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딸 박근혜, 박정희를 넘어라

▲ 박근혜 후보 <사진=정대웅 사진기자>

답답한 박, 사과 불구 지지율 요지부동
“박정희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대선 승리”

[일요서울 | 조기성 기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금의 박근혜 후보를 이렇게까지 키웠지만, 향후 대선 정국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박 후보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새누리당 영남권 한 의원이 지난 7월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기자와 만나 한 말이다. 박 후보가 ‘박정희의 딸’로서 정치를 배웠고, ‘박정희 향수’가 박 후보를 정치권으로 불러냈지만 결국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박 후보의 근본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과거사 논란에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실제 박 후보는 ‘박정희 시대’ 사과 발언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하락세가 진정 국면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박 후보가 문재인 후보도, 안철수 후보도 아닌 자신의 아버지와의 싸움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박 후보는 지난달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쿠데타와 유신독재에 대해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것”이라는 말로 과거사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내놓았다. 자신의 대선행보의 최대 걸림돌이자 집요하게 자신을 괴롭혔던 유신독재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박, 사과했지만…

하지만 그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박 후보가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 대통합 행보를 시작한 시점에서 사과를 한 것도 아니고,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과 안철수 후보 출마 선언, 박 후보 측근 비리 등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 기자회견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새누리당 대변인에 내정됐던 박 후보 최측근인 김재원 의원의 전날 발언은 박 후보의 기자회견이 ‘정치적 쇼’임을 극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달 23일 기자들과 만나 박 후보의 정치 입문 배경에 대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을 위해 정치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김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사실인지를 박 후보 캠프 측에서 전화로 확인하자 술에 취한 상태에서 기자들에게 욕설과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정성호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김 대변인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박 후보의 대변인을 지낸 최측근으로 박 후보의 의중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소위 ‘친박성골’”이라며 “김 대변인의 말은 박 후보의 진정한 의중”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 대변인은 “그동안 역사관 논란과 최근의 지지율 하락으로 위기에 몰린 박 후보가 오늘 과거사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은 결국 본마음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잠시 전향적인 입장을 밝혀 논란을 잠재우겠다는 것으로 의심될 수도 있는 말이었다”고 지적했다.

“박정희 꿈 위해 정치”

이처럼 박 후보 사과 발언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계속되는 데는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인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이다. ‘박정희’를 떼 놓고선 박 후보의 15년 정치적 이력과 최근의 정치행위를 설명할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은 박 후보에게 상식적 수준의 ‘아버지’의 범주를 넘어선다. 박 후보에게 그의 아버지는 ‘정치의 모범이자 모델’인 것이다.

2012년 대선을 불과 70여일 남긴 현 시점까지도 5.16 군사쿠데타와 인혁당 사법살인, 고 장준하 선생 의문사 논란이 박근혜 후보에게 대선 악재가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박정희의 명예’에 누가 되선 안 된다는 신념을 고집스럽게 고수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박정희의 딸’ 또는 ‘유신공주’라는 태생적 자산과 부채를 벗어던질 수 없다.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이라서 복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사고체계에서, 아버지를 전면 부정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아버지의 잘못을 사과하고 그 사과를 정치적 실천으로 구체화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정치공학적으로도, 그랬다가는 그의 가장 공고한 지지층이 반발할 위험이 있다.

박 후보는 정치를 시작하면서도, 지난 5년 전 대선 경선과정에서도, 최근 인터뷰에서도 맥을 같이 하는 발언들을 한결같이 내놓았다.

“5·16은 구국(救國)의 혁명이었습니다. 나라가 혼란스러웠고, 자칫 북한에 흡수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유신 체제는 역사에 판단을 맡겨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2007년 7월19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 청문회)
“그 당시로 돌아가 볼 때 우리 국민들이 초근목피로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세계에서 끝에서 두 번째로 할 정도로 가난한 나라로서 힘들게 살았고, 그 당시에 안보적으로 굉장히 위험한 위기 상황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하신 게 아닌가 합니다. 그 후에 나라 발전이라든가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를 돌아봤을 때 5.16이 그 어떤 초석을 만들었다는 것을 볼 때 바른 판단을 내렸다고 봅니다” (2012년 7월16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 그 부분에 대해선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왔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 어떤 판단에 맡겨야 하지 않나, 그런 답을 한 적이 있습니다” (2012년 9월10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

박 후보 사과에도 지지율 요지부동

박 후보의 사과 발언에도 지지율이 꿈쩍하지 않고 있다. 박 후보의 ‘과거사 사과’가 지지율 하락세에 제동을 일단 걸었지만 반전 카드는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박 후보 측은 “안철수 반짝 효과가 서서히 꺼질 것”이라고 보면서도 후보의 전향적 입장 표명에도 반등세가 빠르게 감지되지 않자 애타는 모습이다.

지난 26일 리얼미터에 따르면 박 후보는 과거사 사과 이후(24~25일)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 40.9%로 안 후보(51.7%)에 비해 9.8%포인트 뒤처졌다. 전주 박 후보와 안 후보의 차이가 최대 10.3%포인트였던 것을 감안하면 박 후보 측은 0.5%포인트의 격차를 좁혔을 뿐이다.

하지만 박 후보의 사과 기자회견 전(21일 44.2%, 24일 40.9%) 뚝뚝 떨어지던 지지율은 40.9%에서 급정지했다. 과거사 사과 여파가 반전을 일으키진 못했지만, 적어도 추락하던 지지율 제동에는 효과를 거둔 셈이다. 반면 안 후보는 지난달 19일 출마선언 이후 지지율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다. 21일 47.4%였던 지지율은 25일 51.7%로 4.3%포인트 상승했다.

박 후보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양자대결에서도 지지율 43.3%로 4.8%포인트 뒤졌다. 과거사 사과 발언이 문 후보와의 대결에서도 별로 성과를 보지 못한 것이다.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여론조사는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2.5%p 수준이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이와 관련해 “안 후보의 대선 출마로 인한 효과가 꽤 길게 이어졌던 탓에 박 후보의 과거사 사과가 아직 지지율 추이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26일을 기점으로 지지율 변화가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내심 이번 과거사 사과로 5%포인트 가량의 지지율 상승세를 기대했던 박 후보 캠프 측은 그나마 지지율 하락세가 멈춘 것에 안도하면서도 기대했던 반등의 속도가 더뎌 답답한 심정이다.
이는 박 후보 사과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에 잘 나타나 있다.

아산정책연구원과 리서치앤 리서치가 지난달 22~24일 실시해 25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에 따르면 응답자의 49.6%는 박 후보의 사과가 ‘지지율을 고려한 행동’이라고 답했다.
이에 비해 과거사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행동이라는 응답은 33.3%에 그쳤다.

박근혜, 박정희 넘어설 것인가

박 후보의 삶의 궤적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양면성이다. 원칙과 신뢰, 애국, 투철한 국가안보관, 절제된 말과 행동, 봉사정신 등은 서민을 긍휼히 여기는 품격 높은 귀족의 이미지와 함께 소통 부족, 포용력의 한계, 수직적 리더십, 5.16-유신 과거사에 매인 점 등으로 ‘반평민’의 이미지를 동시에 보이고 있다.

10살 이후 18년간 청와대에서 살았고 그 이후 18년간 은둔생활을 하고 1998년에 곧바로 정계입문한 박 후보의 삶이 이러한 이미지를 낳았다. 36년간 다진 내공의 바탕 자체가 ‘공주적 삶’과 ‘고독’이었다. 타인과 섞여 삶을 호흡하면서 난관을 헤쳐온 일반 정치인과는 다르다. 그래서 그가 ‘서민’을 위하는 방식이 서민들이 피부로 체감하기보다는 ‘귀족의 시혜’로 느껴지는 측면이 강하다.

소통방식도 마찬가지다. 권력의 정점에서 행하는 소통방식에 젖어있다. 박 후보의 이러한 일방 소통현상은 36년간의 청와대와 은둔생활 속에 베인 탓이다. 1997년 정계 입문 후 15년의 기간 동안도 타인과의 소통에 따른 정치력보다는 개인의 결단이 우선했다. 집단 소통을 통한 정상적인 정치 리더십 발휘보다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위기의 리더십만을 보여왔다.

당연히 박 후보 자신은 ‘진심’이라지만 수용하는 쪽에서는 ‘일방적인 전달’로 비춰지는 상황의 연출은 다반사였다. 지금도 그가 국민에게 전달하는 정치적 수사 ‘경제민주화’, ‘대통합’의 메시지도 이러한 일방통행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박 후보는 지난 2001년 외신기자들과 회견 과정에서 자신의 영어 이니셜인 GH를 ‘GREAT HARMONY’(대화합)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박근혜가 생각하는 대화합은 지역간, 계층간 갈등의 해소,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동아시아의 지역협력 증진 등이라고 설명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박 후보는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바로 다음날 대통합행보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태일재단 방문 무산, 인혁당 재판 관련 발언 등으로 그의 대화합, 대통합행보는 좌초될 위기다. 이는 이른바 박 후보의 ‘일방소통’이 빚은 결과물이다.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수용하지 않는 한 이러한 ‘일방소통’에 따른 부작용은 거듭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박 후보가 원하는 대로 대통합을 이뤄내고 대선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선 36년간의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소통방식에 벗어나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른바 ‘쌍방향 소통’을 이뤄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위해선 자신의 삶의 궤적을 지배해온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過)인 유신독재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박 후보가 민생이 중요하지 지금 과거를 얘기할 때가 아니라고 외쳐 봐도 별 소용이 없다. 그럴수록 박정희 프레임에 더 깊숙이 갇힐 뿐”이라며 “박근혜를 보면서 많은 사람은 ‘박정희의 유신체제’가 과거가 아니라 어쩌면 미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문제를 깔끔하게 풀어나가야 대선 승리를 바라볼 수 있다”고 말했다.

ks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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