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명개정으로 박근혜당 화룡점정…그 이후는?

▲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비대위 회의에서 박근혜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위기의 한나라號를 구하기 위해 야심차게 뛰어든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뚜렷한 성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박 위원장이 ‘재창당을 뛰어 넘는 쇄신’을 다짐했지만 쇄신은 온대간대 없고 외부 비대위원과의 파열음만이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2004년 ‘탄핵 정국’ 같은 극한 위기상황에서 한나라를 구했던 박근혜를 2012년에는 찾아볼 수 없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이런 연유로 박 위원장의 리더십에 의문을 품는 눈빛이 늘어가고 있다. 당내에서조차 ‘개그콘서트 비대위보다 못한 박근혜 비대위’라고 비아냥거린다.

박근혜 위원장이 구원투수로 나선 한나라당 비대위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국민들의 눈은 냉혹하기만 하다. 한나라당이 최근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민주통합당에 10%p 이상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야당이 한나라당을 두 자릿수 이상 앞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위원장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기술과학대학원장과의 대선후보 가상대결에서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의 가상대결에서도 오차범위 내 접전을 펼친다는 여론조사까지 나왔다. 한나라당으로선 총선에서, 박 위원장으로선 자신의 대선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위기의 ‘박근혜 비대위’

‘박근혜 비대위’가 위기에 놓여 있다. 비대위에서 정강·정책에서 ‘보수’를 삭제하자는 의견, 재창당을 해야 한다는 의견,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뒤엎는 재벌개혁 의견 등이 제시됐지만, 박 위원장의 한 마디에 모두가 없던 일이 돼버렸다.

이에 대해 김종인 비대위원은 “당이 살기 위해서는 중도층과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안타까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박 위원장은 지난 26일 비대위 전체회의에서 ‘돈 봉투’ 사건을 계기로 급부상한 당대표·중앙당 체제 개편 요구에 대해서도 “워낙 크고 (당의) 근간을 바꾸는 것인 만큼 시간을 두고 검토하자”며 제동을 걸었다.
외부영입 비대위원과 쇄신파가 제기한 ‘MB정권 실세 용퇴론’과 ‘이명박 대통령 탈당론’ 역시 박 위원장은 “당내 분열이 우려된다”며 사실상 제지했다.

그러나 쇄신과 화합이란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결정적 시기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성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지난 27일 대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처음에는 재창당을 뛰어넘는 쇄신을 하겠다’, ‘보수용어를 삭제하겠다’, ‘중앙당을 폐지하겠다’면서 신문 1면을 장식하더니 그마저도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며 “그나마 국민들이 기대했던 출자총액제 부활, 유통재벌 규제 등 쇄신안은 박근혜 위원장의 반대로 좌초됐다”고 박 위원장과 한나라당 비대위를 맹비난했다.

외부 비대위원과 불화설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외부에서 들어온 비대위원들 사이에 상당한 긴장감이 형성되고 있다. 박 위원장은 26일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전체회의 진행 도중 작심한 듯 외부 위원을 겨냥해 경고성 발언을 했고, 김종인 위원은 박 위원장과 정책쇄신분과위의 역할에 대해 입씨름을 벌인 뒤 “사퇴” 얘기를 꺼내들며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복수의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위원장은 전날 회의에서 중앙당 체제 개편 문제를 논의하다가 “결정하지도 않은 내용이 언론에 나가면 어떻게 하느냐.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이는 24일 이상돈 위원이 공개 브리핑을 통해 정치쇄신분과위원회의 아이디어라는 점을 전제로 “중앙당은 전국위원회 체제로 바꾸고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없애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힌 뒤 중앙당 체제 개편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에 제동을 건 것이었다.

이어 한 한나라당 의원 출신 비대위원이 “언론에는 정직하게 얘기하되 휘말려서는 안 된다”며 맞장구를 치자 비대위 분위기는 내부 위원들이 외부 위원을 훈계하는 모양새가 됐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다른 사안을 논의하던 도중 박 위원장이 갑자기 이 문제를 꺼내들었다”면서 “순간 분위기가 냉랭해지면서 외부 위원들의 얼굴이 잠시 일그러지더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당의 한 관계자는 “친이(친이명박)계 쪽에서 ‘외부 위원들이 박 위원장과 짜고 공격적인 발언을 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상황에서 박 위원장이 한번쯤 제동을 걸고 자신의 본심과 무관하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김종인 위원이 다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공천심사위원회가 구성되고 제 기능을 하면 비대위는 역할을 거의 다 하는 것”이라면서 중도 사퇴 가능성을 언급, 외부 위원들이 당내 압박에 동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박 위원장의 지적을 받은 이상돈 위원도 “(중앙당 체제 개편은)사실상 제 개인 의견이 아니고 저희 분과에서 이렇게 의견을 나누고 공감대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동안 비대위가 기대한 것만큼 어떤 큰 변화를 가시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준석 위원도 “박 위원장이 약속과 신뢰를 지키고자하는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진지함에서 가끔 답답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당명개정은 일사천리

‘보수 삭제’, ‘재창당’, ‘중앙당 해체’, ‘MB 탈당’은 박 위원장의 “안 돼~” 한 마디에 모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유독 박 위원장의 의중이 담긴 ‘당명 개정’만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지난 26일 15년 만에 당명을 개정키로 한 것이다. 박 위원장이 비대위 비공개 회의에서 이 안을 보고받고 곧바로 “의결하는 걸로 하시죠”라며 마무리 지었다는 후문이다.

한 비대위원은 “박 위원장이 당명 개정에 상당한 열의를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대체로 겉모습을 바꾸는 것에 대해 이벤트나 쇼라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그러나 당명 개정에 대해선 주변에서도 이례적이라고 평가할 만큼 신속하고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박 위원장 측은 “당명 개정을 통해 쇄신의 의지를 천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박 위원장이 내심 새로운 당명을 ‘박근혜 브랜드’로 삼아 책임지고 당을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한 친박 의원은 “한나라당이란 당명은 조순 전 서울시장이 만든 것으로 ‘이회창당’의 이미지가 강해 2004년에도 박 위원장은 그런 색깔을 지우고 싶어 했다”며 “과거를 벗어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새 이름을 지으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한나라당은 27일부터 3일간 국민 공모를 통해 새로운 당명을 추천받고, 전문가 검토를 거쳐 30일 비대위에서 의결할 계획이다. 이후 상임위원회, 상임전국위원회를 거치고 나면 2월 10일에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해 최종 절차가 마무리된다.

이처럼 당명 개정을 통해 진정한 박근혜당으로 거듭날 한나라당이지만 간판만 바꾼다고 국민들의 눈을 속일 시대는 지났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여전한 불통, 박근혜

외부 비대위원들과 갈등도 지지부진한 쇄신 속도도 모두 박근혜 위원장의 ‘불통의 리더십’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도권 친이계 한 의원은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정태근-김성식 의원의 탈당 사태나 비대위 구성 등에서 보아지듯 박 위원장 주변에는 여전히 철의 장막이 쳐져있는 것 같다”면서 “공천심사위 구성 역시 ‘박근혜식 인사’를 고집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고 꼬집었다.

실제 박 위원장은 당초 설 연휴 직후 공심위를 구성하겠다고 했으나 이 일정을 2월 초로 연기했다. 비대위는 ‘인물난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비대위원 추천 인물에 대한 박 위원장의 거부감 때문이란 관측이 많다.

김종인 위원과 이상돈 위원은 공개적으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영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박근혜 위원장을 비롯해, 박 위원장 주변 인물들은 윤 전 장관 영입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장관 역시 “현재 (한나라당) 구조에서는 제가 들어갈 가능성이 없고 저에게 (공식) 제안이 올 가능성도 없다”고 선을 긋고 있는 상황이다.

친박계에선 윤 전 장관이 공심위원장으로 올 경우 자신들이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반대하고 있고, 윤 전 장관 역시 박근혜 체제의 현재 한나라당 구조는 전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비대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박근혜의 변신’과 ‘측근 그룹 해체’가 선행돼야 한다는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이유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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