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진보정치가 위기를 맞았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에 휘말린 통합진보당의 당권파와 비당권파 간 갈등이 극에 달해있다. 반MB 연합정치 국면을 통해 진보진영의 내부 논란을 무릅쓰고 태동한 통합진보당의 4·11 총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당연히 국민 이목이 집중됐다.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마당에 이번 사태가 봇물 터지듯 밀어닥쳤다. 특히 닥친 위기의 성격이 이념과 정책을 둘러싼 계파 갈등이 아니라 비례대표국회의원 지위 획득이라는 ‘권력욕’을 위한 ‘부당행위’ 공방이란 점에서 심각하다. 상식과 관용의 범위를 벗어난 ‘막장놀음’이 진보정치의 존립 자체를 위협한다.

이로써 이 땅 진보정치는 보수정치에 대해 가졌던 도덕적 우위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다는 역사적 자부를 소멸 당했다. 진보정치의 밑천을 다 까먹은 셈이다. 이 상황에서 당권파는 부정선거 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비난하며 비당권파 주도의 전국운영위원회가 채택한 비례대표 당선자 전원 사퇴 권고안을 무시했다.

비당권파로서는 다만 비판적 여론의 압박만이 무기가 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칼자루는 당권파 몫이다.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민주통합당 안에서는 통합진보당에 대해 “파트너 아닌 계륵”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버리자니 아깝고 안 버리자니 부담스럽다는 얘기다. 민주당이 진보당 내분 사태를 남의 일로 취급할 수 없는 이유는 12월 대선에 미칠 악영향 때문이다.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는 불안한 야당 이미지에 부도덕한 이미지를 덧씌웠다. 그런데도 뜨뜻미지근하게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민주당 처지가 안쓰럽다. 민주당 아니더라도 조금씩 통합진보당에 관심을 보였던 사람들에게 엄청난 배신감과 충격을 안겨줬다. 국민을 속이고 배신한 것에 대한 통렬한 반성 없이는 재기가 어렵다.

진보성향의 인물과 정당의 정체성에 대해 우려하고 염려했던 많은 유권자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판국이다. 사이비 진보정치 세력의 참담한 국민 기만극을 검찰이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물론 양극화 심화 등의 문제를 겪는 우리사회에서 진보정당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4·11 총선에서 10%넘는 유권자들이 진보당을 지지한 것은 거대 기득권 양당 구도 속에서 진보성향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해서였다. 같은 정파의 동료 이외에는 다른 세력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패권주의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리는 80년대 운동권 일각의 후진적 행태를 보게 될 줄은 짐작도 못한 바다.

죽어도 정파적 이익을 내려놓지 못하는 당권파에게 “소름이 끼친다”는 절망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오죽하면 주요 지지기반인 민노총마저 “썩은 동아줄을 잡고 있었다”며 외면하겠는가, 진보당 당권파는 스스로 역사의 장애물이 돼 진보운동 전체가 부정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진보정치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로 검찰 수사를 자청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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