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5년 단임제 개헌 이후 당선된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자신의 권력 기반 강화를 위해 어김없이 ‘대통령당’을 만들었다.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소멸됐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역대 대통령들은 집권 마지막 해인 5년차에 자신이 주도해서 만들었던 당에서 모두 탈당했다. ‘미래권력’을 꿈꾸는 당내 대권주자들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기도 했고, 정권재창출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대통령 스스로 탈당의 길을 택하기도 한 것이다. 현존하는 정당 중 가장 오래된 정당은 14년의 역사를 가진 한나라당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배출한 한나라당은 그 역사를 이어갈 수 있을까. 이미 여당 일각에서 탈당 요구를 받은 바 있었던 이 대통령도 결국 탈당, 역사의 법칙을 이어갈까.

민자당 만든 노태우, 임기 말 탈당

1987년 치러진 13대 대선에서 민주정의당(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여소야대(與小野大)라는 불안정한 정국이 형성되자 여소야대 구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보수연합구도를 구축하려는 목적에서 정계개편을 추진했다.
그 결과 1990년 1월 민정당의 노태우 대통령,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총재,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총재가 3당 합당을 선언함으로써 거대보수여당인 민주자유당(민자당)이 탄생했다.
YS·JP와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던 노 전 대통령은 수서택지 비리사건, 제2이동통신 선정비리 문제, 김영삼 민자당 대표와의 갈등 등의 이유로 1992년 9월 탈당하기에 이른다.

신한국당 창당 YS도 결국 탈당

14대 대선에서는 민자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김영삼 후보가 청와대에 입성했다. 하지만,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자당은 통합 전의 3개 정당의 인맥이 당내 계파(민정계, 민주계, 공화계)로 존속하며 서로 갈등을 빚는다. 김종필 총재가 이끄는 공화계는 1995년 민자당을 집단으로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라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었고, 이후 민주계는 집권당 내의 민정계를 철저히 무력화시키기 위해 ‘역사 바로세우기’·‘5·6공 잔재청산’ 등을 구호로 내걸고 집권당인 민자당을 쇄신하는 작업을 전개했다.
민자당 쇄신작업의 과정에서 5·6공의 흔적이 남아 있는 민자당이라는 당명을 바꾸고 완전히 다시 창당하자는 주장이 우세해졌다. 그에 따라 민자당은 1996년 2월 임시전당대회를 개최하여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꿔 재창당했다.
이후 1997년 10월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이회창 후보는 김 전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대통령 후보의 비자금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 유보 결정을 내린 데 반발한 것이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은 11월 탈당을 단행했다.

김대중-노무현, 창당과 탈당 전철 밟아

15대 대선에서는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지게 된다. 하지만 집권여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는 집권 이래 국민의 개혁 욕구를 소화하는 데 실패하고 지역정당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1월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한다는 차원에서 새천년민주당으로 정당 명칭을 바꿨다. 2002년 5월, 김 전 대통령은 아들(김홍업, 김홍걸)들의 비리혐의로 인한 구속과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로 인한 민심악화로 인해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기에 이른다.
16대 대선에서는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나선 노무현 후보가 당선, 정권재창출을 이뤄낸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과 그 지지 세력은 2003년 11월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2월 “자신의 당적 문제로 다수의 국회의원이 당을 이탈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돼 당적을 유지하기 어려운 사정이 됐다”며 열린우리당을 전격 탈당했다.

한나라당도 소멸되나

1997년 창당한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내세워 정권탈환에 성공했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친박 공천학살을 통해 사당화를 시도했다는 비판을 뒤로한 채 한나라당을 대통령당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대세론’을 형성한 박근혜라는 강력한 미래권력으로 급격히 쏠림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이 대통령 측근비리 등으로 인해 레임덕 현상이 발생하면서 선긋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들도 나오고 있어 실제 공식적인 탈당요구로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친박계 유승민 최고위원은 한나라당 쇄신 방향을 논의한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이 이제는 이 대통령과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할 때가 됐다”면서 “당이 살고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유 최고위원은 “지금까지의 당·청 관계로는 안되며, 정권 재창출을 위해 견제할 것은 확실히 견제하고 협력할 것은 협력해야 한다”면서 “다른 사람들이 결별했다고 (인정)하는 수준까지 해야 한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유 최고위원의 발언은 사실상 박근혜 전 대표의 의중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당 쇄신을 계기로 박 전 대표와 친박계가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본격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 정치전문가는 “민정당, 민자당으로 이어져온 한나라당으로는 2040세대에게 비전을 줄 수 없다”면서 “신당창당의 길로 가야하며 당 쇄신만 거듭하는 것은 유권자를 호도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대통령과의 정리가 필요하다. MB정권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최근 기자와 만나 “한나라당은 소멸할 때가 됐다. 몇 달 안 남았다. 대통령 나온 당은 소멸된다. 박정희 때 공화당 생겼고 전두환 때 공화당 없어지고 민정당, 노태우 때 민정당 없어지고 민자당, 김영삼 때는 신한국당, DJ때는 국민회의, 노무현 때는 통합민주당 후보로 당선돼 놓고 열린우리당 만들었다”고 짚었다. 그는 “한나라당은 10년 동안 대통령이 안 나와서 오래간 것이다. 항상 대통령이 나오면 자기 당 소멸되고 새로운 당 나오는 게 한국 정치사의 흐름”이라며 “한나라당은 역사적 교훈에 의하면 이미 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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