은 보물의 주인이라도 각각의 안전장치를 풀 열쇠가 없으면 보물을 꺼낼 수 없다는 게 윤씨의 설명이다.

윤씨는 “일본군은 매우 치밀한 방법으로 보물을 은닉했다. 그래서 보물을 찾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며 “보물을 찾았다 해도 섣불리 꺼내려하면 오히려 보물은 사라지고 만다”고 말했다.

필리핀에서는 보물을 찾았다가 안전장치를 잘못 건드려 보물과 함께 그대로 매장된 탐사꾼도 있다고 윤씨는 전했다.

윤씨는 “일본군이 매장한 금괴는 가로 3자, 세로 6자 크기의 상자에 절반 정도 채워진 상태로 매장돼 있다”며 “이 상자들은 평지에도 묻혀있고 산 기슭에도 묻혀 있는데 평지에 묻혀있는 것이 가장 꺼내기 힘들다. 굴착기로 잘못 팠다간 영원히 금을 꺼낼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고 말했다.


금괴 발견한 사람 많다

윤씨의 주장 가운데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국내에 묻힌 야마시타 골드를 찾아낸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금을 발견한 이들은 절대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고 조용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윤씨는 “내 주변에 금을 찾아낸 이들이 있다. 그들을 보고 싶다면 보여줄 수도 있다”며 “하지만 매장물법에 금괴를 찾아내면 절반정도를 세금을 내야하고 나머지도 여러 이권관계에 놓인 이들끼리 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제대로 건지기 힘들다. 그래서 보물탐사가 어렵다”고 말했다.

또 윤씨는 “보물탐사하다보면 가장 조심해야 할 것도 사람이고 가장 장애가 되는 것도 사람이다. 처음에는 의기투합했다가도 보물이 점점 가까이 잡힐 것 같으면 서로 많이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며 “대부분의 보물탐사가 인간의 탐욕에 의해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를 수없이 봐 왔다. 나 역시 그렇게 지금까지 허송세월을 보낸 면도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10년전 경주정씨 양경공파 종약원 소유 야산에 보물이 묻혀있다는 소문이 돌아 한바탕 소란이 일었던 적도 있다.

2000년 5월 말경 서울 양천구 신정동 산 150의1 야산에서 일제가 매장했다고 추정되는 금괴 등 보물을 찾는 소동이 벌어졌다.

김성득(66·인천시 부평구 산곡동)씨는 광복군의 통감부 담당 정보책임자였던 박모(1990년대 사망)씨로부터 경주 정씨 양경공파 종약원(宗約院.종친회)이 소유하고 있는 이 야산에 보물이 묻혀있다는 증언을 듣고 발굴을 시작했다. 이때가 1982년의 일이다.

박씨는 “일본 관동군 장교 출신 이봉춘(63년 사망)씨가 53년 ‘종전 직전 일본군 남방사령관 야마시타 도모유키 육군대장이 중국에서 약탈한 금궤 1천여상자를 일본으로 운반하다 한국에 매장했다’고 말하며 보여준 지적도가 광복군 정보처에서 수집한 정보와 일치해 추적하다 이씨의 사망으로 중단했다”고 김씨에게 전했다고 한다.

관동군은 전쟁 말기에 인공동굴을 만들어 중국에서 실어온 금괴 500t과 은 6000t(시가 5조~6조원)을 매장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또 신정동 야산 인근 일본인 제련소에서 노무담당으로 일했던 박모(86)씨로부터 “삼엄한 경비하에 일본군과 비밀작업을 했었고 43년부터 1년6개월 동안 밤마다 포장을 씌운 군용마차로 짐을 옮겼다”는 목격담도 들었다. 하지만 이 발굴 작업은 자금문제와 지분문제로 잠정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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