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수, 최희섭 ‘거포들의 부활’

한국프로야구의 ‘투고타저(投高打低)’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두 거포의 부활이 화끈한 타격전을 고대하는 야구팬들을 설레이게 하고 있다. 그 주인공들은 바로 ‘헤라클레스’ 심정수(삼성 라이온즈)와 ‘빅초이’ 최희섭(기아 타이거즈)이다. 이승엽과 함께 한국 프로야구 거포자리를 다투던 심정수는 오랜 부진에 시달려왔으며, 메이저리그에서 돌아온 최희섭도 부상 등으로 인해 실력발휘를 못하고 있다가 얼마 전부터 ‘거포본능’을 발휘하고 있다. 사실 이들의 부활은 시즌이 얼마남지 않은 올해보다는 내년시즌을 더욱 기다리게 만든다. 야구팬들은 지난 2003년 이승엽과 심정수가 엎치락뒤치락하며 홈런레이스를 펼쳤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이승엽도 심정수란 강력한 라이벌이 있었기에 아시아 신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내년시즌 심정수와 최희섭이 지난 2003년 때 같은 화끈한 홈런포 경쟁을 펼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심정수는 이승엽과 함께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거포였다. 특히 2002년과 2003시즌 두 선수 사이의 홈런포 대결은 절정을 이뤘다. 심정수는 2002년 시즌에 타율 3할 2푼 1리, 161안타, 46홈런, 119타점을 올렸고 이승엽도 타율 3할 2푼 3릴, 165안타, 47홈런, 126타점을 올렸다. 다른 해 같으면 두 선수 모두 MVP를 받고도 남을 성적이었다. 결국 최종전 연장에서 이승엽 선수가 끝내기 홈런을 날리면서 근소한 차로 홈런왕에 올랐다.

다음해에 두 선수의 홈런레이스는 더욱 점입가경이었다. 두 선수 모두 시즌 전 메이저리그 플로리다 말린스 구단의 초청으로 스프링캠프에 다녀온 후 누구의 방망이가 낫다고 할 것 없이 불을 뿜었다. 이승엽이 단일시즌 아시아 홈런 기록인 56홈런을 치며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심정수도 53개의 홈런을 쳐냈다.


이승엽과 ‘거포’ 쌍벽 이룬 심정수

이후 둘의 운명은 엇갈렸다. 이승엽이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해 승승장구를 하는 동안 심정수는 부상으로 인한 부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특히 2005년 FA자격을 얻어 삼성으로 이적했으나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특히 국내최고 연봉인 7억 5000만원을 받으면서도 부진했던 것은 더욱 마음고생을 하게 만들었다. 반면 삼성은 심정수가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시리즈를 2연패하며 그의 존재가치를 무색케했다. ‘먹튀’라는 비난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것도 당연했다.

이러한 비난을 뒤로하고 올해 드디어 심정수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시즌 초까지만 해도 부진하던 그가 홈런포를 하나 둘 쏘아올리기 시작하더니 어느 덧 홈런(25개, 8월 29일 기준)과 타점(85점) 모두에서 선두 자리에 오른 것. 타율이 낮은 것(0.249)이 아쉽기는 하지만 거포가 절실했던 삼성 타선의 특성상 이 정도만 해도 A급 활약으로 평가받는다. 올해부터 시행된 써머리그의 성적만 놓고 본다면 흠잡을 데가 없다. 7월 15일부터 8월 14일까지 열린 서머리그에서 타율 3할1푼9리, 장타율 6할6푼7리, 홈런 7개, 타점 23개를 기록해 타율을 빼고 3개 부문 1위에 오른 것.

개인 성적이 뛰자 팀 성적도 덩달아 올랐다. 삼성은 심정수의 맹활약에 힘입어 서머리그에서 16승7패를 기록해 초대 우승팀이 됐다. 시즌 초 하위권에 머물러있던 순위도 이제는 2를 넘보는 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전적으로 심정수의 활약 때문이라고 볼 수 없지만 그의 상승세가 팀 성적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심정수의 부활은 삼성이 선발진의 약세에도 불구하고 내심 한국시리즈 3연패를 꿈꾸게끔 한다.


돌아온 ‘희섭 초이’

지난 5월 19일 두산과 기아의 잠실 3연전. 잠실구장은 모처럼 만원관중이 들어찼다. 메이저리그에서 복귀한 ‘빅초이’ 최희섭이 처음 타석에 들어서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당시 잠실구장을 찾은 모든 팬들은 최희섭이 시원한 홈런포를 날려 한국팬들에게 인사하기를 고대했을 것이다. 기대가 버거웠던 탓일까. 최희섭은 4타수 무안타에 그쳤고 오히려 부상까지 당했다. 진단 결과 “미세 골절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나왔고, 최희섭은 3경기만에 14타수 2안타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긴 채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1군에 복귀하기까지는 51일이 걸렸다.

최희섭은 강해져서 돌아왔다. 한국프로야구에 적응여부를 반신반의하던 전문가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7월 12일 대구 삼성전에 복귀한 그는 3타수 1안타를 쳤다. 볼넷도 2개나 골랐다. 메이저리그 시절부터 그의 장점 중 하나였던 선구안이 되살아났다는 증거였다.

이후 8월 13일까지 최희섭의 타율은 3할4푼1리였다. 22경기 가운데 2안타 이상을 때린 경기도 10번이었다. 이 22경기에서 KIA는 11승11패를 기록했다. 선발진이 무너진 가운데 올린 성적이다. 최희섭 효과 탓에 6월까지 경기당 3.6득점에 그치던 약체 타선은 7월 이후 한 경기에 4.9점을 올리는 불방망이 타선으로 바뀌었다. 다른 팀들에게 ‘물방망이’로 평가받던 기아 타선이 최희섭의 복귀로 일약 ‘공포의 타선’으로 뒤바뀐 것.

이후 페이스가 떨어져 2할9푼대(8월 30일 현재)까지 낮아졌으나 한국야구에 적응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줬다.

물론 야구팬들이 기대하고 있는 홈런포는 예상보다 많지 않다. 그러나 올해가 한국프로야구 첫 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홈런포를 펑펑 쏘아올리는 것보다 한국 투수들의 공에 적응하는 것이 급선무다. 홈런은 그 뒤에 나와도 늦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때문에 최희섭은 올해보다 내년, 내년보다 그 다음해가 더욱 기대되는 타자다. 스윙에 문제가 있다던 전문가들의 지적도 그를 지켜본 다음에는 많이 수그러들었다.

최희섭은 이제 메이저리그에 대한 미련도 다 접어버렸다. 한 때 최고 유망주로 대접받던 걸 생각한다면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이 이상할 법 하지만 이제는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이 최고의 목표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기대되는 2008년 프로야구

둘의 부활은 프로야구 팬들에게도 희소식이다. 한동안 프로야구에서 볼 수 없었던 ‘불꽃 홈런레이스’에 대한 기대감을 불어놓기 충분한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팬들은 올해보다 내년 시즌을 더욱 기대하고 있다. 부상과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온 이들이 내년 개막전부터 홈런포를 펑펑 쏘아올릴 장면을 상
상하면서 말이다. 팬들의 기대대로 된다면 지난 2002년과 2003 시즌에 이승엽과 심정수가 펼쳤던 경쟁을 다시 볼 수 없으리란 법도 없다. 누가 아는가. 두 사람 중 한사람이 이승엽의 단일시즌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깰지. 이제 한국 30년을 향해 달려가는 한국프로야구에 60홈런, 70홈런 타자가 나오길 기대해보며 이 두 선수중 한 선수가 이런 스타트를 끊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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