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지식이 아니라 통찰력을 원한다

지수의 등락에 영향 미치는 변수 대략 500여 가지
사색 통해 얻은 통찰력, 지표와 차트 뛰어 넘어

바둑 프로기사들이 대국에 임하는 자세를 살펴보면 어쩐지 경지에 올라선 고승처럼 여겨진다. 정중동! 단 한차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바둑판을 노려보다가 묵직하고 신중한 손놀림으로 돌을 들어 스스로 정한 자리에 내려놓는다. 20여 초에 불과한 그 짧은 시간 동안 프로기사의 머릿속에는 무수한 경우의 수와 그로 인해 파생될 온갖 상황, 정보가 뒤엉키며 불꽃을 튀기다가 이윽고 하나의 선택으로 수렴되는 것이다.

바둑의 경우 9단과 1급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은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한다.
모두의 머릿속에는 바둑의 모든 정석과 포석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하지만 1명의 9단과 100명의 1급이 동시에 대적해도 승패는 항상 정해져 있다.

저급한 종류의 게임일수록 기술과 지식이 승부의 관건이 되지만 고급한 게임의 경우에는 그것보다 오히려 통찰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식투자를 일종의 고급 게임이라고 가정해볼 때 일반적인 개인투자자들의 경우 대략 10여 가지의 변수를 고려하면서 투자에 나서고, 펀드매니저 등 전문 투자자들은 20여 가지의 변수를 고려한다고 한다.

그런데 지수의 등락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대략 500여 가지라고 한다. 500여 가지의 변수를 모두 고려하면서 투자에 나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설령 그 모든 변수를 고려하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은 고작 50%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절망적인 사실은 주식에 대한 단순한 지식과 알량한 기술적 분석 자료만을 가지고 투자에 나서는 우리의 행동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새삼 일깨운다.

그렇다면 방법은 없을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인식의 차원을 확장하는 힘, 바로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다.

부분만을 보고도 전체를 간파해내고 표면의 현상만 보고도 이면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이 순간순간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각종 경제지표를 분석하고 현란하고 복잡한 차트를 읽어내는 능력보다 훨씬 중요하다.

경제현상에 대한 정보와 투심을 자극하는 정보는 주변에 무수히 많다. 이 정보 중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은 것이 없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따라서 이 정보들을 모두 변수로 생각하고 이 변수들이 서로 어우러져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킬 것이며 그 반응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고려하여 자신의 포지션을 정해야만 한다.

투자를 결정하는 이 엄청나게 복잡한 판단과정이 단순하고 알량한 지식만으로 가능할까. 지식은 절대로 통찰을 이기지 못한다.

그렇다면 통찰력을 키우기 위한 지름길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투자를 위한 정보를 찾아 헤맨다. 두터운 경제서적을 읽기도 하고 고수들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그들의 현란한 언변과 적절한 논리에 감탄하며 환호한다. 그들이 내뱉는 비법을 칭송하며 그 비법과 지식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입력한다. 그런데 지식을 쌓는다고 통찰력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 지식이 한데 어우러져 숙성되고 발효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사색을 통해서만 비로소 가능하다.

사색이란 “어떤 것에 대해 깊이 헤아려 생각하는 것”이다.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져보는 훈련이 되어있을 때 통찰력은 깊이를 갖게 되고, 이 통찰력에 의해 작은 정보에 내포된 커다란 진실에 다가서게 된다. 생각의 차원이 높아지면서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것도 볼 수 있게 된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가 빨간 알약을 선택함으로써 얻은 것이 바로 현실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다.

우리 역시 사색을 통해 얻은 통찰력으로 지표와 차트를 넘어 저편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지식은 결코 통찰력을 넘어설 수 없다. 

<전진오 굿세이닷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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