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순서는 ‘어디 회장’?

[일요서울ㅣ강길홍 기자]  최근 검찰이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에 대한 배임·횡령 혐의로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번 하이마트에 대한 검찰의 수사 착수는 대기업 전반에 대한 수사를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이미 검찰의 다음 타깃으로 D기업과 H기업 등 2~3곳의 대기업이 지목되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강화된 법원의 처벌 수위도 재계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됐기 때문이다. 앞서 검찰은 SK·한화 등에 대한 수사를 벌여왔고, 현재는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로 인해 이명박 대통령의 친기업 정책으로 활개를 치던 재벌들은 레임덕 이후 검찰과 법원의 달라진 자세에 잔뜩 움츠러들었다.

검찰 대기업 비리 전방위 수사 압박에 재계 ‘전전긍긍’
엄격해진 법원 판결에 재판중인 SK·한화 ‘좌불안석’

재벌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는 것과 함께 선거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도 재벌개혁이 화두로 떠올랐다. 검찰은 이 같은 분위기에 화답하고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최재경 검사장)는 지난달 25일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의 배임·횡령 혐의와 관련해 하이마트 본사와 선 회장의 자택 등에서 압수수색을 벌였다. 선 회장은 조세피난처에 세운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1000억 원대의 회사자금과 개인자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하이마트 임직원과 선 회장의 자녀들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하이마트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던 유진그룹에도 불똥이 튀었다. 당장 이달 초 인수의향서(LOI)를 접수받고 서둘러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었지만 모든 계획이 잠정 중단됐다. 선 회장의 횡령금액에 따라 한국거래소의 실질심사를 받은 뒤 자칫 상장폐지 처분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유진그룹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중수부가 기업 수사에 나선 것은 지난 2010년 C&그룹 이후 1년 4개월 만이다. 중견기업으로 꼽히는 하이마트에 대해 중수부가 직접 수사에 나서면서 말이 무성하다. 선 회장의 배임·횡령이 해외탈세와 연관돼 중수부가 수사에 나섰다는 시각도 있지만 앞으로 진행될 대기업 수사를 앞두고 본격적인 활동의 신호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특히 한상대 검찰총장은 최근 중수부를 비롯해 일선 지방검찰청에 경제 범죄와 관련해 엄단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어음(CP) 부정발행 의혹과 탈세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온 기업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하이마트 사건을 계기로 대선을 앞두고 검찰이 올해 안에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기업 수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속력을 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구자원 LIG그룹 회장은 LIG건설 CP 부정발행 의혹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중희)로부터 계좌추적 및 출국금지를 당하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있다. 또한 그린손해보험은 위험기준자기자본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세조종을 한 혐의가 포착되면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고소·고발로 인한 대기업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영종도 땅 매입과 관련해 소송사기 혐의로 고소당했고, 롯데그룹은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사업과 관련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편법 수수료 취득 의혹으로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 

검찰의 대기업 수사가 이어지면서 ‘다음 순서가 누구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이마트 수사가 마무리되고 4·11 총선이 끝나는 시점에서 검찰이 2~3곳의 대기업을 손본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검찰은 지난해부터 대기업의 해외 탈세 혐의에 대한 내사를 벌여왔고 곧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수사 일정이 정해진 것은 없다”고 밝혔다.

법원 판결도 강화돼

법원도 최근 대기업 오너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재벌 비리에 대해 엄단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커지면서 그동안 관행처럼 내려졌던 집행유예 판결 공식이 깨졌다는 평가다. 지난달 21일 1400억 원대의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1심 재판에서 징역 4년6월과 벌금 20억 원을 선고받았다. 이 전 회장의 모친인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도 같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일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 출두에 앞 서,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뉴시스>
법원이 이호진 전 회장 등에게 실형을 선고하자 재판을 받고 있는 다른 기업도 불안에 떨고 있다. 630억 원대의 회삿돈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그의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은 지난 2일 1심 재판 일정에 돌입했다.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좌불안석’이다. 당초 지난달 23일 선고가 예정돼 있던 김 회장은 갑작스럽게 재판부가 교체되면서 선고 일정이 연기된 상황이다. 앞서 검찰은 김 회장에게 횡령 등의 혐의를 적용해 징역 9년에 벌금 1500억 원을 구형한 바 있다. 이호진 회장의 실형 선고 이후 김승연 회장의 선고 일정이 연기되자 의혹의 눈길도 쏠리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달 22일 논평을 통해 “이번 선고연기의 배경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확인된 바 없지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재벌 봐주기 비판 여론 등에 대한 부담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면서 “사법부는 재벌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엄중한 잣대에 따라 소신 있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는 전방위적 기업 수사가 정치적 논리에 따라 진행되는 전형적인 ‘재벌 때리기’가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검찰이 무리한 기업 수사에 나서면서 많은 대기업들이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면서 “검찰의 수사로 인해 자칫 기업 활동이 위축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그룹 오너 개인의 잘못을 기업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봐주기 식으로 넘어가는 관행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며 “그룹 오너가 구속되더라도 전문경영인 등을 통해 회사 경영에 차질이 없도록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slize@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