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일요서울’은 김 전 대통령 서거 직전 모 언론 칼럼이 김 전 대통령 살아생전 마지막 언론과의 화해를 했다고 쓸 정도로 어느 쪽이 싫든 좋던 간에 특별한 인연을 가져야 했다. 발단은 최근 미국법원이 다시 정치적 망명을 허가한 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씨에 의해서였다. 김 씨는 지난 2000년 김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둘러싼 의혹을 2008년 4월 일요서울에 육필원고를 통해 제기해왔다.

일요서울은 즉각 망명중인 김기삼씨와 국제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기가 초래되고 있는데도 진실을 바로 보도하지 않는 한국 언론에 불만을 쏟아냈다. 사실을 흥미위주로 포장해 보도하는 데만 급급할 뿐 정작 국민이 알아야할 중요한 내용들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혼자 진실을 위해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그 대가로 모든 불이익을 뒤집어써야 하는 현실에 지쳤다고 했다. 이런 김 씨 주장에 관해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DJ노벨상 로비설은 근거가 없는 허무맹랑한 주장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김기삼씨는 “DJ의 노벨상 로비의혹은 내가 하루 이틀 조사해 알아낸 것도 아니고 몇몇 사람에게 귀동냥한 내용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라고 했다.

일요서울은 김 씨의 망명을 미국이 허용한 것은 그가 제기한 DJ정부 의혹을 미국정부가 일부 인정했다는 판단을 해서 2008년 5월 2일자 발행 731호에 의혹 전말을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보도가 나가자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은 즉각 일요서울에 대해 언론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사실이 전해지자 DJ측 조치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다.

온라인에선 긍정과 부정의 시각이 대립각을 세웠다. 한 쪽은 “언론의 입을 막기 위한 전형적인 표적소송”이라며 “이번 기회에 DJ정부의 모든 의혹들을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다른 한 쪽은 “정확히 확인 안 된 내용을 보도하는 무책임한 언론에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고 맞서는 상황이었다. DJ측의 소송제기 사실을 접한 김기삼씨는 “김 전 대통령 측과 임동원씨가 나의 주장을 보도한 일요서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엄청나게 큰 실수”라며 “앞으로 일요서울에 연재되는 수기내용에 맞춰 순차적으로 자료를 공개할 것이며 지난 8년간 많은 준비를 해왔다. 이런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 1년여 후 소송 건은 병상의 DJ측 소송취하로 유야무야 끝이 났고 2009년 8월 18일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지금 2년 6개월 세월이 흐른 시점이다. 그런데 몇 일전 모 언론 지면에 깜짝 놀랄 기사가 게재됐다. 1968년 1.21사태 때 청와대 습격조는 31명이 아닌 33명이었고, 그중 2명이 ‘목 자르기 협박’ 끝에 남한 간첩이 돼 “인민군 최고지위로 출세하라”는 지령을 받고 돌아갔으며, 이후 이들이 각각 인민군 상장과 소장으로 진급했지만 98년 신분이 드러나 처형됐다는 증언 내용이 실렸다.

자지러질 일은 124군부대 후신부대 상좌급 탈북자 홍 모 씨가 북한에서 이 ‘간첩 공작’이 탄로 난데 대해서 “98년 이 사건을 취조한 보위부 사람들이 ‘남조선 김대중 정부에서 자료가 올라왔다’고 말했다”며 이 사태로 장성 100여명, 대령 50여명, 사회안전부, 당의 고위급 100여명이 체포돼 대개 사형됐다“고 말한 사실이다. 결코 진실이여선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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