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천재 박주영 ‘찬가’


‘축구 천재’ 박주영(21·FC 서울)이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지난 2006독일월드컵 이후 극심한 부진에 빠졌던 박주영은 11월 14일 벌어진 일본과의 올림픽축구대표팀 평가전에서 전반 선취골을 뽑아내며 슬럼프 탈출을 알렸다. 박주영의 골은 단순한 한 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박주영 개인적으로 봤을 때 기나긴 부진을 털고 자신을 향했던 비난 여론을 잠재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악몽과도 같았던 성장통에서 벗어나 한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박주영의 부활은 또한 한국 축구계에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02년 황선홍(현 전남 코치) 은퇴 이후 이렇다할 최전방 공격수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축구가 기존의 공격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플레이를 펼치는 박주영에게 거는 기대는 매우 크다. 한국 축구도 세계적인 공격수를 배출할 수 있다는 꿈은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박주영은 지난 2004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렸던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MVP와 득점왕(6골)을 동시에 석권하며 한국의 우승을 이끌어 ‘축구 천재’로 급부상했다. 당시 박주영이 펼쳐보였던 플레이는 축구 관계자들과 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스트라이커의 기본 자질인 골 결정력과 위치 선정 능력이 뛰어났고, 상대 수비수의 예측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한 박자 빠른 슈팅 타이밍으로 수비진을 농락했다. 여기에 수비수 2~3명은 가볍게 제치는 화려한 개인기는 기존의 한국을 대표하는 공격수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박주영만의 특화된 무기였다. 문전에서의 침착한 마무리 능력은 그의 발끝에서 많은 골이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박주영 신드롬 흔들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불이 붙은 박주영 신드롬은 2005년 K리그 무대로 고스란히 이어졌고, 그 폭발력은 한반도를 뒤흔들 만큼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FC 서울에 입단하며 프로에 입문한 박주영은 데뷔 첫해 정규리그 19경기에서 12골(3도움)을 터뜨리며 성인 무대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박주영은 각종 연말 시상식에서 신인왕을 휩쓸며 ‘박주영 천하’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렸다. 박주영은 출중한 실력뿐만 아니라 홍보효과에 있어서도 황금알을 낳는 오리 역할을 했다. FC 서울의 홈구장인 상암월드컵경기장은 물론 원정 경기에서도 박주영을 보기 위해 구름 관중이 몰려들었다. 박주영의 동작 하나하나에 팬들은 열광하며 환호를 아끼지 않았다.
박주영이 성인 무대에서도 실력을 입증하자 성인대표팀 선발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2005년 당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던 조 본프레레 전감독은 박주영이 경험과 체력이 떨어진다며 아직 태극마크를 달기에는 이르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006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본프레레호가 실망스러운 행보를 이어가며 탈락의 위기에 몰리자 ‘박주영을 대표팀에 뽑아야한다’는 여론이 하늘을 찔렀다. 결국 본프레레 전감독은 2005년 5월 박주영을 대표팀에 합류시켰고, 박주영은 그가 왜 한국 축구의 희망이자 ‘축구 천재’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박주영은 2005년 6월 우즈베키스탄 원정 경기에서 0-1로 뒤져 패색이 짙던 후반 종료 직전에 기적같은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한국 축구를 구해냈다. 박주영의 골이 없었다면 한국 축구는 2006독일월드컵에 초청받지 못할 수도 있었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박주영은 이어 벌어진 쿠웨이트 원정경기에서도 결승골을 터뜨리며 한국 축구의 독일행을 진두지휘했다. 영웅은 난세에 탄생한다고 했다. 박주영은 좌초 위기에 놓였던 한국 축구를 구해낸 영웅이었다.
또 이미 유망주를 넘어 한국 축구의 기둥으로 성장했다. 탄탄대로를 걷던 박주영의 행보는 2006년 들어 급제동이 걸렸다. 국내 언론은 물론 외신을 통해서도 2006독일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21세 청년이 제 기량을 발휘하기에 월드컵은 너무 큰 무대였다.
조별예선 3경기 중 스위스전 한 경기에만 나선 박주영은 당시 경기에서도 실망스러운 플레이를 펼치며 후반 교체 아웃됐다. 16강 진출 실패와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여준 자신에 대한 자책 때문인지 박주영은 월드컵 이후 소심한 플레이로 일관했다. K리그 후기리그 12경기에서 2골을 넣는데 그쳤고, 벤치 멤버로 전락했다.
박주영이 그라운드에 서지 못하자 핌 베어벡 신임 대표팀 감독 역시 그에 대해 평가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100% 실력만으로 선수 선발을 하겠다고 공언한 베어벡 감독은 대표팀 명단에 박주영의 이름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2005년의 박주영과 2006년의 박주영은 확연히 다른 선수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린 것이다. 소속팀은 물론 대표팀에서도 신임을 잃은 박주영은 더 이상 ‘축구 천재’도 ‘한국 축구의 희망’도 아니었다. 재능을 다 발휘하지도 못한 채 그라운드를 떠난 몇몇 선배들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어렵게 올림픽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린 박주영은 일본전을 통해 그동안의 부진과 비난을 깨끗이 씻어내는 멋진 골을 폭발시켰다. 기나긴 암흑의 터널을 막 빠져나와 한 줄기 희망의 빛을 확인한 듯 자신감과 의욕이 넘치는 플레이를 펼쳤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박주영이 몸살 감기로 인해 일본전 출장 자체가 불투명했다는 점이다. 한일전에서 임시로 지휘봉을 잡았던 홍명보 코치는 “감기로 인해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팀을 위해 희생하면서 득점까지 해준 박주영이 고맙다”며 박주영의 부상 투혼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고통 없이는 결코 얻는 것도 없다. 한차례 혹독한 성장통을 겪은 박주영의 진정한 축구 인생 역시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시원한 골맛을 보며 부진 탈출의 서막을 알린 박주영의 화려한 비상이 기대된다.

2년차 징크스
박문성 SBS 축구해설위원은 박주영이 슬럼프에서 탈출해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박 해설위원은 박주영이 올해 부진을 면치 못했던 이유로 흔히들 말하는 2년차 징크스를 꼽으며 “플레이 스타일이 노출되며 상대 수비진이 박주영의 움직임을 알고 대처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해설위원은 하지만 “2년차 징크스는 세계적인 선수들도 누구나 겪는 일이다. 꾸준한 노력을 통해 이를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며 박주영의 부진이 일시적인 것이며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박 해설위원은 또 박주영이 본인에게 쏟아지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기대와 관심에 심리적인 부담을 느껴 플레이에도 악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또 “청소년과 성인 무대는 엄청난 수준의 차이가 있다. 본인이 스스로 느끼고 이겨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해설위원은 또 박주영이 더 큰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장점을 살리고 명확한 포지션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박주영은 아직까지 자신만의 특출난 장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측면 공격수로 뛰기에는 스피드가 떨어지고 중앙 공격수를 맡기에는 파워에서 밀린다. 플레이 특성상 중앙 공격수 뒤에서 공격을 조율하는 처진 스트라이커가 가장 적합하다”며 처진 스트라이커로 뛸 때 박주영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 해설위원은 마지막으로 “박주영이 한일전에서 골을 터뜨렸고 K리그 막판에도 골을 넣는 등 움직임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한번 골맛을 봤기 때문에 내년에 더 좋은 활약이 기대된다. 박주영은 충분한 잠재력을 지닌 선수다. 혹독한 성장통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재목이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 불운 겹친 베어벡호 침몰 위기
출범 100일을 갓 넘긴 ‘베어벡호’가 총체적인 난국에 빠졌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1월 15일 벌어진 이란전에서의 완패가 그 반증이라는 것. 게다가 축구협회의 복잡한 일정과 베어벡 감독의 판단 미스가 대표팀의 초라한 성적을 냈다는 것이다.
우선 핌 베어벡 감독의 판단 미스가 도마위에 올랐다. 핌 베어벡 감독은 K리그 챔피언결정전에 나서는 선수들을 무리하게 차출했지만 경기에 활용하지도 않아 구단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됐다.
또 지난 11월 14일 한-일 올림픽 대표팀 친선전을 위해 홍명보 코치가 국내에 머물려야 했다. 압신 고트비 코치가 이란 입국을 거부당해 베어벡 감독 홀로 이란전 벤치를 지켜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지 못한 불리한 조건은 납득이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올림픽 평가전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고 아랍 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진행되는 대표팀 첫 훈련은 고트비 코치 혼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는 국가대표팀과 아시안게임 대표팀, 올림픽팀으로 나눠진 3원 체제를 코칭스태프 4명이책임져야 하는 대한축구협회의 결정에 따른 인재라는 지적이다.
베어벡 감독 취임 이후 3개 대표팀을 맡고 있는 권한에 비해 코칭스태프가 갖는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지만 축구협회는 요지부동으로 단일 지휘체제를 고수하다 보니 감독 혼자 경기를 치르고, 코치 혼자 전지훈련을 맡는 파행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축구협회가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축구협회는 이에 대해 “3개 대표팀의 일정이 집중된 올해 말이 끝나면 내년부터는 스케줄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특히 베어벡 감독이 아시안컵 본선행을 확정짓고도 K리그 결정전에 나서는 선수까지 차출한 것은 무리수였다는 지적이다. 축구계 일각에서 “베어벡 감독의 판단력에 의문이 든다. 아시안컵 본선행을 확정짓고도 이란 원정 경기에서 선수를 출전시키지 않은데다 경기내용마다 실망감을 안겨 국내 프로팀으로부터 원망을 사고,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자충수를 뒀다는 비판이다. 이에 따라 이후 베어벡 감독이 대표팀을 운영하는 데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원정팀들의 무덤이라는 테헤란에서 베어벡 감독은 불운까지 겪어야 했다. 우리팀은 김동현 정조국을 전방 공격수로 내세우고, 김동진과 김진규를 중앙 수비수로 배치했다. 울산현대의 이천수와 최성국은 좌우날개로 섰지만 이란은 바이에른 뭔헨 소속 알리 카리미와 하노버에서 뛰고 있는 바이흐 하세미안 등 국외파들까지 총동원에 맞불을 놓았다.
우리 팀은 전반 2분 이란 니크바크의 슛이 크로스바를 맞는 바람에 위기를 넘긴 뒤에도 전반 내내 공격수 하세미안에게 수차례 위협을 당했다. 이란은 집요하게 우리팀을 두들기더니 결국 후반 들어 이란의 에나야티의 헤딩골이 골문을 가르면서 승패가 갈렸다.
우리팀은 전반 추가 시간에 만회할 찬스가 있었지만 이를 놓친 아쉬움이 있다. 전반 어저리 타임때 이천수가 찬 프리킥이 문지기의 손에 맞고 나오자 김동진이 재차 강슛을 날렸지만 수비수가 공을 걷어내 동점 기회를 날렸다. 또 후반들어 맹추격에 나섰다. 후반 37분 김진규의 속사포 중거리 프리킥도 문지기의 선방으로 막혔다.
이날 경기에 대해 베어벡 감독은 경험부족을 절감했다. 경기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베어벡 감독은 이란팀의 승리를 축하하면서도 23세 미만으로 꾸린 우리팀의 경험부족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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