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계 역습 시작됐다

▲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지난 8일 국회 정론관에서 최근 당의 공천심사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새누리당 공천 파동이 심상찮다. 공천 탈락에 불만을 품은 전여옥, 이윤성, 허천 의원 등의 줄탈당 사태가 이어지고 있고, ‘공천 학살’에 맞선 ‘친이 무소속 연대’ 움직임까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연쇄 회동을 통해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사당화에 반대한다면서 신당 창당 등의 다양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4년 만에 비주류로 밀려났던 친이계의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이재오, 공천 반납 검토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받아들였기에 큰 것을 이루고(海不辭水 故能成其大) 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았기에 높음을 이룰 수 있으며(海不辭水 故能成其大) 현명한 군주는 어떠한 사람도 물리치지 않았기에 대중을 이끌 수 있다(明主不厭人 故能成其衆)”
새누리당 친이계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이 지난 8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제나라 재상 관중의 말을 인용, 4.11총선 공천 과정에서 이뤄지고 있는 ‘친이 학살’에 대한 직격탄을 날렸다.
이 의원의 측근으로 통하는 진수희, 최병국, 권택기 의원과 김해진 전 특임차관이 낙천한 데 이어 핵심 측근인 안경률, 이군현 의원 등이 공천 탈락의 위기 상황에 빠져 있는 상황에 대해 박근혜 위원장을 직접 겨냥한 말이다.
이 의원은 “감정적, 보복적 공천을 하지 말라”고 지적, 향후 이어질 공천에서 친이계 탈락이 이어질 경우 큰 파장을 예고했다.
그는 이런 식의 공천이 진행될 경우 4·11 총선은 물론 ‘12·19 대통령 선거’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도 했다. 여권 잠룡군 중 청와대에 가장 근접해 있는 박근혜 위원장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이 의원은 “공천이 마무리되면, 전체적인 공천 결과를 보고 제 입장을 정하겠다”고 발언, 향후 공천 과정이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공천권 반납이나 탈당 등 직접적 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는 배수진을 치기도 했다.
이 의원 최측근으로 꼽히는 진수희 의원은 이 의원의 ‘공천반납’ 가능성에 대해 “16년간 당을 지켜온 분의 입장에서는 가볍게,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다”면서도 “남아 있는 공천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를 봐가면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몰리면 어떤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 의원은 당 안팎으로 공천권 반납과 탈당 등의 요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수족이 잘려나간 이 의원이 당내 비주류 수장으로 남아 있기보다는 당 밖에서 (낙천자들을) 리드해주기를 바라는 목소리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며 “이 상태로 계속 친이 공천 학살이 진행된다면 이 의원도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박찬종 전 의원도 트위터에 글을 올려 “이재오 동지… 민주화투쟁으로 10년의 감옥을 살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 친이계 좌장으로서 박근혜 위원장의 ‘공천의 은혜’를 입은 것이 오히려 화를 부르고 있다”고 결단을 촉구했다.

잠룡들도 일제히 박근혜 비판

친이계 잠룡들도 새누리당 공천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위원장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9일 트위터를 통해 “당 전체가 유신의 그림자에 뒤덮인 채... 집토끼들이 뛰어봤자 어디 가겠느냐면서 너무 막 나가는 것 아닌지”라고 박근혜 위원장을 맹비난하면서 “새누리당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 한 개인을 우상처럼 받드는 사당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 전 대표는 지난 7일에도 “친이계에는 엄격하고 친박계에는 관대한 공천”이라며 “닥치고 나가라는 식인데, 그러면서도 낙천자도 당의 중요한 자산이라니 위선의 극치”라고 힐난했다.
김문수 경기지사도 연일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친이는 죽고 친박은 사는 밀실 공천이고 명분도 원칙도 없는 사천”이라며 “공천 결과의 책임은 박 비대위원장에게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지사는 “당이 객관적이고 투명한 공천을 해야 하는데 왜 자르는지 설명도 없었다”면서 “전여옥 의원이 박근혜 욕해서 잘렸느냐”고 새누리당 공천 결과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친이, 탈당 잇따라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공천 학살’이 계속 이뤄지자 친이계들의 ‘탈당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08년 총선 당시 사무총장을 지내며 ‘친박 공천 학살’의 주범으로 꼽히는 이방호 전 의원은 지난 7일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4ㆍ11 총선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이 전 의원은 “참담한 심정으로 잠시 당을 떠나고자 한다. 선거구 공천 결과를 결코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같은날 강원 춘천에 지역구를 둔 허천 의원도 탈당과 동시에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허 의원은 “공천자 발표 이후 당에 바로 탈당서를 제출했으며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고 밝혔다.
국회 부의장을 지낸 이윤성(인천 남동갑) 의원도 지난 8일 4·11 총선 공천 탈락에 반발,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친이계 중진인 이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공천이 지난 대선에서 누구 캠프에서 일했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며 “바로 이 시간에도 새누리당에서는 계파에 따른 공천학살이 진행되고 있다. 비대위와 공천위가 쇄신공천, 시스템 공천이란 미명 아래 ‘과거 한풀이 기준’에 따른 보복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저격수’로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는 전여옥 의원 역시 지난 9일 탈당을 전격 선언한 뒤, 보수 신당인 국민생각에 입당키로 했다. 전 의원은 당 지도부가 자신의 지역구(서울 영등포갑)를 전략공천한데 대해 불복하고 탈당한 것이다.
전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새누리당은) 보수를 버렸고 이번 총선 공천은 ‘보수 학살극’이었다”며 “무너져가는 보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새누리당을 탈당한다”고 말했다.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도 “이번 공천과정은 누가 보더라도 불공정 공천이었기에 저희 지역뿐 아닌 절대적으로 친박 인사들이 경쟁력이 없는데도 불구 공천된 지역이 대다수”라며 “박근혜 1인 사당으로 전락했기에 앞으로 전혀 희망과 기대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불만을 토로하며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또 낙천한 친이계 진성호, 유정현, 이화수 의원과, 지역구가 전략지역으로 분류된 안상수 전 대표와 신지호, 장광근 의원 등도 무소속 출마를 검토 중이다.

전여옥 입당에 박세일 ‘국민생각’ 반색

이런 상황에 ‘이삭 줍기’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공천 탈락자들에 대한 중도보수 신당 ‘국민생각’의 전방위 영입이 적극 시도되고 있다. 이미 전여옥 의원이 현역 의원 최초로 국민생각 입당을 결행했다. 전 의원은 입당 기자회견에서 “오늘 아침에 (국민생각 입당) 결단을 내리신 분도 있다”며 추가 입당자가 나올 것임을 시사했다.
실제 일부 새누리당 낙천자 및 공천 탈락 예상 의원들은 향후 행보에 ‘국민생각행(行)’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민생각 관계자는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의 공천 탈락이 확정되면 움직임이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국민생각’ 박세일 대표는 물론 박 대표와 인식의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덕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이 안상수 전 대표를 비롯해 새누리당 인사에 대한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
김 의장은 최근 안 전 대표와 만나 “여러 세력이 연대한 중도·보수 성향의 정치 세력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대표측은 이 같은 사실을 밝히면서도 “그러나 안 전 대표가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자’고 답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민생각’ 한 관계자는 “김덕룡 의장도 의원급 인사 몇 명을 데리고 ‘국민생각’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박세일 대표 역시 안 만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있고, 조만간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김 의장이 ‘국민생각’에 합류한다면 경남 거제 공천에서 탈락한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등 옛 상도동계 인사들이 중심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대표적인 YS직계인 김 의장이 움직인다는 것은 곧 YS의 의중이 상당 부분 실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말기인 만큼 ‘정권 심판론’의 위험 부담을 안고 가는 ‘친이 무소속 연대’보다는 ‘YS계’의 재집결을 통해 난국을 헤쳐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 부소장은 [일요서울]과 통화에서 “(아버님(김영삼 전 대통령)이) 실망을 넘어 격분을 했다”며 “아버님이 비상적인 상황을 바로 잡아 가기 위해 여러 분들과 만나고 계신다”고 말해 김 전 대통령이 총선 정국에서 일정 정도 역할을 할 것임을 암시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8일 상도동 자택을 방문한 정몽준 전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새누리당 공천에 대해 “이번 선거가 중요하고 어려운데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비상시국이면 더 상의해야 하는데 왜 저렇게 독단적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옛 친박 좌장 김무성의 선택

새누리당은 친이계 의원들의 잇단 탈당 사태에 위기 의식을 느꼈는지 지난 9일 탈락이 확실시되던 김무성·안경률 의원의 공천을 보류시켰다.
한때 친박계 좌장 역할을 하다가 박근혜 위원장과 정치적으로 결별한 김 의원은 ‘현역의원 25% 컷오프’ 대상자로 알려졌으나 정치적 후폭풍을 고려, 공천위가 공천발표 일정을 미룬 것으로 보인다.
현재 탈당을 감행한 인사 가운데 이렇다 할 구심점을 잡아줄 인물이 없는 상황에서 김 의원이 공천 결과에 불복해 탈당한다면 그 파장이 엄청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정홍원 새누리당 공천위원장이 “만약 ‘25% 컷오프 룰’을 깨뜨릴 경우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그 룰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어떤 사람을 배치할 건가, 전략지역 선정에 대해 지역에 있는 사람과 외부 영입을 한다면 어떤 사람이 적절한지에 대해 논의하다보니 지연되는 지역도 있다”고 말해 김 의원의 공천 탈락이 시간 문제임을 암시했다.
김 의원은 지난 7일 트위터를 통해 “우파 정권 재창출에 큰 공을 세울 수 있는 인사들이 결과적으로 배제돼 우파 분열을 불러올 공천이 되고 있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정치는 현실이니 현장 경험 없는 기준 설정이 대사를 그르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 후회 없는 공천이 되길 충언한다”고 적었다.
김 의원이 자신의 공천 발표를 앞둔 상황에서 ‘우파 분열 공천’이라고 경고한 점에서 공천 탈락 시 다른 보수 세력의 형성에 합류할 생각이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미 김 의원은 지난 18대 총선 당시 ‘친박 공천 학살’로 인해 무소속으로 출마, 생환해 새누리당에 복당했었다.
김 의원의 한 측근은 “세종시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박근혜 위원장과 틈이 벌어져 여기까지 왔는데 모든 건 박 위원장에게 달려있다고 본다”며 “공천을 못 받으면 무소속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천에 탈락한 친이계 의원들과 김 의원(문민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사정비서관과 내무차관을 지내 YS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등 YS계 인사들이 힘을 합칠 경우 새누리당의 총선 전망과 박근혜 위원장의 대선가도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비대위가 칼집을 쥐고 있다면 우리는 칼날을 쥐고 있다”는 김현철 전 부소장의 발언처럼 ‘칼날’의 역습이 시작될 지 주목된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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