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비대위 “공식 입장 아니다” 해명에도 갈등 확전 양상

<사진자료=뉴시스>
김종인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이 이명박 대통령의 자진 탈당을 요구하고 나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하다”며 내부 진화에 나섰지만 당 비대위를 향한 친이계의 역풍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치적 감각도 없는 MB”

김 비대위원은 18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새로운 보수가치와 한나라당 비대위의 과제’ 토론회에 참석해 발제에 나섰다.

이 토론회는 원희룡 의원이 주최한 것으로 김 비대위원 외에 고성국 정치평론가, 이근식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등 5명이 토론을 벌였다.

발제에 나선 김 비대위원은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위해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최고통치자가 그 정도 정치적 감각도 없으면 문제가 복잡해진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들이 경제 전문가라는 점 하나를 보고 MB를 뽑았지만 그동안의 치적을 보면 전혀 나아진 게 없다”며 “국민들은 대통령을 외면했고 그 결과가 2010년 6·2 지방선거 결과”라고 현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당시 한나라당은 천안함 사태로 안보의식이 고취되니까 대승하리라 기대했지만 국민들은 의식구조 자체가 달라졌다”며 “국민들은 쓸데없이 자꾸 불안요소를 주입하는 것을 이미 받아들이지 않게 됐다”고 주장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를 언급하는 부분에선 친이계를 정면으로 겨냥한 듯 보였다. 그는 “당시 한나라당은 25.7%가 자기편이니까 희망이 보인다고 했는데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당을 쇄신하겠다는 게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쓴 소리를 이어갔다.

그런 뒤 비대위 흔드는 당내 친이계 의원들을 향해 “지도부가 없을 정도로 당이 추락해 어쩔 수 없이 외부인사 조력 받아 비대위 구성했으면 변화를 기다려보는 게 예의”라며 “지원은 못해줄 망정 헐뜯고 자기 이해득실을 따지는 일은 삼가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어 한나라당과 청와대와의 관계 정리에 대한 물음에는 “선거가 현 정부 심판론으로 가면 굉장히 어렵다”며 “현 정권의 실수를 솔직히 시인하고 앞으로 이렇게 가야한다고 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이 “당 쪼개자는 거냐”

이를 두고 청와대 박정하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발언의 배경과 진위를 파악해보고 있는데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직접적으로 대응하지 않겠다”고 애써 외면했다.

이유야 어찌됐던 김 비대위원의 발언이 최근 당 비대위가 정부와의 정책 차별화 시도하고 있는 연장선장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청와대는 ‘진위 파악’이라는 표현으로 불쾌감을 에둘러 표시했다.

파문이 일자 한나라당 황영철 대변인은 급거 “김 비대위원의 발언은 비대위 공식입장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당내 친이계 의원들 사이에서 김 비대위원의 발언이 결국 이 대통령과 결별을 염두에 두고 있는 박 위원장의 속내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거센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한 친이계 초선 의원은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노골적으로 대통령에게 당을 나가라고 하는 판인데 우리(친이계)는 공천에서 쳐낼 눈엣가시 아니겠냐”며 “이제 박 위원장이 김종인이라는 홍위병을 앞세워 땅을 쪼개자는 소리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며 분통을 삭히지 못했다.

앞서 정몽준 전 대표는 김 비대위원이 전날 비대위 연석 의원총회에 불참한 것에 대해 “방송에는 잘 나와서 이야기하면서 국회에서 하는 이런 중요한 행사에 안 나오는 것은 아주 예의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의총직후 진수희 의원은 같은 지역구 출마를 앞두고 있는 민주당 최재천 전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김 비대위원이 참석한 것을 두고 “김 비대위원장이) 천정배, 정동영 의원과 같이 와서 우리 당을 희화화하는 이야기까지 해 황당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표출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비대위와 친이계 양측 모두 골 깊은 불신과 갈등이 이미 한계점을 넘어 결별 시점만 남겨두고 있다는 말들이 당 안팎에서 기정사실처럼 떠돌고 있다.  여기에 당 비대위 공천 기준에 반발해 설 연휴 이후 친이계 의원들이 대거 탈당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고동석 기자>kd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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