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총선 공약에서 남부권 신공항을 제외키로 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지역 여론은 아랑곳없이 입맛대로 공약에 포함 시켰다가 반발이 거세지자 없던 일로 하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총선 공약에 반드시 남부권 신공항을 포함시키겠다고 했었다. 신공항은 1998년에 부산이 처음 유치계획을 발표한 이래 10년 넘게 끌어오다 영남 지자체간의 유치 갈등과 경제성 난맥 때문에 작년 3월 이 정부가 백지화 발표를 했다.

갈등의 생채기가 남아있던 터에 새누리당이 다시 공약으로 들고 나온 것이다. 무책임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더구나 이번에는 남부권이란 이름으로 호남까지 끌어들여 갈등 범위를 확대시켰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 이 남부권 신공항 공약은 밝힌 지 일주일 만에 공약 불채택을 발표해야만 했다.

그러나 토를 달았다. 중앙당 차원에서는 제외하지만 지역후보자들이 공약으로 제시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고 밝혔다. 지역 후보자들이 내걸어서 실현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 말이다. 얄팍한 속셈이 면경같이 드러나 보인다. 신공항과 같은 막중한 공약이 일주일 만에 허수아비 춤을 추는 정당을 책임 있는 공당으로 신뢰할 수가 있을까 싶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대형 개발사업 선거공약 때문에 국민 갈등을 겪은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1987년 노태우의 새만금, 2002년 노무현의 행정수도, 2007년 이명박의 동남권 신공항과 충청권 과학비즈니스벨트 공약 등이 대표적 예다. 경제·사회적 영향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제시된 공약들이 선거 후 갈등의 유령이 되어 국민을 갈라놓았다.

특히 동남권 신공항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이명박·박근혜 후보 모두 공약했었다. 양쪽 다 여객, 화물의 수요 증가만을 생각했던 것이다. 경부고속철도 완공으로 비행기 운송 수요가 대폭 줄어들 것이란 계산을 안했다. 경제성 없다는 판단이 나오자 이명박 대통령은 전문가로 입지평가위를 만들었다. 입지평가에서 7.2점 만점에 가덕도는 2.2점, 밀양은 2.0점을 받았다. 이로써 동남권 신공항은 백지화되기에 이르렀다.

이때 박근혜 위원장도 동남권 유권자들을 설득하고 현 상황에서의 백지화를 표명할 기회가 됐었다. 장기적으로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주장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박 위원장은 경선 때 ‘줄푸세’를 공약했었다. 박 위원장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세금을 줄이고 무슨 수로 자신이 주장하는 한국형 복지를 이룰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호남과 충청의 신공항 수요는 동남권과는 비교가 안 된다. 광주 무안공항은 거점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고 자체 육성계획까지 서있는 것으로 안다. 집권 여당이 표 얻기 묘안을 짜내는 데만 골몰하는 모습이 너무 실망스럽다. 박 위원장이 끝까지 자신 있다면 어느 곳의 입지 여건이 신공항에 적합하다고 보는지, 뒷감당 할 자신은 있는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국가적 대사를 지역공약으로 처리하겠다는 발상은 정치꼼수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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