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어 장성호 잔류이후 찬바람

FA를 신청한 14명의 선수 중 현재까지 계약을 한 선수는 올해 최대어로 꼽혔던 기아의 장성호를 비롯해 이종범(기아), 양준혁·김대익(삼성), 송진우·김민재 (한화), 정경배(SK)다. 기아와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이종범과 양준혁은 일치감치 소속구단과 합의를 끝냈고 삼성, 롯데, LG 등 많은 구단이 영입경쟁을 펼쳤던 장성호는 소속팀인 기아에 잔류했다. 나머지 선수들도 소속 구단에 잔류했고 SK에서 한화로 옮긴 김민재가 유일하게 다른 구단으로 이적한 선수다. 그러나 나머지 7명은 여전히 계약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박재홍·위재영(전 SK), 송지만·전준호(전 현대), 전상열·홍원기·김창희(전 두산) 등 7명이나 무적상태에 놓인 것. 특히 장성호와 함께 빅3로 평가받던 송지만, 박재홍마저도 각 구단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상태다.

최근 기아가 거포 송지만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면서 시장이 풀릴 기미가 보이고 있지만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200-200 클럽’에 가입한 박재홍은 시장의 찬 바람에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이 때문에 야구계 일각에선 FA 피해자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시장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채 FA를 선언했다가 상처만 받은 선수들이 과거 심심찮게 있었기 때문.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 2000년 송유석과 김정수다. 99년 중간과 마무리를 겸하며 5승3패 5세이브를 거둔 송유석은 시즌 종료후 문을 박차고 나갔다가 낭패를 봤다.

어느 구단도 입질을 않자 해를 넘겨 전소속팀 LG와 동결된 연봉 7500만원에 계약한 뒤 곧바로 신국환과 묶여 한화 최익성과 2대1로 트레이드됐다. ‘까치’ 김정수도 4승1패 1세이브의 성적으로 그해 FA를 선언했다가 역시 오갈데 없는 신세가 돼 연봉이 7,5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깎인 뒤 SK로 팀을 이적하고 말았다. 2001년에는 두산 조계현이 역시 FA를 선언했다가 똑같은 경우를 당했고 롯데 박정태도 2003년 구단에 역대 FA 최고액을 호기롭게 불렀지만 참담한 결과는 맛보아야 했다.

FA 한명 얻는 데 잃는 손실 너무 커

FA 시장이 이처럼 위기감이 나돌게 된 원인 중 하나는 현행 FA 제도의 문제점으로 꼽히는 보상선수제도다. 현행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약에 의하면 FA 자격을 얻은 선수를 데려가려는 구단은 ‘너무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영입 FA 선수가 받았던 연봉에서 50% 인상한 금액의 두 배를 전 소속 구단에 줘야 한다. 게다가 팀이 보유 선수 중 18명의 보호선수를 제외한 1명을 내줘야 한다. 막대한 보상금은 물론 유망주 1명까지도 내줘야 하기에 FA 한 명 영입하는 데 드는 비용은 수십억원에 이르러 구단으로서는 출혈이 너무 큰 셈.

이 때문에 영입해서 확실하게 한 몫 해줄 선수가 아니라면 각 구단이 쉽게 돈 보따리를 풀기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매년 FA시장이 열려도 구단들이 몇몇 대형선수들의 영입 외에는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는 까닭과 FA 권리 자체를 포기하는 선수가 매년 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 1999년 FA 제도가 도입된 배경은 일정 기간 공헌한 선수에게 이적을 통해 목돈을 벌게 해주자는 것과 각 구단이 좋은 선수를 데려다 팀 전력을 강화시킬 수 있게 하자는 데 있지만 그 취지와는 다르게 이용될 가능성도 있는 것.

FA 큰손 삼성, 롯데의 투자 주춤

게다가 올해 FA 시장에서는 큰손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다. 가장 큰손인 삼성이 대표적이다. 삼성은 FA제도가 도입된 1999년 이후 몇 해를 제외하고는 매년 다른 팀에서 FA 선수를 영입해 왔다. 지난 시즌이 끝난 후에도 현대의 심정수를 4년간 60억원에, 박진만을 4년간 39억원에 데려오며 선수들의 몸값을 올리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공식철수를 선언한 상황이다. 기아의 장성호가 FA 시장에 나올 경우 배팅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됐으나 장성호가 잔류를 선언하자 다른 선수들에게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선동렬 감독도 “추가로 FA 선수를 영입할 계획이 없다”며 “구단과도 이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끝난 상태”라고 말해 사실상 FA 시장 철수를 공식화했다.

2003시즌 종료 후 마해영을 영입하는 등 FA 선수 영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기아도 해태시절부터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는 장성호와 간판 스타 이종범을 잡기 위해 총 60억원을 썼을 뿐 다른 선수들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최근 송지만에게 배팅을 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2003년 시즌 후 정수근, 이상목 등을 영입하고 탈 꼴찌를 선언하며 FA 시장에 큰손 역할을 톡톡히 했던 롯데는 장성호에게 공개적인 러브콜을 보내며 영입경쟁에 뛰어들었을 뿐 다른 선수들에겐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LG는 트레이드로 마해영을 영입한 관계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SK와 현대는 원래 자신의 소속이던 선수를 잡기도 바쁜 실정이다.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는 두산 역시 방관자로 FA 시장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소속팀에 ‘백기투항’ 다반사

이렇게 구단들이 FA 선수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내년 시즌을 위한 대비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나온다. 올 시즌 장성호, 박재홍, 송지만 이외의 스타급 선수들이 눈에 띄지 않지만 내년 시즌에는 대어급 선수들이 많다. 김동주·박명환(두산), 이병규(LG), 김수경 (현대) 등이 FA로 풀려 올 시즌보다 더욱 내실 있는 대어급 FA들이 많이 나온다. 게다가 진갑용(삼성), 박경완(SK), 조인성(LG) 등 수준급 포수들도 무더기로 FA가 되는 상황이다. 이처럼 팀 성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정도의 스타급 선수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FA 큰손’ 삼성은 물론이고, 다른 구단들도 내년 시즌을 마치고 원래 자신의 소속팀 FA를 잡거나, 다른 팀의 FA 선수를 잡기 위해 ‘실탄’을 아끼고 있는 것이란 설명이다.

이같은 상황에 아직까지 계약을 하지 못하고 있는 올 시즌 FA 선수들의 속은 까맣게 타 들어가고 있다. FA 제도상 올해 12월 31일까지의 원소속팀을 제외한 7개 구단과의 협상기간이 끝나면 내년 1월 1일부터 31일까지는 원 소속팀을 포함한 8개 구단과 협상을 벌일 수 있다. 그러나 내년 1월이 된다고 다른 구단에서 러브콜이 갑자기 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다음해 1월을 넘기면 원 소속팀에 ‘백기투항’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선수시절 동안 몇 차례 오지 않는 기회는 FA. 그러나 썰렁한 시장 분위기 탓에 FA를 선언한 선수들의 겨울은 더욱 춥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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