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당 점거농성 사건 “폭도와 대화? 단전, 단수해!”


점거 농성 대학생의 학연·지연 파악해 대표단 구성
대학생 100여 명 당사 점거, 협상은 시작됐지만…


[장경우 전 국회의원] = 학생들과 유일한 통로는 전화였다. 일단 나는 9층으로 전화를 걸었다.
“일단 진정하고 이야기 좀 해봅시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요구, 이유라도 정확히 좀 알아야 할 것 아니겠소? 나는 장경우의원으로 당부대변인을 맡고 있는데, 지금 전화받고 있는 사람은 누구신가?”
“나는 이번투쟁의 대표로 고려대 신방과 학생입니다”
“아이쿠, 이 사람아! 나도 고대출신이야! 이런데서 만나게 됐구만 그래 몇 학번?”
“일단 대표를 올려보내십시오. 저희는 대표하고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전화는 일방적으로 툭 끊겨버렸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지금 대표는 자리를 비웠으니까 이렇게 하면 어떻겠소. 우리가 대표단을 구성해 올라갈테니 함께 협상을 해봅시다.”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드디어 현장에 있던 의원들끼리 회의가 벌어졌다. 그때까지 몇 번 전화를 주고받았던 나에게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들어가서 만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표단을 구성해 올라가보자는 내 의견에 의원들은 부정적이었다.
“지금 상당히 흥분 된 상태인데 지금 들어가면 학생들한테 볼모가 될 수도 있어요.”
“자칫 잘못하면 인질극상황으로까지 갈 수 있어요. 상황을 좀더 봅시다.”
경찰청장과 주영복 내무부장관까지도 부정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장담 못합니다.”
“그래도 일단 어렵게 창구가 마련되었고 대표단을 구성해 함께 협상을 해보자는 데 좋다고 약속을 했으니까 올라가서 이야기라도 들어봐야 할꺼 아닙니까?”
바로 그때 권익현 대표가 도착했다.

그리고 갑자기 터져나온 고함소리. “폭도들과 대화는 무슨 대화야! 단전 단수해!”
아뿔싸! 바로 이 말은 옆방에 있던 기자들의 귀에까지 들리고야 말았고 권익현 대표의 이 한마디는 그 다음날로 언론의 가십란을 장식했다.

여당대표의 입에서 나온 “폭도”라는 말은 학생들과 민주화 세력들을 더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이 말은 한참 동안이나 쟁점사안으로 오르기에 이르렀다.

아무튼 나는 내 의견을 계속 피력했다. 마침내 의견이 좁혀졌다.
“그럼 대표단을 누구로 구성한단 말이요? 정말 권익현 대표가 올라갈 순 없잖소.”
“일단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래도 몇 번 전화통화를 해봤고, 또 학생대표라는 학생이 고대 학생이니까 선배로서 쉽게 풀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급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더니 꼭 그 심정이었다. 대표가 고려대 학생이라는 것에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보았던 것이다. 마침 그때 김용태 대변인은 대구에서 귀향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런저런 상황과 함께 부대변인인 내가 올라가는 것으로 일단 결정됐다.

그러나 혼자 올라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의원들은 집안, 학교, 지역 등을 다 꼽아가며 학생들에게 거부감 없는 조건의 인물들로 추리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따져보는 가운데 남재희, 안병규, 김영구,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사람이 대표단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남재희 의원의 경우 딸이 학생운동권이었다. 평소에는 남의원의 골치깨나 썩히던 그 사실이 이제는 우리들의 ‘지푸라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안병규 의원의 경우는 서울대 학생회장 출신이었다. 학생운동 선배라는 건 지푸라기와는 비교도 안 될 동아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김영구 의원의 경우는 당에서 청년담당위원장이라는 것이 ‘지푸라기'가 되었다.

우리 네명이 결정되자 이제 경찰국장은 형사 두명을 함께 붙여줬다. 그렇게 6명의 협상대표단을 구성해놓고 나는 전화를 걸었다.

“우리 측에서 대표단이 다 구성되었으니까 일단 엘리베이터를 내려 보내시오.”
“알았습니다.”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비좁은 공간에 여섯 명이 탔다. 그리고 9층을 눌렀다.
땡! 드디어 9층, 스르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엘리베이터 앞에 온갖 집기로 산더미 같은 바리케이트가 쌓여있었던 것이다. 그걸 치우기 전에는 바깥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그런데 갈수록 태산이었다. 한 학생이 바리케이트 사이로 얼굴을 내밀더니 우리 얼굴 하나 하나를 확인하는 것이다.

“장경우 의원 맞고, 남재희 의원 맞고… 네 명은 알겠는데 두 명은 모르겠소. 다시 내려가시오.”
학생들은 이미 국회수첩을 확보해놓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하나하나 확인하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내려왔다.

“두 분은 내리십시오. 걱정 마시고 우리 의원 네 명이 해보겠습니다.”
결국 우리는 의원 네 명이 다시 올라갔다. 땡! 다시 9층이다.

그제서야 학생들은 바리케이트를 치워 나갈 틈새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막 발을 떼어놓는 순간 나는 “내가 지금 어디에 왔지?”하는 당혹감에 내 눈을 의심했다. 복도 입구는 이미 어마어마한 바리케이트로 막혀있었고 방문을 들어서니 온갖 집기가 다 치워진 횡한 방에 학생들이 콩나물 심어놓은 듯 죽 앉아 있는데… 아니 세상에나!

그 짧은 시간안에 언제 그렇게 많이 올라왔는지 100여 명 정도나 되는 학생들이 일순간 일제히 우리를 향해 시선을 돌린 것이다. 어리벙벙해 서있는 우리 앞에 한 학생이 다가왔다.
[다음호에 계속]
[장경우 전 국회의원] kwa8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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