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사찰국조’ 통해 MB정권과 차별화

▲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19대 국회 개원 협상을 극적으로 타결한 가운데 그간 걸림돌이 됐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도 개원 이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민주통합당은 그간 이명박 정권을 둘러싼 온갖 비리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해왔다. 내곡동 사저의혹,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디도스 사태, 언론사 파업문제 등 모두가 굵직굵직한 사안으로 국정조사나 청문회가 실시될 경우 대선을 앞두고 그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관측됐다.

새누리당은 당초 민주통합당이 요구한 국정조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수용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선을 앞두고 국정조사를 정쟁의 도구로 활용하려 한다는 이유에서다. 단,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국민적 의혹이 짙은 만큼 특검을 진행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입장을 선회,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를 받아들임으로써 대선을 앞두고 여야 간 공방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MB 사찰’과 ‘노무현 사찰’ 통한 일거양득 작전 돌입

민주통합당의 국정조사 요구를 모두 묵살했던 새누리당이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기로 하면서 그 배경을 둘러싸고 궁금증이 커져가고 있다. 더욱이 새누리당은 그간 사찰사건에 대한 특검 도입을 주장하며 이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국정조사 수용은 다양한 정치적 해석을 낳고 있다.

일단 국회 개원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여당의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사찰사건에 대한 국정조사가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에게 결코 불리하지 않다는 이유에서 새누리당이 이를 수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민간인 불법사찰은 이명박 정권 뿐 아니라 과거 노무현 정권에서도 진행된 정황이 있는 만큼 결코 민주당만 유리한 것이 아니라는 계산이다. 특히 새누리당의 유력 대권주자인 박 전 비대위원장 역시 사찰을 당한 피해자로 지목되면서 박 전 위원장에게 되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 ‘사찰특검법’ 제출… 朴도 법안서명

새누리당은 국정조사 수용에 앞서 지난 21일 박대출 의원 대표 발의로 ‘2000년 이후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모두 18명의 의원이 이 법안에 서명한 가운데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명단에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또한 이한구, 김기선, 김을동, 윤상현, 황우여, 진영 등 법안 발의에 동참한 상당수 의원들이 친박계로 분류되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새누리당이 제출한 특검법안 내용을 살펴보면 현 정권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사찰을 포함해 2000년 이후 진행된 청와대, 국무총리실 등 정부기관의 민간인 등에 대한 불법사찰 의혹 모두를 특검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에 앞선 15일 민주통합당은 소속 의원 127명 전원의 명의로 ‘민간인불법사찰 및 증거인멸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아울러 여야 동수 의원 20명으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도 함께 설치할 것을 새누리당에 제안했다.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검찰수사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해소할 길은 국정조사가 유일하다”며 “새누리당은 더 이상 피하지 말고 국정조사에 적극 협조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동참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MB뿐 아니라 盧도… 전 정권 들춰내기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재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지난 13일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그분’은 찾지 못했다. 이명박 정권을 둘러싼 온갖 의혹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검찰이 사찰사건에 대해서도 ‘몸통’을 밝히지 못한 채 결국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이영호 전 청와대 비서관을 ‘윗선’으로 지목했다.

증거인멸 과정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이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사찰내용이 대통령 실장 등에게 보고됐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검찰은 사찰이 현 정권뿐 아니라 노무현 정부에서도 진행된 정확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특히 “1999~2007년 공직자, 정치인, 민간인 등에 대한 비위 첩보 수집 사실도 확인했다"며 노무현 정부 이전 김대중 정부에서도 사찰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새누리당은 민간인 불법사찰이 현 정권뿐 아니라 전 정권에서도 자행됐음을 꼬집으며, 국정조사나 특검이 실시될 경우 이에 대한 수사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물타기’라며 반발, 현 정권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새누리당은 현재 불법사찰과 관련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싸잡아 비판함으로써 대선을 앞두고 전 정권 흠집 내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민주 정권 역시 적잖은 사찰이 있었음을 들춰내 대선 정국을 좀 더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런 점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나 특검은 새누리당으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새누리당이 민주통합당이 지목한 국정조사 사건에 대해 유독 불법사찰 사건만큼은 특검을 수용하겠다고 밝힌 것도, 국정조사를 최종 수용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더욱이 이명박 정권과 선긋기를 한 상황에서 친박 측은 민간인 사찰을 부각시킴으로써 이를 더욱 선명히 하겠다는 의도도 함께 깔려있다. ‘MB 사찰’과 ‘노무현 사찰’을 모두 공격함으로써 일거양득을 취하겠다는 작전이다.

박근혜 사찰피해 강조… 朴과 MB는 서로 달라?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과 관련해 새누리당은 당초 특검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디도스 특검’이 말해주듯 이에 대한 무용론이 제기되면서 국민여론은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기울었다.

새누리당이 계속해서 특검을 고집할 경우 자칫 정부를 감싼다는 국민적 비판에 직면하면서 그간 선긋기를 시도한 노력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당 안팎에서 제기됐다. 더욱이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다르다는 인식 자체가 깨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불법사찰 사건이 불거진 지난 3월 친박계 의원들은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도 사찰대상에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박 전 위원장이 피해자라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결코 ‘MB 정부’와 ‘박근혜 비대위’가 같지 않음을 주지시켰다. 이른바 차별성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 17대 대선 경선 이후 박 전 위원장과 이명박 대통령은 정적관계였다. 그런 점에서 일각에선 박 전 위원장에 대한 사찰 가능성이 제기됐다. 아울러 노무현 정권 당시 박 전 위원장이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유력 대권후보라는 점에서 그에 대한 사찰 가능성 역시 거론됐다. 그리고 친박 측은 이를 기정사실화했다.

민간인 사찰사건에 대한 국정조사가 실시될 경우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에 대한 사찰 여부를 둘러싸고 정치권의 공방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자당의 유력 대권후보인 박 전 위원장이 사찰의 피해자임을 적극 내세울 것이다. 아울러 현 정권의 부도덕과도 관계없음을 적극 항변할 것이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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