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스토킹의 종말
대학시절 짝사랑하던 여성을 무려 17년 동안 스토킹해온 30대가 결국 실형을 살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 구회근 판사는 스토커 신모(37ㆍ무직)씨에 대해 징역 10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스토킹에 대해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신씨는 이미 스토킹으로 수차례 벌금형을 선고받았음에도 반성의 기미가 없어 이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이에 지금까지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신씨의 스토킹 17년사를 들추어 보았다.


스토킹의 시작은 지난 91년부터다. 당시 모 지방대 1학년에 재학중이던 신씨는 학교 축제기간 중 우연히 발견한 김모(37·여)씨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청순하면서도 수수한 김씨의 외모가 신씨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는 김씨의 이런 외모에 반해 그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 사진을 보관했다. 이것이 스토킹의 시작이었다.

신씨는 수소문을 통해 김씨가 같은 학교 1년 선배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마침내 김씨 앞에서 자신의 연정을 고백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신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김씨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신씨는 포기하지 않고 이후로도 수차례 편지와 선물을 보내는가 하면 시시때때로 김씨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나 김씨의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애달픈 신씨의 짝사랑은 서서히 변질돼 갔다. 김씨를 향한 마음의 표현이 거친 행동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

지난 94년 12월 신씨는 길가에서 자신의 구애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씨의 어깨와 왼팔을 잡아당기는 등 폭력을 휘두르다 약식 기소돼 벌금 50만원을 선고 받기도 했다. 그래도 스토킹은 멈추지 않았다. 이메일과 휴대폰으로 수시로 협박성 메시지를 보냈다.

참다못한 김씨가 2005년 4월 신씨를 협박 혐의로 고소하자 신씨는 퇴근하는 김씨의 뒤를 따라가 고소를 취소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또 올해 3월에는 지하철역에서 김씨에게 접근, “내 인생을 망가뜨린데 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하겠다”며 김씨를 바닥에 넘어뜨리는 등 폭행을 가했다. 하지만 미리 대비를 하고 있던 김씨는 신씨에게 최루가스를 쐈고 이 바람에 신씨는 경찰에 연행돼 불구속 상태로 법정에 서기도 했다.

이렇게 협박을 일삼다 4차례나 벌금형을 선고 받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신씨는 오히려 더 강도를 높여갔다.

김씨가 지난 96년 다른 남성과 결혼한 직후에는 신씨의 스토킹이 끝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신씨는 좌절감에 잠시 휴식기를 가졌을 뿐 결코 김씨를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재판부에 따르면 김씨가 결혼하자 신씨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했지만 잠잠해졌다가 시간이 지나자 다시 슬며시 접근해 스토킹을 시작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결혼하고 4년 뒤인 2000년 자신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병원에 출근하면서부터 다시 스토킹이 시작된 것 같다”면서 “신씨는 휴대전화를 통해 시도 때도 없이 김씨에게 협박성 문자를 보냈다. 또 스토킹은 날로 대담해져서 김씨의 남편에게도 협박성 이메일을 보냈다”고 전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신씨는 김씨 남편에게 “김씨가 결혼 전에 다른 남자들과 여관에 갔다”는 등의 거짓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보내, 김씨 부부를 자주 싸우게 만들었다.

또 김씨 친구의 홈페이지에 ‘김씨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글도 남겨 주변인들 사이에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돌기도 했었다.

이처럼 장기간에 걸친 스토킹으로 김씨가 입은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재판부는 “피해자인 김씨는 17년이라는 장기간 시달려온 탓에 노이로제 증상까지 호소하고 있다”며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정신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준만큼 신씨는 실형을 사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한편 재판부의 판결내용에 대해 네티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신씨의 ‘지독한 사랑’에 대해 실형을 선고했다고 하지만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것이다.

아이디 vivi35를 쓰는 한 네티즌은 “17년간 스토킹을 당했다고 하면 피해자가 입은 피해는 실로 엄청나다 할만 한데 고작 징역 10개월은 이해할 수 없다”며 “스토킹에 대한 처벌법을 제대로 제정하는 문제가 시급한 것 같다”고 밝혔다.

또 아이디 gutman을 쓰는 네티즌은 “가정불화를 일으키고 하루하루를 불안에 떨게한 사람이 10개월을 살고 나오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를 일”이라며 “복수를 꿈꾸는 스토커에게 10개월은 불난데 기름을 끼얹는 격”이라고 말했다.


스토킹 처벌법 아직 없어

‘스토킹 등 대인공포유발행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은 아직 국회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현재 우리나라의 현행법상으로는 스토킹 행위 그 자체를 처벌하는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법규를 위반하지 않는 한 누군가의 행위가 ‘거슬린다’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 스토커가 구체적으로 현행 법률에 어긋나는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엔 그에 해당하는 개별 법률조항을 적용하여 처벌하게 된다. 예컨대, ‘단 한차례만 심한 욕설성 쪽지, 이메일,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낸 경우라도 ‘가해자가 보낸 욕설, 폭언내용 때문에 피해자(수신인)측이 현실적으로 공포감을 느낄 정도였고, (특히 해악의 내용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까지 있다면) 단순협박죄를 적용할 수도 있다.

또한 스토커가 유선전화나 휴대폰 음성통화, 문자메시지 또는 이메일이나 메신저 쪽지 등의 형태로 상대방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유발할 수 있는 음란성 내용을 보낸 경우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가 적용되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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