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모든 과정 자기 맘대로…사당(私黨)으로 바꿔놔”

“총선이야 어떻게 되든 대선후보 경선을 위해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 “컷오프가 무슨 기준인지 모르겠다. 이번 공천은 사천이라거나, 총선용 공천인지 대선용 공천인지 경선용 공천인지 모르겠다는 말들이 많다” (김문수 경기지사)

새누리당 잠룡들이 4.11 총선 공천 과정을 지켜보면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겨냥해 날린 직격탄이다. 이처럼 새누리당 공천이 박 위원장을 위한 ‘대선용 공천’이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 새누리당 공천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박근혜 대선캠프’를 방불케 할 만큼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공천장을 거머쥐었다. 특히, 비례대표 후보들 중에는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정책전문가들이 다수 포진해 박근혜 대선 진용을 갖췄다는 평가가 당 안팎에서 들리고 있다.

게다가 지난 21일 출범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에도 친박 인사들이 요직을 독점하면서 ‘미니 대선 캠프’라는 비아냥까지 들린다. 박 위원장의 이같은 선택이 4월 11일 어떠한 결과로 나타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근혜당’으로 변모한 새누리당의 공천에서 친박계가 약진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지역구 공천자 230명 가운데 친박계만 100여명이다. 친이계 현역의원의 경우 불출마를 선언한 이들을 제외한 74명 중 36명(48%)이 낙천했지만 친박계 의원은 54명 중 14명(25%)만 탈락했다. 친이계에 대해서는 가혹한 기준을 적용해 탈락시키고, 친박계 인사들은 비리연루 인사까지 공천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국민희망캠프에 참여했던 인사 다수가 친이계 인사들을 제치고 공천된 것이다. 2012년 대선 캠프를 미리 준비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캠프에서 서울 선대위 본부장을 맡았던 안홍렬 후보는 서울 강북을에서 이재오계로 알려진 이수희 후보를 누르고 공천을 받았다. 충북 지역 선대위 본부장을 맡았던 김준환 후보는 청주 흥덕을에서 이명박 대선 경선 캠프의 공보특보를 맡았던 송태영 후보를 제쳤다. 청주 흥덕갑에선 역시 지역 선대위 본부장을 지낸 윤경식 후보가 공천됐다.

언론특보를 지낸 정찬민 후보는 경기 용인을에서 친이 현역인 이춘식, 박준선 후보를 따돌렸다. 김무성 의원의 지역구인 부산 남을을 물려받은 서용교 후보도 캠프 특보 출신이다. 부산진을에서 공천 받은 이헌승 후보는 캠프에서 후보 수행부단장을 지냈다.

지역구 공천, 친박 심기 일색

캠프법률지원 단장을 맡았던 유영하 변호사는 경기 군포에서 공천 받았다. 18대 총선 당시 이른바 ‘친박 학살’ 공천에 대한 항의 표시로 전국 지원 유세에 나서지 않았던 박 전 대표는 당시 유 변호사의 지역 사무실 개소식에 이례적으로 참석한 바 있다. 고문단에 참여했던 현경대, 강창희 전 의원도 무난히 공천을 받았다.

이들 가운데선 도덕성 논란에 휩싸인 후보도 있다. 캠프에서 지방언론단장을 지낸 김형태 후보는 이상득 의원이 불출마한 경북 포항 남·울릉에서 공천 받았지만 사전 선거운동 혐의로 지역 선관위가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지역 선대본부장을 지낸 이재영 후보(경기 평택을)는 2006년 당시 수해골프로 징계를 받았지만 공천됐다.

현역 의원을 살펴보면 당시 안병훈 위원장과 함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홍사덕 의원이 서울 종로에 전략 공천됐다. 정책메시지본부장과 부단장이었던 지낸 서병수, 유승민 의원, 종합상황실장을 지낸 최경환 의원,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 등 핵심 참모들은 무난히 공천됐다.

다만 총선 전부터 다선 용퇴 압박을 받았던 박종근, 이해봉, 이경재, 허태열 의원은 불출마하거나 낙천했다. 당시 좌장이던 김무성 의원도 컷오프에 걸렸다. 미래희망연대(옛 친박연대) 출신인 8명의 비례대표는 노철래, 송영선 의원 등 절반인 4명이 공천관문을 통과했다.

정책 브레인, 전면 배치

또한, 새누리당은 박 위원장의 대선 과정에서 정책을 책임질 ‘브레인’들을 공천을 통해 전면 배치시켰다.
특히 박 위원장의 대선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소속 회원의 대약진이 눈에 띈다.

지난 21일 확정된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는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가 12번에 배정됐다. 박 위원장 바로 뒷번호를 받은 안 교수는 국가미래연 출범의 산파역으로 알려졌고 당 복지정책의 틀을 바꾼 이른바 ‘박근혜식 복지’와 정책쇄신 과정에서 주목받은 ‘경제민주화’ 개념의 입안자로 불린다. 안 교수는 이날 출범한 선거대책위 실무 핵심인 공약소통본부장에 임명돼 그 비중을 짐작하게 했다.

지역구 공천자로는 경기성남갑에 공천된 이종훈 명지대 교수가 있다. 미국 코넬대에서 노동경제학을 공부한 이 교수는 2005년부터 박 위원장 정책자문팀에 합류해 인연을 맺었다. 이후 줄곧 일자리와 노동 분야에서 정책자문에 응해왔으며, 미래연 창립에도 관여했다. 노사문제 전문가인 김태기(서울 성동갑) 단국대 교수와 박 위원장 ‘경제교사’로 불리는 이한구(대구 수성갑) 의원도 국가미래연 소속이다.
 
역시 국가미래연 회원으로, 2007년 대통령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복지·여성정책단장으로 일한 안명옥 전 의원을 부인으로 둔 길정우(서울 양천갑)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까지 합하면 이번 공천에서 국가미래연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후보자는 모두 5명이 된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인사들도 여럿이다. 위스콘신대는 친박 핵심인 최경환 의원이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곳이다. 위스콘신대에서 석사 혹은 박사 학위를 받은 공천자로는 안종범 교수를 비롯,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서울 서초을), 이만우 고려대 교수(비례),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 등이 있다.

강 교수는 지난해 박 위원장이 분야별로 공부 모임을 할 때 경제교육을 담당했고, 이만우 교수는 그동안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을 비판해왔다.

이 밖에 9곳의 범강남벨트 지역구 가운데 유일하게 재공천을 받은 유일호 의원(송파을), 현역 교체 논란이 일었던 대구에서 살아남은 이한구 의원(수성갑)도 친박 정책통으로 통한다.

특히 이한구 의원이 대우경제연구소장으로 재직 시 강 교수가 연구위원으로 일한 인연도 있다.
이런 가운데 친박 정책 브레인들은 대개 조세연구원이나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책연구소에 몸담았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당 핵심 관계자는 “시대정신에 맞는 정책과 공약을 제시할 싱크탱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박 위원장의 의중과 당 내부의 공감대가 국가미래연 공천으로 이어진 것”이라며 “대선정국에서 국가미래연 활동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대위도 친박 일색

‘대선용 총선’이라는 비판은 19대 총선 선대위 구성에도 가해졌다. 새누리당의 선대위에는 비례대표 공천을 받은 후보들과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기 때문이다.

당 관계자는 “비례대표 후보들도 ‘당선되기 위해선 열심히 뛰라’는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일각에선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포함된 점을 지적, “박근혜 대선캠프 선대위 같다”고 평가했다.

우선 박근혜 선대위원장 밑에 부위원장으론 황우여 원내대표와 이주영 정책위의장이 들어갔다. 선대위 고문에는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 김형오 전 국회의장, 김용환 전 재무부장관이 포함됐다. 서 전 대표와 김 전 장관은 친박 원로그룹의 좌장격인 인사들이다.

총괄본부장은 권영세 사무총장이, 종합상황실장은 서울 서초갑에서 공천탈락한 이혜훈 의원이 맡았다. 대표적 친박인사인 이 의원에 대한 배려라는 분석이다.

6개 본부장은 비례대표 및 지역구 공천자가 대거 맡아 눈길을 끈다. 홍보기획본부장 조동원(홍보기획본부장), 공약·소통본부장 안종범(비례대표 12번), 네트워크본부장 강은희(비례대표 5번)·최봉홍(비례대표 16번), 유세지원본부장 박창식(비례대표 20번), 청년유세단장 김상민(비례대표 22번) 등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일요서울]과 통화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은 박 위원장이 대선을 앞둔 싱크탱크로 논공행상을 먼저 한 과정이었다”면서 “박 위원장이 모든 과정을 자기 맘대로 하면서 ‘박근혜당’으로 완벽하게 바꾸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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