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런 시장, 스스로 현명하게 풀어주기를 기대

- 금융시장의 근본적인 수술과 치유란 결국 긴축과 소비활성화로 귀결
- 견실한 유효수효가 없는 긴축은 일본식 장기불황, 디플레이션 예고

인간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이 마찬가지겠지만 경제라는 분야도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매우 복잡하고 지극히 간단하기도 하다. 생활인의 입장에서 경제를 간단히 정의하면 결국은 먹고 사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정의가 가리키는 바는 명확한데, 궁극적으로 경제를 이끌어가고 추동하는 것은 생산이 아니라 소비임을 알 수 있다. 무역학개론 첫머리에 ‘왜 수출을 하는가?’라는 질문이 있다. 그 답은 수입하기 위해서다. 수입하기 위해 수출하는 것이고 소비하기 위해 생산하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경제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원만한 소비행위를 영위하기 위한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세계 각국은 저마다 경제 혹은 금융환경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다양한 정책을 구사함으로써 위기국면을 극복해왔다. 위기는 실물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시스템의 문제였으며 각국의 정책 또한 잘못된 금융시스템을 개혁하고 그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1차적인 정책은 대부분 유동성 공급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급성질환에 걸린 환자에게 대증요법을 시행한 것이다. 패닉에 휩싸인 환자에게는 진정제를 투여해 안정을 이끌어내고, 영양실조에 걸린 환자에게는 영양제를 투여한 것이다. 다급히 시행된 일련의 조치들로 이제 환자는 어느 정도 안정을 회복하고 체력을 비축하고 있는 상태이며, 각국 정부는 환자에게 투여한 약효가 떨어지기 전에 보다 근본적인 수술을 시행하려 하고 있다.

근본적인 수술과 치유란 결국 긴축과 소비활성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국가 차원에서는 예산절감과 긴축으로 국가채무를 덜어내는 것이고, 국민 차원에서는 견실한 소비를 이끌어내는 것인데, 문제는 이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데 있다. 당장 복지 관련 예산이 줄어들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 영국과 그리스 등 유럽 각국에서 벌어지는 것이 이 어려움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사실 자본주의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자본주의 시스템은 주기적으로 붕괴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지적이다. 100명의 농사꾼에게 똑같은 면적의 농토를 골고루 나눠줘도 100년도 채 안되어 그들 중 누구는 지주가 되고 또 누구는 농노로 전락한다. 시스템이 망가진 것이다. 천년 제국 로마의 위정자들이 가장 크게 고민했던 것 역시 자작농의 육성이었다. 중산층에 해당하는 자작농이 붕괴되어 농노와 다름없는 상태로 떨어질 때 비로소 국가 역시 패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로마제국 말기에 벌어진 부의 과도한 편중과 중산층의 붕괴는 끝내 국가 로마의 패망을 불러왔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1930년대의 미국 대공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급과잉과 수요부족이 야기한 대공황은 결국 표면적으로는 뉴딜정책에 의해 수습됐지만 실질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의 막대한 유효수요에 의한 것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다급하게 시행된 일련의 정책들이 이제 서서히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다. 물가불안, 신인도 하락, 불황 조짐 등이 그것인데, 견실한 유효수효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긴축은 결국 일본식의 길고 긴 장기불황과 디플레이션을 예고하는 것이어서 각국 정부는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꺼내 들 마땅한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태로 망설이고 있는 사이 참을성 없는 시장은 변동성을 키워가며 긴장감을 높여가고 있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세상이치란 결국 그런 것이다. 변덕스러운 시장이 각국 정치지도자의 입을 주시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다. 한 해를 마감하며 스스로 묶어놓은 매듭을 빠르고 현명하게 풀어내주기를 기대한다.

민병돈 유진투자증권 광주북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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