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디도스·서울시장보선 등 ‘다사다난’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교수신문이 최근 발표한 올해의 사자성어로 ‘엄이도종’(掩耳盜鐘)을 선정했다. 엄이도종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한 남의 비판을 듣기 싫어 귀를 막아보지만 결국은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올 한해 한국 정치판에는 크고 작은 일들이 발생했다. 한미FTA 비준동의안 통과, 중앙선관위에 대한 디도스 공격, 대통령 측근비리 등이 이어졌다

여기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로 한반도가 긴장국면에 접어들었고, 10.26 서울시장 보선으로 촉발된 한나라당의 위기와 야권통합의 새로운 바람은 한국정치의 지형변화를 불러왔다. 또한 국회파행과 날치기 사태는 올해도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지난 2008년 헌법준수와 국민의 권익보호를 선언하며 18대 국회가 등원했지만 매 회기마마 보여준 이들의 행태는 정치적 불신과 국민적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18대 국회 마지막 해인 2011년 다사다난했던 한국 정치판을 10대 뉴스로 살펴보았다.

◇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올 한해 가장 큰 이슈는 단연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일 것이다.

지난 19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특별방송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오전 과로로 인해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한데 이어, 20일에는 김 위원장의 시신을 공개했다.

1994년부터 17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렸던 김정일 위원장은 자신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사인과 같은 심근경색으로 생을 마감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3남인 김정은이 차기 지도자로 지목된 가운데 북한은 김정은을 중심으로 유훈통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정은이 아직 어리고 후계자 수업기간이 짧았던 점을 고려할 때 김정은 체제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히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김정난 등에 의한 ‘형제의 난’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한반도의 긴장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 중앙선관위에 대한 ‘디도스 공격’

지난 10.26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던 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사건이 일어나면서 정치·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특히 ‘디도스 사건’에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인 최구식 의원의 9급 비서관 공모씨가 연루된 것이 확인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사건의 성격, 규모, 막대한 소요자금 등을 감안할 때 비서관 단독범행이라 보기에는 정황상 무리가 따른다는 이유에서다.

재보선 하루 전 공모씨는 박희태 국회의장의 의전비서 김모씨와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가졌고, 이 자리에서 ‘디도스 공격’에 대한 사실을 사전에 전했다.

또한 박 의장 비서관은 이날 공씨를 만나기에 앞서 공성진 전 의원 보좌관과 1차 술자리를 가졌고, 이 자리에는 정두언 의원의 비서관 김모씨와 청와대 국내의전팀 박모 행정관이 동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번 사건이 정부여당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개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 한미FTA 국회 날치기 통과

올해에도 국회 날치기 사태는 계속됐다.

지난 11월 22일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한 가운데 본회의 시작 5분 만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날치기 처리됐다.

지난 2008년 10월 8일 국회에 처음 제출된 이후 3년 만에 국회를 통과하게 된 한미FTA 비준안은 처리과정에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의원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고, 급기야 민노당 김선동 의원이 본회의장에 최루탄을 터트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강력히 반발했으며, 이후 모든 일정을 거부하면서 국회는 파행사태를 맞게 됐다. 또한 시민들은 한미FTA 무효를 주장하며 연일 촛불집회를 여는 등 정부여당에 대한 성토가 빗발치게 됐다.

◇ 한나라당 위기와 박근혜의 조기등판

10.26 서울시장 보선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무소속 박원순 후보에게 패한데 이어 중앙선관위에 대한 디도스 공격사태로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유승민·원희룡·남경필 최고위원이 전격 사퇴하면서 당이 뿌리 채 흔들리는 위기를 맞았다.

재창당 주장 등 당 쇄신 목소리가 커지면서 ‘박근혜 등판론’이 제기됐고, 한나라당은 박근혜 중심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당 쇄신작업에 들어갔다.

박근혜 전 대표가 4년여 만에 당 선봉에 서게 되면서 당내 권력변화는 물론 당·청 및 여야관계에 있어서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박 전 대표가 ‘친박해체 카드’까지 꺼내들며 쇄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 향후 대대적 혁신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 국민 기만한 저축은행 사태

지난 2월 부산저축은행의 영업정지로 시작된 저축은행 사태가 은행의 비리, 금융당국의 부실감독, 정관계 인사들의 연루의혹 등으로 번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고, 지난 9월에는 총 7곳의 저축은행이 추가 영업정지를 당하면서 큰 충격을 던져줬다.

저축은행 사태가 ‘전·현 정권 책임론’으로 번지면서 국회에서는 연일 ‘폭로전’이 이어졌고, 검찰 수사와 별개로 정치권의 진실게임이 시작됐다. 한나라당은 저축은행의 근본적인 원인이 ‘전 정권의 특혜’라 지적했고, 민주당은 ‘현 정권의 권력형 비리’라 규정, 대여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지난 7월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국정조사가 실시됐다. 그러나 여야 공방과 설전만 오갔고, 결국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면서 국조는 마무리됐다.

국정조사특위는 금융정책과 감독상의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저축은행 사태의 핵심인 정관계 로비의혹에 대해서는 진실 규명을 하지 못한 채 국조를 종결했고, 결국 용두사미를 끝난 국정조사는 국민적 비판을 받았다.

◇ 내곡동 사저의혹을 비롯한 MB측근 비리

임기 초부터 ‘도덕적 흠결’을 지적받은 이명박 대통령은 올 한해 측근비리와 내곡동 사저의혹이 불거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이 대통령 내외가 퇴임 후 거주할 내곡동 사저부지 일부가 장남 이시형씨 명의로 매입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온갖 의혹이 불거졌고, 여기에 시형씨가 매입한 곳이 공시지가보다 싸게 구입된 것이 알려지면서 ‘다운계약서’ 논란이 일었다.

또한 시형씨가 매입한 사저건물의 공시지가가 1년 새 16억 원 가량 떨어지면서 세액을 줄이기 위한 의도적인 공시가격 축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임기 중 측근 비리는 없다”고 공언한 이명박 대통령은 연이은 측근비리와 친인척 비리로 국민적 질타를 받아야만 했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관련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 수감됐으며,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SLS그룹 이국철 회장으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 김재홍 KT&G복지재단 이사장은 제일저축은행으로부터 수억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으며,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실의 ‘괴자금’에 대한 대대적인 검찰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향후 이 의원을 비롯한 대통령 측근비리는 더욱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 무상급식 논란과 서울시장 보선

올 한해 정치권은 복지논쟁으로 격렬하게 대립했고, 서울시 무상급식 논란으로 촉발된 오세훈 시장의 사퇴와 10.26 서울시장 보선은 정치권의 일대 변화를 가져오게 됐다.

민주당이 다수를 점한 서울시의회와 야권은 ‘전면 무상급식’을 요구했고, 오세훈 시장을 비롯한 보수진영은 ‘단계적 무상급식’을 주장했다. ‘보편적 복지론’과 ‘선택적 복지론’이 맞서면서 오세훈 시장은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를 실시하기에 이른다.

‘시장직’까지 내건 주민투표는 유효 투표기준을 채우지 못한 채 개표가 무산됐고, 오세훈 시장은 사퇴했다. 이후 치러진 10.26재보선에서 시민후보로 추대된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 보선에 당선되면서 정치판의 새 지평을 열게 됐다.

박원순 후보는 안철수 원장의 ‘아름다운 양보’와 지지 그리고 민주당 박영선 후보와 단일화를 이루면서 바람을 일으켰고, 이러한 바람은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와 압도적인 표차로 나타났다.

서울시장 보선은 결과적으로 정당정치의 위기와 안철수 열풍을 가져다주었으며, 한나라당의 쇄신과 야권통합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 정당정치의 위기와 ‘안철수 열풍’

올 한해 정치권을 가장 뜨겁게 달군 이를 꼽으라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뽑을 수 있다.

정치경력이 일천한 안철수 원장이 10.26재보선 이후 새로운 정치적 대안으로 급부상하면서 대권주자로까지 분류되는 등 정치권에 엄청난 바람을 몰고 왔다. 더욱이 안 원장이 자신의 ‘안철수연구소’ 주식 지분 가운데 1500억 원 상당을 사화에 환원하면서 우리사회는 물론 정계에 적잖은 충격을 던져줬다.

안철수 원장은 “단지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일을 실행에 옮긴 것일 뿐”이라며 정치적 해석에 선을 그었지만 그의 사재출연이 정계진출의 신호탄으로 해석되면서 정치권은 급속도로 안철수 소용돌이로 빨려들었다.

대선후보 가상대결 시나리오에서 ‘박근혜 독주론’을 제치고 단숨에 1위를 차지한 안 원장은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면서 기존 정치판을 뿌리 채 흔드는 ‘상수’가 됐다.

◇ 야권통합과 ‘친노’의 부활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야권에 통합의 바람이 일고 있다.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 중심의 시민통합당이 통합에 합의하면서 민주통합당이 새롭게 출범했고, 이에 앞서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그리고 진보신당 탈당파인 새진보통합연대도 통합진보당으로 통합을 이뤘다.

민주당은 통합을 둘러싸고 당이 분열하는 등 혼란의 모습을 보였지만, 지난 11일 임시 전당대회를 통해 통합이 가결되면서 이에 대한 후속작업도 발 빠르게 진행됐다.

그리고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의 통합수임기구는 16일 합동회의를 열고 ‘민주통합당’이라는 새로운 당명을 확정한 뒤 다음달 15일 경선을 통해 신임지도부를 최종 선출하기로 결의했다.

야권통합 과정에서 주목할 만은 점은 그간 절치부심하던 친노(친노무현)가 부활을 꾀했다는 것이다. 통합의 주도권을 쥐면서 정치권의 핵으로 급부상한 친노진영은 야권통합의 새로운 정치판을 구상함으로써 내년 총선과 대선의 큰 판을 그려갔고, 그 결과 민주통합당을 새롭게 출범시킬 수 있었다. 여기에 통합을 이끌었던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대선후보로까지 지목되면서 친노그룹의 미래를 더욱 밝게 하고 있다.

◇ 4.27재보선과 손학규의 ‘생환’

지난 4.27재보선은 내년 총선과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가지면서 그 결과에 이목이 집중됐다.

특히 강재섭 한나라당 전 대표와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라는 두 흥행 보증수표가 경기 성남 분당‘을’을 놓고 맞붙으면서 선거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선거결과에 따라 향후 정국의 판도가 바뀌고 두 후보의 명운이 확연히 갈린다는 점에서 양당은 이 지역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켰다.

여기에 MBC 두 전직 사장출신인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와 최문순 민주당 후보가 강원도지사 자리를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면서 강원도 또한 핵심 쟁점지역으로 떠올랐다.

결과는 두 지역 모두 민주당의 완승으로 끝났고 그 여파는 10.26재보선까지 이어졌다.

보수적 성향이 짙은 분당에서 손학규 대표의 당선은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적 불만의 폭을 말해주는 것으로 향후 정치판도가 야권에 급속히 기울여지는 계기를 제공했다. 또한 손학규 대표는 4.27재보선을 통해 민주당의 유력 대권후보로써 더욱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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