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통’없이 사건 ‘일단락’… 대선자금 ‘쉬쉬’하고 인허가 비리로 ‘사건 축소’

▲ 파이시티 인허가와 관련해 대가성 금품수수 혐의를 받고있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지난 2일 서초동 대검찰청에 피내사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다.<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파이시티 게이트’가 결국 이명박 대통령 최측근 실세들의 인허가 비리의혹 사건으로 일단락됐다.

2007년 당시 이명박 대선캠프로 자금이 유입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이에 대한 수사를 기대했던 국민들은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 ‘그러면 그렇지’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온갖 의혹과 정치권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지 않은 채 이번 사건이 인허가 로비 사건임을 분명히 했고, 결국 검찰의 이 같은 의지에 따라 사건은 싱거운 결말을 맞게 됐다.

檢, ‘방통대군’ 최시중‘왕차관’ 박영준 구속기소

파이시티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최재경 검사장)는 지난 18일 그동안의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구속)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구속),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불구속)을 특가법상 알선수재 혐의 등으로 일괄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최 전 위원장은 자신의 고향 후배이자 건설업체 브로커인 이동율 씨를 통해 서울 양재동 복합물류센터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청탁을 명목으로 2006년 7월~2008년 2월까지 13차례에 걸쳐 파이시티 측으로부터 모두 8억여 원을 수수했으며, 박 전 차관은 2007년부터 매달 1000만~2000만원씩 총 1억6000여만 원을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강철원 전 실장은 이정배 파이시티 전 대표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으며, 자진 귀국해 수사에 협조한 점이 인정돼 구속은 면한 상태다.

검찰은 박 전 차관의 비자금 의혹과 관련 수사를 확대하고 그의 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된 이동조 제이엔테크 회장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현재 중국에 체류 중이며 거액의 체류 자금을 챙겨간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자금 유입 가능성은?

검찰은 최시중·박영준 등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에 대해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시켰다. 관련자들의 진술(추후 번복)과 정황상 의심에도 불구하고 대선자금 유입가능성에 대한 수사는 뒷전으로 밀렸다. 결국 검찰은 파이시티 자금이 정치자금으로 유입된 흔적이 없다며 사건을 일단락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전형적인 ‘왜곡·축소수사’, ‘몸통·꼬리 자르기식’ 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상대 검찰총장과 최재경 중수부장 등 수사팀은 지난달 23일 이번 사건에 대한 긴급회의를 진행한 자리에서 ‘대선자금’에 대한 논의도 함께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한 총장은 “길게 끌 수사가 아니다”며 선을 그었고, 중수부 이금로 수사기획관은 이후 “이번 수사는 대선자금 수사가 아니라 인허가 로비 수사”라고 공식 발표했다.

2010년 파이시티 이 전 대표의 경찰수사와 관련, 최 전 위원장은 당시 권재진 민정수석에게 “잘 처리해 달라”고 청탁 전화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권 수석은 현재 법무부장관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수사를 받아야할 인물이 되려 수사를 지휘하고 보고받는 자리에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어 왔다.

금품수수 혐의를 인정한 최 전 위원장은 “돈의 일부를 대선후보 여론조사 비용 등으로 사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은 사건이 불법 대선자금으로 확대되고 그 여파가 이명박 대통령에까지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파장은 일파만파로 확산된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발언 하루 만에 “얼떨결에 말했다. 정식 캠프 여론조사 비용으로 쓰지 않았고, 개인적 활동을 하며 모두 썼다”며 관련 진술을 번복했다.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파이시티 측으로부터 돈을 받을 당시 이명박 대선후보의 외곽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돈의 성격을 놓고 상당한 파장이 예상됐다. 그러나 다양한 추측과 의혹제기에도 검찰은 이번 사건을 한사코 ‘인허가 로비의혹 사건’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박 전 차관이 2007년 대선 즈음 ‘안국포럼’ 사무실에서 파이시티 측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지난 11일 확인되면서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안국포럼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경선캠프로 정치권에서는 돈의 일부가 이명박 대선 캠프로 자연스럽게 유입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이동율 씨로부터 박 전 차관이 안국포럼 사무실과 강북지역 호텔, 강남 오피스텔 등에서 이 전 대표가 준 수표와 현금 수천만 원을 박 전 차관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18일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에서 파이시티의 자금이 정치권으로 유입된 흔적은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민주통합당 우원식 원내대변인은 이에 대해 “최 전 위원장 스스로 대선자금으로 사용했다고 인정한 것을 검찰이 나서서 대선자금이 아니라는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며 “검찰은 이 대통령을 보호하려했다는 의혹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박영준, 고구마 줄기 캐듯 줄줄이 비리의혹… 그 끝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그간 ‘왕차관’이라 불렸던 박영준 전 차관은 ‘파이시티 사건’ 외에도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과 ‘CNK 주가조작사건’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여기에 4대강 사업이 현 정권의 불법 정치자금의 통로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4대강 사업의 전도사’ 역할을 했던 박 전 차관이 이에도 깊이 관여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고 있다.

검찰은 파이시티 사건으로 구속 수감 중인 박 전 차관을 18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불법사찰과 관련 증거인멸 지시 등을 집중 추궁했다. 박 전 차관은 민간인 사찰의 ‘윗선’으로 지목되고 있으며, “VIP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친위조직이 총괄 지휘한다”는 내용의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실의 ‘일심회 문건’이 발견되면서 대통령실과 이 대통령에게 사찰내용이 보고됐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밖에도 그는 CNK 주가조작 사건에 깊이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으며, 박 전 차관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동조 제이엔테크 회장의 이메일을 통해 CNK인터내셔널 오덕균 대표와 수사 상황 등을 주고받고 그의 귀국을 막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특히 오 대표가 CNK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헐각에 매각할 당시 BW를 인수한 이들은 엄청난 시세차액을 거뒀고, 이 과정에서 ‘정권실세’의 차명보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오 대표는 현재 카메룬으로 도피한 뒤 귀국하지 않고 있으며, 신병확보의 어려움으로 수사는 답보 상태에 놓여 있다.

‘비리 커넥션’ 박영준에서 박영준으로

박 전 차관의 ‘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동조 제이엔테크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포항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사업가로 최근 몇 년 새 사세가 급성장했다. 그는 박 전 차관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박 전 차관의 자금 관리 또는 돈세탁 창구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파이시티 브로커 이동율 씨가 “박영준 전 차관과 가까운 이동조 회장에서 돈을 건넸다”고 진술한 대목에서 박 전 차관과 이 회장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현재 검찰은 파이시티가 발행한 수표가 이 회장 측 계좌에 들어간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이엔테크는 현 정부 출범이후 포스코건설의 협력업체로 등록되면서 막대한 흑자를 기록했다. 이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들을 둘러싼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 전 차관이 포스코 회장의 선임과정에 외압을 행사했고, 결국 정준양 포스코건설 사장이 회장으로 선임됐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일련의 사건을 연결해보면 박영준 전 차관은 포스코 회장 선임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이동조 제이엔테크 회장에게 수주를 밀어줌으로써 막대한 흑자를 가져다 줬다. 그리고 이 회장은 박영준 전 차관의 정치자금 관리인으로 돈세탁을 담당했다는 연결고리가 형성된다.

민주통합당 국기문란사건조사특위 위원장인 이석현 의원은 지난 16일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정준양 사장 밑에 있던 정동화 포스코상무가 이동조 회장과 많이 친했다”며 “이 회장이 박 전 차관과 형님, 동생 하는 사이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의 인연이 그렇게 닿았을 개연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포스코건설이 파이시티 사업권을 따낸 과정에도 석연치 않은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2010년 연대보증을 했던 시공사가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파이시티는 자금난을 겪었고, 파이시티의 주 채권단인 우리은행은 같은 해 8월 파이시티에 대한 파산신청을 냈다. 이후 포스코건설은 단독입찰을 통해 새로운 시공사로 선정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은행과 포스코건설이 파이시티 사업을 위한 밀약을 맺었다는 의혹이 일면서 ‘시공사 사전 내락설’이 제기됐고, 포스코건설은 2010년 7월 우리은행과 비밀리에 파이시티 사업의 시공을 맡는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우리은행과 포스코건설 측이 파이시티 이정배 전 대표에게 사업권 포기를 종영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표는 그간 “우리은행과 포스코건설이 짜고 경영권을 뺏기 위해 파이시티의 파산 신청을 했다”고 말해왔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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