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남 이미지만으로 제품 기능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보여줄까, 말까? 속만 태우게 하는 란제리(Lingerie). 여성의 보드라운 맨 살결에만 착 달라붙어 있던 비밀스러움이 광고를 통해 겉옷과 속옷의 경계를 허물며 ‘섹시 코드’로 더욱 빛을 발한다. 소지섭이 남자로선 브래지어 모델로 처음 등장하며 은근한 시선으로 패션 가치를 드높이고 있다. 새봄을 맞은 비비안의 광고는 모델이 ‘만약 와이어가 없다면?’ 하며 와이어가 없는 것 같다는 메시지로 제품을 부각시킨다. 모델의 시선 맞추기(Eye Contact)로 친밀감을 주며 특히 남성 모델 기용으로 란제리 룩이 여성 모델의 섹시하고 풍만한 가슴에 대한 판타지를 보여주는 것만이 여심을 자극하는 유일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려 한다. 

자아 방어(Ego Defensive)개념은 설득커뮤니케이션 감성 소구 이론으로 설명되는데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억압(Repression)’은 사람의 무의식 세계 속에 잠재하는 성 본능을 자극하여 대상 만족을 취하도록 하고 이 제품을 구매하게 됨으로써 그 만족도를 더욱 높이려 한다. 15세 소녀 브룩 쉴즈를 통한 사회적 논란이 된 Calvin Klein의 청바지 광고는 “나와 캘빈 사이에 뭐가 있는지 아세요? 아무 것도 없어요(What comes between me and my Calvins? Nothing)”였다. 뇌쇄적 눈빛의 속삭임은 묘한 상상을 부추겼다. 여론의 질타와는 달리 그녀가 입은 청바지는 한 달에 200만장 이상 팔렸다. ‘억압’기제의 대표적 광고사례다.

▲ Calvin Klein의 선정적 청바지 광고

또한 ‘동일시(Identification)’는 아름다운 모델이 자신과 같다고 느끼게 하려는 기법이다. 환상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모델로 욕망 등을 갖게 하고 자신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뜨려 제품을 구매하도록 한다. 연예인 등을 동경해 행동·복장 등을 따라 하는 ‘워너비(wannabe)’ 효과를 노리는 광고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고급제품일 경우 설득력은 더욱 높아지지만 보급형일 경우 소비자들이 제품을 실용적 목적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이성(理性)소구 전략이 더 먹힌다. 속옷의 경우 착용감이나 피부 보호 그리고 신체부위의 균형유지 등 기능을 강조할 시 주로 품질에 대해 반복 설득하는 메시지 학습적 이론이 바람직하다.

최근 의학계는 브래지어에 부착된 와이어가 가슴을 쪼이면 팔과 등의 위쪽에 집중적으로 살이 붙어 그 압박이 심해져 유방암이 생길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유방 내에 있는 림프관과 정맥혈은 독성물질을 걸러주는 역할을 하는데 유방세포가 독성물질에 오래 노출되면 정맥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비정상적 세포로 변하며 암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비안의 광고는 그 원인을 제공하는 브래지어 ‘와이어’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브래지어 컵 바깥쪽에 삽입해 압박감을 줄인 제품인 점을 강조한다. 이 광고는 ‘와이어가 없는 듯하다’는 품질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메시지 학습적 이론 기법과 한편으론 여성의 은밀한 제품을 남성 모델이 설명하는 은근한 성적 소구기법을 병행하고 있다. 두 이론을 병행하여 설득을 더욱 높이려는 의도지만 이것은 광고의 오류다. 기능을 설명할 땐 실제로 제품을 착용하여 느낌을 리얼하게 설명하는 데는 당연히 여성 모델이 적합하기 때문이다. 착용도 하지 않는 남성이 설명하는 것은 지극히 부자연스러워 오히려 설득력만 떨어뜨릴 뿐이다.

작년 가을 첫 번째 광고에선 여성의 은밀한 부위에 착용되는 제품을 남성이 예쁘다고 말하는 데서 묘한 성적 자극을 유발하는 설득 효과를 제대로 나타냄으로써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첫 광고의 감성적 이미지로 소비자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었을 제품이 이성적 이미지의 광고로 이어지는 과정에 소비자들의 혼란을 야기하여 기대하는 설득효과가 나타날 지도 의문시 되는 것이다. 반면 경쟁회사 비너스는 미스코리아 출신의 이하늬가 광고 모델이다. 제품 포인트인 볼륨과 사용 원단 등 그 기능을 디테일하게 실감나도록 설명한다. 메시지 학습적 기법이면서 모델의 육감적 몸매로 볼륨감 넘치는 가슴 선을 드러내 성적 자극을 끄집어내는 자아방어기제 이론이 자연스럽게 곁들여 있어 비비안과 대조를 이룬다.

▲ 비비안 프리볼륨 인쇄광고

비비안은 95년 패션모델이던 김지연을 캐스팅하여 ‘가슴은 볼륨 업’이라는 광고를 했다.  광고는 우선 뭇 여성들이 갖고 있을 아름다운 몸매에 대한 욕망의 ‘히프 34인치, 허리 24인치, 가슴 비비안 볼륨’이라는 이상형을 제시한다. 여성들은 이상적인 몸매를 갖기 위해 단식과 다이어트나 격렬한 운동 등 극도의 자기학대로 이를 실현하려 한다. 하지만 이 광고는 이상적 가슴 크기인 34~35사이즈만큼은 엄청난 자기학대의 고통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의 돈만 쓰면 되는 ‘비비안 볼륨 업’으로 그 욕망을 실현시켜 준다고 말한다. 몸매의 세 요소 중 히프와 허리는 몰라도 가슴 하나만큼은 간단히 해결한다고 소구한 광고는 당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대박을 쳤다. 그 뒤로도 황인영·김남주·송혜교·김태희·김아중·윤은혜 등을 광고모델로 기용하며 그 때마다의 콘셉트로 제품 브랜드 가치를 높여 나갔다. 그런데 현재의 광고는 어찌하여 혼란스러운 걸까? 광고 담당자들의 호기에 의한 실험일까? 아니면 가전제품 등 여타의 여성 관련 제품 광고에도 남성모델이 등장하는 트렌드를 따라하는 ‘미 투(Me Too)' 전략일까? 광고기획이 어려워서인가? 혹자들은 가장 섹시한 속옷 브랜드는 ‘빅토리아 시크릿’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평가하는 걸까?

이 브랜드의 광고기법은 아주 단순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들을 모델로 기용하기 때문이다.
광고는 제품의 가치와 소비자의 욕구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이다. 어설픈 연결 고리로는 제품가치가 제아무리 높아도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비비안은 ‘비비안 볼륨 업’ 광고로 당시 여성 브래지어 시장을 석권했던 때를 떠올려 더욱 냉정한 눈으로 대중의 소비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 그리고 백화점 명품 브랜드들을 통해 새 봄의 여심을 유혹하는 경쟁은 치열하다. 광고 하나가 기업의 명운을 좌우하기도 한다.

김재열 마케팅 컨설턴트  IMI (Issue Management Inc.)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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