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 이후 정국전망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나경원 후보 지원유세 도중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photo@ilyoseoul.co.kr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정치권에 정계개편 쓰나미가 몰려올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태풍’ 여파로 기존 정당정치가 이미 심각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박원순 후보의 ‘무소속 정치실험’이 성공할 경우 정치권의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가 승리하면, 그것은 곧 시민세력의 정치세력화라는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면서 기존과는 다른 정치흐름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강력한 힘이 정치의 장에 뛰어들었다는 의미가 되고, 이들에 의해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기존 정당은 근본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내년 3월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이 올 것이고, 지금의 정당 정치가 혁명적으로 바뀌는 상황을 맞을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면 민주당은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최근 일어난 ‘안철수 바람’ 등은 기성정치에 대한 경고이자 정당정치의 위기다. 10월 재보선 이후 정계개편 가능성이 있다” (정의화 국회부의장)

“박원순 후보 측근들은 시장 선거 후 새로운 야권을 언급하며 민주당의 해체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나경원 후보 측 안형환 대변인)

“이번 서울시장 보선은 박근혜 전 대표의 수도권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선거다. 만약 패한다면 수도권 의원들의 동요가 심해질 것으로 본다” (친이계 한 의원)

정가에서는 서울시장 보선에서 박원순 후보가 승리한다면 한나라당은 분당 사태를, 민주당은 해체의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보선까지 오는 과정부터 삐걱거렸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오 전 시장의 대선불출마 선언에도 박 전 대표는 꿈쩍하지 않았다. 당내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사실상 ‘박근혜당’이 돼버린 한나라당은 선거 과정에서 박 전 대표의 구원의 손길만을 기다렸다.

또한, 당 밖의 보수 세력과도 마찰을 빚었다. 보수 시민단체들은 주민투표 과정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한나라당을 맹비난했다. 이들은 ‘무능하고 자폐증에 걸려 있는’ 한나라당과 각을 세움으로써 이른바 박근혜 대세론에 안주해온 한나라당의 기득권 체제와 경쟁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이석연 변호사를 후보로 추대하기도 했다. 결국 나경원 후보가 나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다. 박 전 대표까지 나섰지만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정치전문가는 “박 전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박 전 대표에 대한 기사는 미미할 정도”라면서 “박 전 대표가 올인 스탠스를 하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서울 민심이 박 전 대표로 인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결국 ‘선거의 여왕’까지 나선 이번 선거에서 패한다면 수도권 의원들은 박 전 대표의 표 확장성에 의문을 품으며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고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분당(分黨) 사태’까지 거론되는 이유다. 박 전 대표가 탈당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수도권을 지역구로 둔 ‘非박’ 의원들 중심으로 탈당 후 신당 창당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보수신당 창당설

한나라당의 선거 패배시 새로운 보수 신당 출현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주도하는 ‘선진통일연합’이 보수 신당의 모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박근혜의 한나라당’에 불만을 가진 이탈 세력이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새로운 정당 출현을 명분으로 이들과 통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박세일 이사장은 주민투표 무산 이후 “투표 결과에 실망감이 너무 크다. 한나라당은 문을 닫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진영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됐던 전원책 변호사도 “한나라당은 보수를 배신했다. 보수 이데올로기와 동떨어진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서 “한나라당은 이념성이 없어 와해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연말이 되면 정계 개편의 씨앗이 자랄 것”이라고 말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와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도 보수신당 창당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향후 선거를 의식해 ‘탈이념’을 본격화하자 극우진영이 강력 반발하면서 여권 분열이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이와 관련,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선거 결과에 따라 폭발성이 강한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한나라당이 패배할 경우 정통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한 보수 신당이 등장할 개연성이 크다. 다시 말해 보수층의 분화가 빠르게 전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희웅 KSOI 조사분석실장은 “한나라당이 패배한다면 박근혜 전 대표 간판으로의 총선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며 “수도권 신당 등 제3세력의 출현이 있을 수도 있고 이재오 의원이 친이계 복원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안풍, 민주당에 직격탄

민주당의 상황은 더욱 좋지 못하다. 제1야당으로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를 내지 못해 ‘불임정당’이라는 조롱까지 듣는 상황이다.

선거 승패 여부를 떠나 민주당 해체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야권통합 흐름에서 더 이상 민주당 간판으로는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안철수 바람’으로 시작된 정당정치 위기의 직격탄을 민주당이 맞게 되는 것이다.

민주당 해체론은 선거 기간을 전후로 곳곳에서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박원순 캠프의 핵심 인물인 하승창 기획단장은 “연말 민주당만으로의 전당대회는 안되고, 죽어도 함께 못한다는 세력을 제외, 쿨하게 오케이하는 세력을 중심으로 새판을 짜야한다”며 정계개편을 기정사실화했다.

박원순 후보도 출마 선언문에서 “야권통합단일후보는 연합과 연대라는 틀을 소중히 하고 발전시키라는 요구와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서울을 만들라는 시민의 요구를 동시에 가진 후보로 민주당이 새로운 변화와 통합의 길을 열 것이고 저는 그 길에 함께 서서 갈 것”라며 새로운 민주당을 건설하는데 함께 할 것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해찬 ‘혁신과 통합’ 상임대표는 야권의 새로운 통합정당 추진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지난 10일 ‘통합정당 추진 방안 제안설명회’에서 “우리 민주진보진영은 현재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4개의 정당과 시민사회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그룹이나 개인 등을 대상으로 혁신과 통합을 위한 정당을 만들려고 한다”며 “진보진영의 통합을 뛰어넘어 대통합에 이르는 통합적인 당을 만들려고 하는 게 저희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해찬 전 총리와 혁신과 통합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문재인 전 이사장 역시 “대통합이 되면 우리 정당도 전국ㆍ정책ㆍ대안정당이 될 수 있다”며 “박 후보가 당선되면 통합을 통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로 나갈 수 있다”고 선거 이후 정계개편을 시사했다.

전문가들도 민주당 해체론에 힘을 실었다.

김형준 교수는 “민주당은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지 모른다. 만약 박원순 후보가 승리하면, ‘더 큰 민주당’ 플랜이 힘을 발휘할 것”이라며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친노 일부 세력이 중심이 된 ‘혁신과 통합’ 모임은 야권 대통합에서 민주당의 주도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박 후보가 정계 개편의 키를 쥐게 되면 새로운 야권 통합 정당에 민주당이 흡수되면서 공중분해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박원순 후보가 패배할 경우에도 민주당의 미래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 향후 정국 주도권을 상실하면서 당 밖의 혁신 세력 눈치만 보는 신세가 될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한 정치전문가 역시 “안철수 바람과 박원순 후보 승리는 정당정치 위기를 보여줬고, 한나라당보다 민주당이 더 직격탄을 받았다”면서 “민주당은 해체 수순을 밟아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대표는 “민주당 중심의 야권통합은 정당성을 잃었고, 민주당이 이를 빨리 수용하고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과정을 밟아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조기성 기자] ks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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